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 세상에 이보다 더 가슴 깊이 와 닿는 호칭이 어디에 있는가? 부르고 또 불러도 언제나 코끝을 찡하게 하는 분들이 아니던가? 아들과 딸! 또 세상에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이름이 어디에 있는가? 떠올리고 듣기만 해도 언제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들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0년 초 서울에 있는 400명의 청년, 대학생들에게 지금까지 자기의 삶에 가장 많은 고통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39.2%로 단연 1위를 차지한 것이 부모였다. 거꾸로 부모들에게 누구 때문에 가장 힘들고 마음이 아픈가를 물어본다면 자녀 때문이라는 대답이 1위로 나오지는 않을까?
아빠와 아들, 부모와 자녀, 평생의 위로와 소망의 관계이길 바라지만 때로는 이처럼 날카로운 상처와 아픔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생각만 해도 분명 가슴 설레는 관계인데도 이렇게 아물지 않는 고통과 분노의 관계로 살아가기도 한다. 하나님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복을 주시고, 서로 아름다운 관계로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기를 원하셨건만.
나는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고 신음하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 부모와 자녀 관계가 복된 관계로 치유되고 회복되길 바란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부모와 자녀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땅의 모든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고, 가정과 사회에 소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간절한 나의 바람이다. 이 바람이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실제적인 회복으로 이어지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했다.
첫째, 부모와 자녀에게 치유와 회복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도록 체계적으로 설명해 나갔다. 둘째, 부모와 자녀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을 깊이 다루었지만, 추상적이지 않게 아주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셋째, 부모나 자녀라면 누구나 쉽게 읽고 실제 자신에게 적용 가능하도록 사례를 풍성하게 들어가며 설명을 했다. 넷째, 부모와 자녀의 치유와 회복을 집중적으로 다루되, 예방과 좋은 모델 제시에도 세심한 배려를 했다. 다섯째, 부모나 자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개별적으로만 보지 않고, 통합적인 관점에서도 볼 수 있게 했다. 여섯째,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방법과 대안을 제시했다.
나는 대학교에 다니는 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아버지이다. 그리고 팔순이 넘으신 부모님과 칠순이 넘으신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에게는 자녀이기도 하다. 그래서 창세기 9장의 노아와 그 아들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면서도 이 책의 내용이 남의 얘기나 남에게 주는 교훈으로 쓴 것이 아니라 나의 얘기이고 나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다. 부모로 바로서기 위한 한 아버지로서의 절규이자, 축복된 자녀로 바로서기 위한 한 자녀로서의 몸부림이 이 책에 녹아있다.
지금 이 책의 원고를 다 마무리 하고, 사랑하는 아들, 딸과 함께 원고를 읽고 있다. 마지막 원고를 읽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별로 말은 안 하지만, 이 내용을 우리 각자에게 준 교훈으로 받아들이면서 서로에게 더 좋은 부모와 자녀가 되어서 믿음의 명가를 세워가길 다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복을 빈다. 부디 복된 부모가 되고, 복된 자녀가 되어 복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이 주신 복과 사명을 누리고 감당하는 믿음의 명가가 되길! 이 책이 그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근래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가족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에 빗대어서 부자(父子)관계를 꼬집는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촌수비유이다. 촌수가 멀어질수록 관계성이 멀어진다는 비유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 때, 부자(父子)간의 촌수(관계)는 1촌이다. 이것은 법적인 촌수이자 곧 부자간에 피부로 느끼는 촌수이기도 하다. 이 때에 부자간의 관계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가깝고 친밀한 관계이다. 그런데 아들이 자라가면서 법적인 촌수와 피부로 느끼는 촌수 사이에는 거리감이 차츰 생기기 시작한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법적인 촌수는 변함없이 1촌이지만 부자간에 피부로 느끼는 촌수는 2촌 이상으로 멀어져간다. 좀더 성장해서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그 때는 4촌 이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는 서로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발생되고, 서로에게 매울 수 없을 것 같은 간격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이제는 8촌처럼 아주 멀어짐을 느낀다. 무관심을 넘어서 이제는 때론 말이 통하지 않고, 오히려 갈등과 반감을 빚게 되는 경우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아들이 더 성장해서 대학교에 들어가 성인 나이가 되면, 그 때는 사돈의 8촌처럼 느껴진다. 다 큰 아들과 부모는 정말 남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더 나아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직장에 들어가면 그 때는 사돈의 8촌도 아닌 그냥 한 나라 동포 같은 관계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한 나라에서 그냥 같이 살아가는 관계 정도로만 느껴질 수도 있다. 마침내 아들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면 그 때는 해외 동포 같은 관계로 느껴진다. 해외동포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이 살아가다가 어쩌다 사건이 터지거나, 해외동포가 간혹 고국에 들리는 것처럼 간혹 특별한 절기나 일이 있어 서로 만날 때만 부자(父子)의 관계를 느낀다는 뜻이다.
