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오랫동안 산유국 중심의 에너지 패권이 형성되어 왔다면, 이제는 에너지 패권이 전 세계로 분산되고 있다. 지구의 온도는 더 방조할 수 없을 만큼 올랐고, 이대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난다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기후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비단 기후위기만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세계 각국의 신재생·친환경 에너지 정책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외치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숨어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확산이 필연적인 현상인 것처럼, 수소경제의 저변 확대도 반드시 일어나게 될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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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각 국가들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 신재생에너지의 도입은 반드시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발전 변동성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기 전까지는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위해서 기저발전원의 비중을 함부로 급격히 낮출 수 없다. 당분간 과도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변동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전기가 많이 생산될 때 그 전기를 잘 저장해두면 되고, 전기를 많이 생산하지 못할 때 저장해둔 전기를 꺼내 사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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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에너지의 변동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ESS도 충분치 않다면 또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전기를 전기가 아닌 다른 형태로 변화시켜 저장하는 ‘Power to X(P2X)’다. ‘Power(전기)’를 ‘X(또 다른 어떤 형태)’로 변환하여 저장·운송하는 방식으로, ‘X’에는 다양한 형태가 대입될 수 있다. 여기서 X를 ‘형태’라 고 언급한 이유는 전기를 특정 물질로 변환하여 저장하는 것만을 지칭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P2X의 가장 대표적인 물질이 수소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생산된 잉여 전기를 수전해 설비에 공급하면 수소를 얻을 수 있다. 수전해 설비란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와 산소를 얻는 장치다. 이렇게 신재생에너지와 수전해 설비를 통해 생산한 수소를 그린수소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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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 전기를 수소로 변환하여 저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에너지의 저장 및 보관이 용이하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초과 생산된 전기를 ESS 그리고 수소로 저장했을 때를 각각 비교한다면, ESS의 성능과 수소 저장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수소로 저장했을 때 단위면적당 훨씬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보관할 수 있다. ESS도 자연 방전이 발생하고 수소도 자연 기화 손실이 발생하지만, 일반적인 손실율도 수소가 상대적으로 낮다. 둘째, 에너지 운송이 용이하다. 수소의 가장 큰 비교 우위라고 할 수 있다. 태양광 발전 환경이 좋은 사막 지역이나, 풍력 발전 환경이 좋은 먼 바다에서 친환경 전기를 충분히 생산하더라도 이를 대규모 수요처인 도심지로 옮겨오는 것은 또 다른 난제다. 전력계통을 통해 송전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ESS로 저장하여 그 자체를 옮겨온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주는 수단이 바로 수소다. 수소 자체를 압축하거나 액화시켜 운송하려는 방법도 있지만, 최근에는 수소를 암모니아, 메탄올, 이퓨얼(E-fuel) 등과 같은 다른 화학물질과 결합시켜 상대적으로 운송이 용이한 물질 형태로 저장·운송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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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2022년 한 해 동안 ESS 확충에 진심이었다. 2022년 한 해 동안 미국에 설치된 ESS는 4.8GW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2020년과 2021년 두 해 동안 설치된 ESS 용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2022년 당초에는 7~9GW까지 설치할 계획을 발표했지만, ESS에 탑재될 2차전지의 공급량이 부족하여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부족한 ESS를 보완하기 위한 에너지 저장 매개체로는 단연 수소가 손꼽힌다. 실제로 2022년 8월 발효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 IRA에는 수전해 방식으로 생산되는 그린수소를 장려하기 위해 수소 1kg 생산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식의 그린수소 생산법은 친환경적이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기피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부가 보조금이라는 수단을 통해 확실한 마중물 역할을 함으로써 그린수소 시장의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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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최근 수소가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에너지를 저장하는 매개체 역할로서 수소의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가장 많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보유한 국가다. 신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서부 및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문제는 중국 내 전기 수요가 동남 생활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 동남 해안권의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약 35%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용량 비중은 거의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부족한 전기를 수급해 와야 하는데, 서부 및 동북부 지역에서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를 동남 해안권으로 보내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 장거리 송전도 가능은 하겠지만, 송전 거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손실이 커져 효율이 떨어진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수소로 변환하여 옮기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철강을 생산하는 중국은 수소환원제철 기술 등을 활용하여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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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 예산·법령 공고 게시판에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안’이 게재되었다. 청정수소 인증기준 및 청정수소 인증제도 운영에 관하여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함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청정수소를 명확히 정의한다는 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과 같다. 수소법이 처음 제정된 지 3년, 공포 후 시행된 지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청정수소를 어떻게 인증하고 기록하고 관리할 것인지 기준 확립에 나선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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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하반기, 우리나라도 청정수소 기준을 확립하고 본격적인 수소 생태계 확장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이후 코로나19라는 뜻하지 않은 변수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정책적 불확실성도 해소된 만큼 수소 생태계 확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투자가 재개되고, 업황이 개선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되었다는 사실만큼 투자자들에게 희소식은 없을 것이다.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해보기 딱 좋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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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성장성과 방향에 대해서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사회적 흐름을 설명하며 충분히 다루었으니 이제 기업을 하나씩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기업의 가치를 검토할 때 미래 성장성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현재의 안정성(재무 건전성)이다.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수익성, 성장성, 안정성, 활동성으로 구분하여 대표적인 지표들을 담아두었다. 이미 발표된 수치를 기준으로 정리했지만, 향후 안정성을 파악할 수 있는 부채비율 지표가 낮아지고 수익성 및 성장성, 활동성 지표의 기울기가 우상향하는 시점을 포착하는 재미를 직접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 시점이 바로 수소가 우리 주변에 확실히 안착하는 시점이자 투자 성과를 가져다주는 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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