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있거라 내 젊은 날
돌아보면 여전히 서있는 슬픔
또한 아스라히 사거리를 벗어나는 표적지처럼 멀어지거늘
이제 나는 어두운 생의 경계에 서서
밤낮으로 시간의 능선을 넘어오는
낮은 기침소리 하나하나 생포하며
더욱 큰 공포와 마주서야 하는 초병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잘있거라 내 젊은 날
언제나 그자리 서있을 여름, 그 처연한 호각소리여
훈련이란 우리들 행군간의 뒤돌아보지 않는 연습의 투사일진대
오 처음으로 마지막으로 발견하는 하늘
입간판을 돌아설 때 한꺼번에 총을 겨누는 사계
뒤돌아보면 쏜다. 그리하여 두손들고 내려오면 위병소
그 질척한 세월의 습곡, 아아 사나이로 태어나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p.89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p.89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씌어진 부분과 씌어지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두번째 부분이다. [......]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 p.334
나는 죄인이다. 나는 앉아서 성자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에게 경배하러 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육체에 물을 묻히고 녹이 슬기를 기다렸다. 서울에서의 나의 행복론은 산산조각나고 있다. 내가 거듭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변하기 위해 나는 지금의 나를 없애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다.
--- p.302
그 집앞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