고등학생 남매를 둔 부모가 자녀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자녀들이 학교에 돌아와 자기들의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리면 어떤 대화도 할 수가 없었다. 자녀들은 식사시간에도 부모님과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자녀들의 그런 모습이 얼마나 잘못된 모습인지를 훈계도하고 때로 혼을 내기도 했지만, 자녀들에게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부모님에게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기 부모님은 자기들을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항상 일방적으로 잔소리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녀들이 3개월가량의 부모님의 노력을 통해 차츰 바뀌어져갔다. 3개월 동안 이 부모님이 한 것은 3가지였다. 첫째는 부부가 학교에 가 비어있는 자녀들의 빈방에서 침대를 잡고 매일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섰던 자녀들이 미처 챙기지 못했던 물건을 가져가려고 다시 집에 왔다가, 자기들의 방 침대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님을 보게 된 것이다. 그날 자녀들은 부모님이 자기들에게 지금까지 잔소리만 해 온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진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숙연해졌다. 둘째는 부모님이 표정을 바꾼 것이다.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도 항상 웃어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녀들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자녀들에게 매번 부드럽게 웃음 띤 얼굴로 대한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많은 인내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러는 가운데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에 대한 자녀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셋째는 부모님이 자주 축복의 문자를 보내는 것이었다. 답장이 오든 오지 않든지 상관하지 않고 꾸준히 매일 매일의 상황을 고려하여 격려하고 인정하고 믿어주며 축복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었다. 물론 3개월 동안 거의 답장이 없었다. 이 부모님이 이렇게 한데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도 그랬겠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사실 부모로서 두 자녀에게 그 동안 공부하라는 말 외는 따뜻하게 대한 적이 별로 없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작은 것이라도 내가 먼저 깨닫고 꾸준히 시도하면 그것이 부자관계의 견고한 빗장을 여는 열쇠가 된다.
우리는 간혹 곁길로 빠진 자녀의 가슴을 치며 이렇게 하소연하는 부모를 본다. “이 놈아 네가 왜 이렇게 되었어. 언제 내가 너한테 이런 짓하라고 가르쳤어. 네가 도대체 누구를 보고 배워서 이 모양 이 꼴이야” 그 모양 그 꼴이 된 자녀가 누구를 보고 배워왔겠는가? 부모의 DNA다. 부모가 자녀보다 먼저 된 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야 한다. 자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DNA에는 부모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유전적 DNA’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DNA가 있다. 자녀가 자기의 삶을 통해 형성해온 DNA이다. 나는 이 DNA를 ‘삶의 DNA’라고 부른다.
자녀의 ‘삶의 DNA’는 누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아 형성되어왔겠는가? 말할 것도 없이 부모이다. 부모는 자녀의 삶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삶의 DNA’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부모와 자녀관계가 아름다운 관계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부자(父子)에게 형성되어 있는 바람직하지 않는 ‘삶의 DNA’가 바꿔져야 한다. 자녀의 바람직하지 않는 ‘삶의 DNA’가 바꿔지려면 부모가 먼저 바꿔져야 한다. 부모가 바꿔지면 자녀의 ‘삶의 DNA’도 바꿔진다. 부모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자녀의 ‘유전적 DNA’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바꿔지면 자녀의 유전적 DNA활동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중략) 먼저 된 자 부모가 좋은 모습으로 먼저 변화하는 것이다. 부모가 변화하면 자녀의 유전적 DNA 중 부자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DNA에 불이 켜지면서 활동이 왕성하게 촉진되고, 반대로 부자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DNA는 불이 꺼져 활동이 잠잠해 진다. 이렇게 될 때에 자녀에게 좋은 변화의 모습이 나타난다. 즉 부모가 좋은 모습으로 먼저 변화되면, 자녀의 ‘삶의 DNA’의 형성에도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뿐만 아니라, 부자관계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녀의 유전적 DNA활동을 촉진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치어. 결국 자녀가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부자관계는 아름답게 회복된다. 생각해 보라. 부모가 아름답게 변화하고, 자녀도 좋은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그리고 부자관계가 행복하게 세워지는 멋진 모습을! 부모들이여 자녀에게 요구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변화를 시도하라. 그 숭고한 결단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보여주라. 작은 것부터 변화를 시도하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부모로서 당신이 변해야 될 목록을 작성하라. 어렵고 힘든 본질적인 문제도 피하지 말고 변화를 위해 기도하며 결단을 해보라. 그것이 당신이 사는 길이요 당신 자녀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