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관해 또는 우리나라 지리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묘향산을 한없는 동경의 산으로 여겨 마지않는다. 심지어 그 그리움이 넘쳐 '요 다음 통일되면 금강산보다 묘향산에 먼저 가보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묘향산이 그토록 매력적인 산으로 각인된 것은 무엇보다 서산대사의 그 유명한 말씀 한마디 때문이다.
'금강산은 수려하나 장엄하지 못하고(秀而不壯)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지만(壯而不秀)
묘향산은 장엄하고도 수려하다.(壯而亦秀)'
--- p.182
'버들은 천 가닥으로 푸르고 복사꽃은 만 점으로 붉구나' --김부식--
'버들은 가닥마다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다' --정지상--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감동이 일어날 때는 차라리 평범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극대효과가 있는 법 아닌가.
본래 어려서는 성격이 비슷해야 친구가 되지만, 나이 들어 만날 때는 달라야 마찰도 없고 마음이 편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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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그 나라의 얼굴이고, 그 도시의 얼굴이다. 조선 중앙력사 박물관도 북조선의 얼굴이고 평양시의 얼굴이다. 그런데 평양시의 중심지인 김일성 광장의 양측에 조선 중앙력사박물관과 조선 미술박물관이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이 나라가 박물관과 미술관을 얼마나 중요시 하고 있는가를 무언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자리 설정은 세계의 박물관 가운데서도 유례가 드물다.
요즘 우리가 텔레비젼을 통해 보게 되는 평양의 모습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김일성 광장 양 옆의 건물이 다름아닌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사실을 나는 평양에 갈 때까지 몰랐다. 그저 로동당 당사나 의사당쯤 되는 줄로 짐작했다. 더욱이 북한은 박물관 소장품이 '별 볼일 없다'는 것이 우리 고고미술사학계의 공통된 의견으로, 심지어 어느 학자는 우리나라 동산 문화재의 95%는 남한에 있다고 자부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닌가.
--- p.225-226
나는 말없이 그가 한평생 간직해온 문학의 진수들을 공으로 듣고 또 이렇게 공으로 풀어놓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용강선생의 문학 감상론이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북한에서는 시를 암송하는 것이 하나의 교양으로 자리를 잡아 식당 의례원(웨이트리스)과 접대원(호스티스)들도 즉석에서 애송시를 읊어주곤 했다. 그것은 북한의 또 다른 면모였다. 아무튼 그는 나에게 문학이 삶 속에 살아 있을 때 그는 얼마나 풍요로운 서정과 행복한 꿈을 갖고 사는가를 낱낱이 알려주었다. 그것은 청천강과 안주 열두삼천골을 본 것 봇지 않은 이번 답사의 보람이고 성과였다.
--- p.165-166
'고구려 문화는 이런 발전의 한 정점에서 그 문화를 끝맺었습니다. 모든 문화는 생성, 발전, 소멸의 과정을 겪고 모든 미술의 양식에는 매너리즘이라는 말기 현상이 따라 붙는데, 고분벽화를 통해 본 고구려 문화에는 어떤 쇠퇴나 하강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문화가 이룩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에서 장렬하게 마감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그렇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