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초로의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30세 정도 대 보이는 출가한 딸의 형편이 넉넉지 않아 남의 집 문간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딸이 세를 들어 사는 집 아들과 할머니의 손자가 동갑이라 자주 싸우는데, 싸울 때마다 손자가 이이곤 하니 주인집 눈치가 곱지 않았다. 하루는 딸이 시장에 가는 길에 아들을 방에 들여보내고 밖에서 자물통으로 잠궜단다.

때마침 친정어머니가 딸네 집에 들렀다가 잠겨있는 방안에서 손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지더라는 것이다. 시장 갔다 돌아오는 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또 싸울까봐 걱정이 돼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것이었다.

모녀는 부등켜안고 한바탕 울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돈까지 보태 아파트를 장만하러 왔는데 돈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잔금을 4년 분할해서 납부하도록 조치했다. 그때의 고마워하는 모습은 아직까지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렇게 어렵사리 집을 마련한 분들의 집들이에 초대받아 가보면 상다리가 휜다는 비유가 딱 어울릴 정도로 대단하다. 그 동안 안 먹고, 안 입고, 안 썼으니 이제부터라도 한번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일 터인데, 그들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다보면 내가 왜 주택사업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업을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사명감이 새록새록 싹트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