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섬은 말없이 우뚝 서서 낙엽청소기가 눈을 한 겹 한 겹 털어내는 장면에 넋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분 후 메이어는 청소기를 끄고 이쪽으로 와보라고 손짓했다. 15센티미터 정도 쌓여있던 눈이 완전히 제거되었고, 그곳에 가로 세로 40센티미터쯤 되는 원형의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안에 원형 그대로의 부츠 자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는 그리섬을 돌아보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 p. 200
박사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아까 말했지만, ‘용의주도하게’ 냉동되었어. 누군가 냉동화상을 막는 조치를 취한 거야. 시신에 조금씩 물을 뿌리는 거지. 화초에 물을 주는 분무기 한 통 정도면 충분해. 냉동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그렇게 시신을 적셔 주는 거야. 그렇게 해서 냉동화상을 막았어.”
--- p. 41
사라는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소설을 설렁설렁 넘기고 있었고(과학수사대는 부드러운 추리소설만 읽을 수 있었다. 보다 '현장감 있는' 추리소설은 끊임없이 부정확한 사실들이 나와서 집중이 안되고 짜증이 나기 십상이었다), 그리섬은 스티븐 킹의 신작소설을 읽는 십대처럼 곤충학 책에 푹 빠져있었다.
--- pp 38
"이럴 수가."
오라일리가 돌아섰다.
"왜 그러나?"
"왜 텅 비었는지 알겠어요. 아무것도 만지지 마세요."
오라일리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양손을 옆으로 들어 보였다.
"알았네, 알았어."
"범죄현장이에요. 닉!"
"왜?"
닉이 긴장한 눈빛으로 부엌에서 나왔다.
"이 집에 있는 물건은 분무기랑 청테이프, 끈 주머니가 다야." (...)
" 로빈스 박사님 검안서 못 보셨어요? 범인이 마시 셔먼을 냉동한 후에 냉동 흔적을 없앨 목적으로 물을 뿌렸다고 했잖아요."
오라일리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그제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 pp 282~284
욕실로 들어가 보니 메이어가 이미 옷걸이의 용도를 알아채고 양쪽 갈고리를 쓰레기통 뚜껑에 난 구멍에 걸어놓고 있었다. 그리섬은 수퍼글루 몇 방울을 달아 오른 팬 위에 떨어뜨렸고, 메이어는 호수에서 가져온 지퍼 백을 보통 옷걸이 위에 조심스럽게 걸어 놓았다. 메이어는 구부린 옷걸이의 U자 모양 위에 칼을 걸쳐놓았다.
"준비됐습니다."
열 방울 남짓 수퍼글루를 떨어뜨린 후 기다렸다. 몇 초 지나자 접착제에서는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좋았어."
그리섬은 시간을 쟀다.
"지금."
메이어는 뚜껑을 쓰레기통 위에 얹었다.
"지금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좀 말해주시오."
코미어가 재촉하자 있는 그래도 그리섬은 답했다.
"지문 채취 중입니다."
노인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지문 채취라. 수퍼글루, 옷걸이, 쓰레기통으로?"
그리섬은 어깨를 으쓱했다.
"구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한 거죠."
--- pp.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