월요일 오후.
한성병원 주차장에 택시가 멎었다. 차 문을 닫고 돌아서면서 정원은 홀로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난 그냥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에 온 환자일 뿐이야.
쫄지 말자, 무엇보다 동요하지 말자고 어제부터 수백 번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았다.
‘전남편이 의사로 등장하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잖아.’
진료실로 들어갈 때의 행동 수칙을 다시 외웠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할 것.
사무적으로 대할 것.
절대로 그 남자 얼굴을 보지 말 것.
좋아, 준비됐어.
접수를 하고 나서 한 5분 지나자 카운터 옆 모니터에 이름이 떴다.
“유정원 님.”
정원은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결연한 얼굴로 대기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간호사 앞에서 본인 확인을 마친 다음,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승주, 나 알은척이라도 해 봐.’
그러나 정원이 들어간 진료실에는 승주가 아닌 다른 의사가 앉아 있었다.
“유정원 환자분, 토요일에 손목 골절이네요.”
마치 바람이 잔뜩 든 풍선이 순식간에 피시식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정원은 자신의 이런 요상한 마음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가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망감?
아냐. 허탈감이야.
주말 내내 이승주를 의사로 다시 마주쳐야 한다는 것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고민도 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어이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주말 내내 했던 고민과 갈등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으니까.
예상치 못한 사태 앞에서, 잔뜩 긴장한 마음의 근육을 누가 잡아당긴 듯 아팠다.
“CT 보니까 수술까지는 할 필요가 없는데? 주말보다 나아진 것 같고. 그냥 이대로 깁스하고 경과를 지켜보도록 하죠. 골절은 시간이 지나야 아무니까. 무리하지 마시고. 일주일 있다가 다시 볼게요.”
고작 5분 만에 진료가 끝났다.
뭔가 좀 억울하고 얼떨떨한 마음으로 로비를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혹시 행사 예약인가 싶어서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파티 전문 올댓파티 유정원입니다.”
―진료 끝났지? 밥 먹자.
너무 놀라 정원은 그만 우뚝 서 버렸다. 고객이 아니라 승주였다.
“내,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고?”
―올댓파티 검색했더니 바로 나오던데?
개인 전화번호를 영업용 전화번호와 연동해 두었으니 이런 일도 생겼다.
수화기 안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 덤덤해서, 태연해서 갑자기 약이 올랐다. 정원은 주말 내내 승주를 다시 만나는 일에 내내 좌불안석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게 왠지 억울해졌다.
“시간 없는데.”
―선약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밥은 먹어야잖아. 거의 도착 즈음이야. 거기서 보자.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이보세요, 이승주 씨. 최소한 약속 장소는 알려 주셔야죠. 무작정 ‘거기’라고 하면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마구잡이로 소리치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온갖 나쁜 말을 빼액대는 정원의 마음을 읽었는지, 곧이어 문자로 그가 말한 ‘거기’ 위치와 전화번호가 날아왔다.
“하, 정말 이승주 당신! 이거는 반칙이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