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조(南朝) 양(梁)나라 때의 승려로 회계현(會稽縣) 상우[上虞, 현재의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 사람이다. 당(唐)나라 때 도선(道宣)이 지은 ≪속고승전(續高僧傳)≫에 그에 관한 기록이 매우 간략히 실려 있다. 주로 가상사(嘉祥寺)에 머물면서 포교와 저술 활동을 했으며, 당시에 존재했던 여러 승전(僧傳)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누락된 부분이 많은 점에 불만을 갖고 ≪고승전≫을 저술했다.
역자 : 변귀남
중국 고전소설을 전공하고 2002년 영남대학교에서 <六朝 佛敎類 志怪小說 硏究>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한의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漢譯經典과 佛敎類 志怪小說의 영향관계 소고>, <≪高僧傳≫의 志怪的 서사형식 소고>, <≪百喩經≫의 寓言特色 小考?≪列子≫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雜寶藏經≫의 本生故事 小考>, <≪六度集經≫의 寓言特色 小考>, <≪法苑珠林≫‘六道’篇 小考?感應緣의 志怪故事를 중심으로>, <韓·中僧傳의 神異的 敍事方式 比較?≪高僧傳≫과 ≪三國遺事≫를 중심으로?>, <譬喩系佛典 敍事特性 試論?≪舊雜譬喩經≫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구마라습은 평소 대승 경전을 좋아해 대승의 뜻을 널리 펴고자 했다. 그러나 늘 한탄하기를, “내가 만약 대승아비담(大乘阿毘曇)에 대한 논서를 쓴다면 가전연자(迦?延子)는 비교할 수도 없으리라. 이제 중국 땅에 깊은 학식을 가진 자가 드물어 여기서 붓을 꺾노니, 장차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고 하며 쓸쓸히 그만두었다. 오직 요흥을 위해 ≪실상론(實相論)≫ 2권을 저술하고, 아울러 ≪유마경≫에 주석을 달았을 뿐이다. 입에서 나오면 그대로 문장을 이루어 고치거나 뺄 것이 없었고, 문체와 비유가 완곡하면서도 심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75~76쪽
중국 땅에는 열반이 늘 존재한다는 학설이 없었고, 다만 [열반의] 수명이 길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에 혜원은 탄식하며 말했다. “불성이란 지극한 것이며, 지극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진리가 어찌 끝이 있겠는가?” 이리하여 ≪법성론(法性論)≫을 지어 말했다. “지극한 것은 변하지 않음을 그 성품으로 삼으며, 이 불변의 본성을 얻으려면 궁극의 실상을 깨닫는 것으로 종지를 삼아야 한다.” 구마라습은 ≪법성론≫을 보고 탄복했다. “중국인에게는 대승 경전이 없는데도 [혜원의 견해는] 은근히 진리와 부합하니, 신묘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