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장 보수적인 종편에 나가서도 진보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 진보 패널 일색인 채널에 나가서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 DJ 정신에 충실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중도를 찾는 것, 이것이 비판적인 현실 정치인이었던 DJ가 항상 취했던 정치적 자세였다. 한때 민주당에는 소속 의원에게 특정 종편에 출연하지 못하게 하고, 특정 언론과의 인터뷰도 금지하는 공개적인 불문율이 있었다. 언론의 속성을 모르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집권 여당도 아니고, 야당에게 가장 크고 효과적인 투쟁의 장소인데 찬밥 더운밥을 가려서야 되겠는가. 당 내외부에서도 이러한 방침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그 금기는 내가 가장 먼저 깼다. 그 뒤 다른 의원들도 이렇게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p.44, 「1부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중에서
내가 의식처럼 이렇게 방송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거듭 말하지만 방송 언론은 정치인, 특히 야당의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투쟁 장소이자, 투쟁 방법이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방송은 국민에게 야당이 있다는 것을, 야당 정치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특히 야당 정치인은 방송 언론에 많이 나오고 언급되어야 한다. (중략)
만약 지금 DJ가 살아 계신다면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셨을 것이다. 즉 과거에는 “좋은 신문을 읽고, 좋은 정당에 투표하고, 그것도 안 되면 담벼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하셨지만 지금은 아마도 “좋은 방송, 좋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고, 좋은 유튜브 채널을 구독 및 시청하고, 좋은 SNS 댓글을 달고, 그것도 정 어려우면 ‘좋아요’라도 누르는 것이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하시지 않았을까. 이른바 ‘디지털 시대의 행동하는 양심, 신(新) 행동하는 양심’이다.
--- p.50-51, 「1부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중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는 날, 나는 ‘DJ가 만든 당에 DJ비서실장이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다짐하며 어떤 경우에도 DJ 비서실장답게 정치를 하고, 행동하겠다고 마음을 추스렸다. 나에게 민주당은 DJ가 만든 당이며, 특히 지금 윤석열 정부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DJ,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김근태 세력까지 단합해서 강한 야당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DJ가 mb정부에서 초래된 민주주의, 서민 민생경제, 남북 관계, 3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야 시민단체, 민주화 운동 세력 등 과거 10년 집권했던 진보 세력들이 총단결해서 “하나의 링에서 싸우라”고 하신 것처럼 나도 민주당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그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DJ 정신을 주변에 설파하고 민주당이 DJ 정신에 충실한 당이 되는 길에 벽돌 한 장이라도놓겠다고 다짐했다.
--- p.55-56, 「1부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중에서
시민, 당원과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특강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 특강들이 민주당에 복당해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나는 이 강연에서 보고 들었던 내용을 기록하고 정리해서 방송 등에 활용했고 당 지도부에도 여론을 전달했다. 특히 강연을 통해 앞으로 ‘해가 지기 전에 내가 몇 마일을 더 가야만 하는 이유’, 민주당의 당원으로서 활동해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하고 또렷해졌다.
첫째,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호남에 대한 감사, 호남 발전과 호남 예산을 챙기는 일이다. 이것은 나의 정치 활동 목표이기도 하지만 DJ 비서실장으로서 DJ께서 호남에 못다 한 약속을 대신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 p.61-62, 「1부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중에서
퇴임 후 첫 방송으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을 때, 사회자가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의례적으로 재임 시절에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나는 “국정원에 보관 중인 과거사 관련 자료들이 이제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당사자들의 동의하에 열람하고 폐기하는 특별법 제정을 국회가 수용하도록 설득하지 못한 일이 가장 아쉽다”고 답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소위 ‘국정원 X파일’로 방송을 요란하게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중략)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국정원 간부와 직원들에게 “박정희·김종필의 중앙정보부도, 전두환·노태우의 안전기획부도, 김대중과 문재인의 국정원도 다 국정원의 역사다. 과거 잘못이 있다면 직원들은 단지 대통령, 원장을 잘못 만나서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이라며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엄정한 정치 중립을 실천하면 국정원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최고 국가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p.95-96, 「2부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윤석열 정부는 검정일체(檢政一體) 정부다. 수사와 정치 사이에 경계가 없다. 아니, 수사로 정치를 끌고 가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정치를 수사하듯이 하고, 검찰은 수사를 정치하듯이 한다.’ 본디 수사는 무자비하다. 직전 대선에서 0.73% 차이로 패배한 국회 제1당, 야당 대표와 관련해 정권 출범 전후 지금까지 수없이 압수수색을 하고, 야당 대표가 단식 10일째를 맞고 있었던 상황에서 무슨 죽을죄를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1차 소환해서 11시간 동안 조사하고, 2차 소환 조사에 이어 국회 회기가 열릴 때를 기다려 체포동의안을 청구하는가. 수사가 아니고서는 정치의 영역에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수사는 성역이 없지만, 그러나 정치는 상대가 있다. 좋든 싫든 상대를 인정해야만 한다. 수사는 선악의 이분법이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 어딘가에서 타협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양보해야 한다. 수사는 상명하복이다. 그러나 정치는 숙의와 토론, 여론과 민심을 고려해야 한다. 민심이 두렵기 때문에 대통령을 배출했던 정당이 대통령을 출당시키기도 하고,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치는 없고 수사만 있다.
