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의 재료는 가시 달팽이가 분비하는 무색의 점액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퍼플을 달팽이의 피라고 했다. 달팽이를 그릇에 넣고 썩히면 점액이 많이 나오면서 엄청나게 고약한 냄새가 나서 염색공장이 있는 도시는 악취로 악명 높았다.
썩어가는 달팽이에서 나온 뿌연 죽을 열흘 동안 은근히 불에 달여 죽이 졸면서 악취는 점점 더 심해진다. 이렇게 100리터의 죽에서 5리터의 염료를 추출한다.
이 추출물은 뿌연 노란색이며 여기에 담근 모직이나 비단도 뿌연 노랑을 띈다. 하지만 이를 햇볕에 말리면 처음에는 녹색으로 그 다음에는 빨강으로 마지막에는 퍼플로 변한다. 퍼플은 햇빛을 통해 생겨난 색이어서 햇빛에 바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색이 햇빛에 바랬던 시대에 퍼플이 영원을 상징하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속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은색을 떠올리는 극소수의 개념 중 하나이다. 은색은 분명 가장 빠른 색이다. 독일의 경주용 자동차 벤츠는 은색으로 ?은빛 화살"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벤츠는 원래 독일의 경주용 자동차에 할당된 흰색이었다. 하지만 1934년 6월 2일, 뉘어부르크Nurburg 자동차 경주장에서 ADAC의 자동차 경주가 시작되기 전날 밤, 벤츠가 허가된 무게보다 1킬로그램이 더 무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체 누가 그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날 밤 하얀 래커를 벗겨낸 벤츠는 알루미늄 재질 그대로 은색 광채를 발했다. 그리고 벤츠가 승리를 거두었다. 옛 전통에 따르면 하양과 은색은 의미가 같기 때문에 국제 자동차클럽 연맹은 이 색채의 변화를 승인했다. 벤츠의 실버 룩silber look은 광고 효과로도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게다가 가격도 저렴했다. 독일의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뒤를 이어 벤츠의 실버 룩을 모방했다. 모두가 은빛 화살이 되고자 했다.
화살처럼 빠른 은색은 비행기, 로켓, 고속 기관차를 떠올린다. 은색은 여기서 기능적이다. 은색의 밝은 광택은 태양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열을 감소시킨다. 속도의 색으로서 은색은 더 이상 귀금속의 색이 아니라 현대적인 경금속의 색이다(2권 그림 41을 참조).
색은 시각적 현상이지만 기술적 수단을 초월하는 의미를 가진다. 색채론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분류에 따르면 일차색은 빨강, 노랑, 파랑이며 이차색인 초록, 오렌지, 보라이다. 분홍, 회색, 브라운은 혼합색으로 이차색의 아래 단계이다. 검정과 하양은 색인가 아닌가 아직 논란 중이며 금색과 은색은 일반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하지만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열세 개의 색은 각기 독자적인 색으로 어떤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색이다. 심리학자에게는 모든 색이 똑같이 중요하다.
분홍은 빨강에서 나오지만, 그 영향은 완전히 다르다. 회색은 하양과 검정에서 나오지만 그 영향은 하양의 것도 검정의 것도 아니다. 오렌지는 브라운과 이웃한 색이지만 그 영향은 정반대이다. 나는 이 책에서 열세 개의 심리적인 색을 주제로 삼았는데 이는 이제까지 색에 관해 쓰여진 책들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의 색을 다룬 것이다. 색의 영향에 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색의 심리적 영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