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궁정의 여성들 사이에서 한자의 초서체를 바탕으로 한 표음문자, 즉 히라가나가 일상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어 표기를 위한 그 새로운 문자 덕에, 그때까지 남성 지식인이 장악한 한자 문화 안에서 침묵을 강요당해왔던 여성들이 와카和歌와 일기와 수필과 편지, 결국에는『겐지 이야기』와 같은 거대한 이야기까지도 자신의 말로 쓸 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변모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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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전 극소수의 상층 귀족 사이에서 시작된 독서의 습관이 에도와 교토, 오사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윽고 일반 서민을 포함해 일본 사회 내 모든 계층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메이지 유신도, 그리고 뒤이은 문명개화도 그 배경에는 이처럼 에도시대 후기에 급속도로 두께를 더해간 독자층의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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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번째로 문해율인데, 프랑스의 역사인구학자 에마뉘엘 토드Emmanuel Todd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1900년이 되면 여성을 포함하여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 시기가 일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다만 이것은 독일, 스칸디나비아,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잉글랜드 동북 및 남부, 프랑스 동부 등의 선진 지역에 한정된 것이고, 같은 유럽이라도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등의 지중해 지방, 이탈리아 남부 등에서는 겨우 50퍼센트, 지역에 따라서는 25퍼센트 이하인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땠을까? 이탈리아의 경제사가 카를로 치폴라Carlo Maria Cipolla에 따르면 같은 1900년, 합중국에서도 백인과 비백인을 합쳐 인구의 약 90퍼센트가 유럽의 선진 지역 정도로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문해율에 있어서는 일본도 구미 선진권도 거의 같은 수준으로 20세기를 맞이한 것이다.
--- p.121~122
아무리 탄식을 한들 그로 인해 상황이 조금이라도 호전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문고와 함께 이와나미쇼텐의 출판물의 중추를 이루어온 신서가 과감히 표지의 색깔을 ‘청’에서 ‘황’으로 바꾸어보았다. 그것이 역시 1977년의 일이다. 이때의 전환에 대해 당시 편집자들이 대화를 나눈 좌담회 기록이 후에 이와나미 신서의 별책으로 나온 『이와나미신서 50년岩波新書の50年』에 수록되어 있다.
청판 시대는 대학생이 전체 독자층의 제1위에 있다고 하여 우리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일을 추진해왔다. 물론 회사원도 독자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일반 사회인 대상의 기획서도 매년 많이 내왔지만, 적어도 1970년대 초까지는 그렇게 파악해왔다. 그것이 1970년을 지난 시점부터 웬일인지 학생 독자가 줄어드는 것 같은, 역으로 이야기하면 독자층이 확산되고 있다는 실감을 편집부에서도 일상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 아무튼 일반적으로 이야기해서 생활도 다양화하고 있고 독자의 관심도 여러 가지로 분화되었다. 그러한 시기에 황판의 출발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p.209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익혀온 “몸을 동반 한 독서”의 기억이 사라져버릴 리는 없다. 그 개인적인 기억에 무라사키 시키부나 스가와라노 다카스에노무스메에서 시작된, 일본인의 독서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중첩되고, 그것이 평소에 책을 그다지 읽지 않는 사람들을 간신히 책과 결부해주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거기에 가기만 하면 반드시 다양한 책이 있고 자신의 관심을 어떤 방향으로든 심화해갈 수 있는 환경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면, 책을 읽지 않게 된 사람들이 한 번쯤은 다시 책을 읽기 시작 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 p.241~242
책을 적극적으로 읽는 사람의 숫자가 줄고 산업으로서 출판의 기반이 이 정도로 내려앉아버린 이상 그것은 과거와 연장선상에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역시 ‘재발견’이 필요하다. ‘옛날과 비교해서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라든가 ‘오래되고 좋은 독서 습관을 지켜라’라며 탄식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대로 계속하고 싶어하는 소망만이 아니라 과감하게 절단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만일 ‘혼자서 묵묵히 읽는다. 자발적으로, 대개는 자신의 방에서’라는 독서가 그토록 소중한 것이라면, 그 매력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그것을 잃어버려보는 편이 낫다. 그러면 아마도 나 같은 ‘노년 세대’가 사라져버린 후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책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고, 그로부터 종이책과 전자책을 뭉뚱그려 새로운 독서 습관을 재구축해갈 것임이 틀림없다.
---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