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다//완전히 망가지면서/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뼈아픈 후회>중에서
--- p.78
개마고원을 종주하는 구름 그림자, 철쭉꽃 지대를 막 지나갈 때
그 눈부신 거 한번 보고 싶었던 거야. 나는.
지난 봄에 병원에 갔어, 웃지 마. 병명을 듣는 순간 기쁘데.
책을 펴면 벌어지는 페이지에서 포르르르 나비가
날아올라, 어떤 악의에 찬 잉크 - 나비;
오키나와는 바람 위에 떠 있는 섬일 거야.
코에서 국수가 치렁치렁 나오는 꿈; 깨어났더니
문이 조금 열려 있고 불이 그대로 켜져 있잖아.
누가 다녀갔나? (누가 다녀갔군!)
새벽 두시였고, 주방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고 얼른 닫았다니까.
뒤축 구긴 웬 구두가 들어 있는 거야.
그리고 여행사 광고가 떠올랐지. 머리빗 같은 야자수가
쓰러질 듯 휘면서 바람을 빗겨주는 섬;
--- p.90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는 존재>
원목 옷걸이에 축 처진 내 가다마이, 일요일 오후의
공기 속에 그것은 있다
나를 담았던 거죽,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깨닫는 나의 한계:
내가 채운 나의 용량, 그것은 있었다
누군가 감아놓은 태엽의 시간을 풀면서
하루종일 TV앞에서
오른팔이 아프면 왼팔로 머리를 받치고
길게 모로 누워 있는 일요일; 이 내용물은
서서히 금이 가면서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고 있다
KAL기 잔해에서 실신한 여자를 헬기가
끌어올릴 때 바람이 걷어올리는 붉은 팬티;
죽음은 그렇게 부끄러움을 모른다
강 수심으로 내려가는 돌처럼
어디까지 내려가나 보자, 아예 작정을 하고
맨 밑바닥까지 내려온 덩어리; 하품하면서
발가락으로 마감 뉴스를 끌 때도
옷걸이에 축 처진 내 옷, 어떤 억센 힘에
목덜밀 붙잡힌 자세로
그것은 월요일이 된 공기 속에 있다
이것도 삶이라면, 삶은 욕설이리라
TV 위엔, 마람을 묶어놓은 딸아이 꽃다발;
바르르 떠는 셀로판紙가 알려주는 공기
--- pp. 25-26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는 존재>
원목 옷걸이에 축 처진 내 가다마이, 일요일 오후의
공기 속에 그것은 있다
나를 담았던 거죽,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깨닫는 나의 한계:
내가 채운 나의 용량, 그것은 있었다
누군가 감아놓은 태엽의 시간을 풀면서
하루종일 TV앞에서
오른팔이 아프면 왼팔로 머리를 받치고
길게 모로 누워 있는 일요일; 이 내용물은
서서히 금이 가면서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고 있다
KAL기 잔해에서 실신한 여자를 헬기가
끌어올릴 때 바람이 걷어올리는 붉은 팬티;
죽음은 그렇게 부끄러움을 모른다
강 수심으로 내려가는 돌처럼
어디까지 내려가나 보자, 아예 작정을 하고
맨 밑바닥까지 내려온 덩어리; 하품하면서
발가락으로 마감 뉴스를 끌 때도
옷걸이에 축 처진 내 옷, 어떤 억센 힘에
목덜밀 붙잡힌 자세로
그것은 월요일이 된 공기 속에 있다
이것도 삶이라면, 삶은 욕설이리라
TV 위엔, 마람을 묶어놓은 딸아이 꽃다발;
바르르 떠는 셀로판紙가 알려주는 공기
--- pp. 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