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이 되자 왕은 또다시 책이 보고 싶었고 결국 책을 들고 나와 정원으로 갔다. 왕이 루비와 터키석이 박힌 잠금 고리를 푸는 순간, ‘용’이라고 글자가 적힌 책장이 저절로 펼쳐졌다. 그리고 그 위로 태양빛이 가득 내리쬐자 순식간에 커다란 붉은 용이 책에서 튀어나왔다. 용은 거대하고 새빨간 날개를 펼치고 정원을 지나 멀리 산으로 날아가 버렸다. 라이오넬은 빈 면만 앞에 두고 홀로 남았다. 책장에 용은 없었다. 초록 야자나무와 노란 사막 그리고 연필로 그린 용의 밑그림 밖으로 물감 붓이 엇나가는 바람에 생긴 붉은 얼룩들만 가느다랗게 남았다. 그제야 라이오넬은 자신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음을 깨달았다. 왕이 된 지 채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벌써 자신의 충직한 국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붉은 용 한 마리를 풀어 준 것이다. 국민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돈을 모아 자신에게 왕관이며 뭐며 전부 사 주었는데 말이다. - 본문 20~21쪽 중에서
하마 무리 전체가 숲이 움푹 꺼진 곳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그곳에 떡하니 용이 버티고 있었다. 용은 거룻배만큼 크고 용광로처럼 붉게 타올랐고 불을 뿜으며 번쩍이는 이빨을 드러냈다. “사냥이고 뭐고 다 끝났어!” 왕자가 외쳤다. 그리고 정말로 그랬다. 용은 보통의 사냥감처럼 행동하며 도망가는 대신 곧장 하마 무리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코끼리의 등에 타고 있던 왕자는 자신의 귀한 하마 무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마리씩 용에게 잡아먹히는 꼴을 지켜보는 굴욕을 겪었다. 그것도 자신들이 사냥하러 나왔던 용에게 말이다. 용은 마치 개가 고기 조각을 삼키듯 하마들을 전부 집어삼켜 버렸다. 그것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뿔피리 소리에 맞춰 별생각 없이 즐겁게 사냥을 나왔던 하마 무리 가운데 어린 하마 한 마리조차 남지 않았다. 용은 자신이 빠뜨리고 잡아먹지 않은 하마가 있는지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본문 49~50쪽 중에서
“몸이 별로 안 좋은가 보구나.” 용이 그 커다란 자줏빛 머리를 끄덕였다.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동물들이 다 그렇듯 원하기만 하면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뭐 좀 가져다줄까? 탐이 점잖게 물었다. 용이 호기심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자줏빛 눈을 번쩍 떴다. “가서 번빵 한두 개를 따서 올게. 아주 가까이에 아름다운 번 나무가 있거든.” 탐이 달래듯 말했다. 용이 커다란 자줏빛 입을 벌리더니 자줏빛 입술을 핥았고 탐은 달려가 번 나무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건포도가 들어간 신선한 빵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기둥 옆 키 작은 덤불에서 자라는 바삭한 빵도 몇 개 따 왔다. 섬이 엉뚱한 방향으로 돈 데서 비롯된 또 다른 현상이 있었으니, 빵과 케이크와 쿠키처럼 우리가 만들어 먹어야 하는 것들이 로툰디아에서는 나무나 덤불에서 자랐다. 반면 콜리플라워, 양배추, 당근, 사과, 양파 같은 것들은 요리사가 푸딩이나 파이를 만드는 것처럼 만들어 먹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