--- p.108-109, 「3부 국가 재난시대, 국민 수난시대」 중에서
만약 지금 DJ라면 이 위기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어떻게 하셨을까. 안타깝게도 DJ는 mb정부 3대 위기와의 싸움을 목전에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셨고, 당신도 떠나셨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지금 윤석열 정부의 4대 위기를 맞이한 우리에게 더 많이 고민할 수 있게 하고, 또 스스로 답을 찾을 기회를 주신 것은 아닐까. 마치 낭독하지 못한 DJ의 노무현 대통령 추도사처럼, 출판되지 못하고 발견된 원고 초안, 즉 수고(手稿)처럼 말이다. (중략)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자초한 이 위기 앞에서 과연 절박한가. 대통령 자신에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DJ로부터 정치를 배운 정당답게 mb정부 3대 위기를 해결하려고 했던 DJ의 절박함, 처절함, 치열함이 있는가. 나는 DJ의 말씀·행동·고민을 곱씹어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려 윤석열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가 반성하고 달라지기를 바란다. 또한 야당은 비판 대안 세력으로서 더욱 강해지기를 바란다. 만약 그들이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정치권을 향해 위기 극복에 나서도록 촉구해야 한다. DJ를 빌려 이 책을 쓰는 이유다.
--- p.127-128, 「3부 국가 재난시대, 국민 수난시대」 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 이미 위기의 절반을 극복했던 DJ의 절박함, 치열함을 배워야 한다. 하물며 현직 대통령으로서 경제 위기 앞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경제는 전문가들의 정책이기 이전에 국민과 시장의 심리의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이 경제 위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최소한 서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는 모습을 진심으로 일관되게 보여준다면 시장과 국민의 불안은 조금이나마 진정될 것이다. ‘국가가 사라져도 시장은 영원할 것’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경제 정책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시장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지난 1년 반 동안 끝없이 추락해온 서민 민생경제 위기 앞에 윤석열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답해야 한다.
--- p.194-195, 「5부 서민 민생경제의 위기」 중에서
나는 지금이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DJ가 취임사에서 밝혔던 대북 정책 3대 원칙에서부터 시작한다면 남북 관계에 큰 전환점이 올 수 있다고 믿는다. 첫째, 우리는 북한의 어떠한 무력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하지 않는다. 셋째, 북한과 화해 협력을 가능한 분야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간다. 이 얼마나 간결하고도 단호한 원칙인가. 이 3대 원칙에 미국과 북한,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반대할 리가 없다. 이미 그들은 페리 프로세스,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에 합의했던 당사자들이며, 그 방법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검증된 해법이며, 특히 한반도 평화를 시작으로 동북아시아 평화 체제를 구축한다는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DJ의 대북 3대 원칙을 선언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
다. 따라서 지금 당장 이러한 3대 원칙을 밝히는 것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북한 붕괴론, 선제 타격론이라는 아집과 환상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정책이다. 남북 관계에서 DJ의 햇볕정책 말고 다른 정답은 없다.
--- p.250-251, 「6부 남북 관계 위기」 중에서
정치 경험이 일천하고 정치적 부채 의식이 없는 윤석열 대통령이 여의도정치에 적응하거나 이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1년 반이 지났다. 그사이 대통령이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일들이 수없이 생겼으며, 동시에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정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선배 정치인이자 선배 대통령 DJ는 재임 중에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국정 노트에 기록한 ‘대통령의 수칙’을 읽고 읽으며 역사와 국민 앞에서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원칙을 고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굴복하지 않고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고 통합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나는 DJ의 이 대통령 수칙을 윤석열 대통령도 간직하고 어려울 때마다 꺼내볼 것을 권한다. 한 장짜리 종이에 적힌 메모로 길지도 않다. 그 메모에는 정치 9단의 지혜, 5년 단임제 대통령 선배의 조언이 있다. 자신의 외로운 결정이 국민과 정치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치열한 고민이 그 속에 있으며, 특히 야당, 언론, 국민에 대한 진정한 자세가 녹아 있다. 지금 DJ라면 그 수칙을 읽어보라고 하시지 않으실까.
--- p.321, 「8부 지금 DJ라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