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기도는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남은 찌꺼기를 가지고 큰 민족을 이루고, 넓은 땅을 주고, 복이 되게 해 주겠다고 하신 약속에 아브라함은 감사의 기도, 희망의 제단을 쌓았다. 기도 거울로 하나님의 광대한 축복의 땅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남은 음식 찌꺼기란, 남들에 비해 불공평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내가 기대했던 것들이 만족스럽게 성취되지 못하고, 실망하고, 그래서 삶에 소망이 별로 없는 것들이다. 이럴 때 남은 찌꺼기 음식을 보면서 속상하고 곤혹스러운 주부의 심정이 우리 현실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먹다 남은 것을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도 먹다 남은 것을 버리기를 원하지 않으셨다(요 6:12). 주님은 그 찌꺼기로 뭔가를 행하실 계획을 갖고 계신다.
--- p.32-34
삼손은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반대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비전, 부모의 기도, 나실인의 서원 등에서 모두 경건했던 부모와 백성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삶을 살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동족들의 실망도 컸다.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어겼어도 하나님이 부모에게 하신 약속은 신실했다. 하나님은 삼손의 머리카락이 자라게 하셨고(삿 16:22), 그는 새 힘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 힘으로 막판에 회개 기도를 했다.삼손은 두 기둥을 붙들고 부르짖는 기도를 했다. 제대로 기도하고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삼손은 기도를 시작할 때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바뀌었다.
성경에 삼손 이야기가 4장에 걸쳐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삼손의 출중한 힘을 자랑하거나 그의 방탕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인간에게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은혜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야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은혜를 받을 자격을 고루 갖출 때만 은혜를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의 성공을 통해서만 영광 받으시는 분도 아니시다.우리가 수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5달란트를 가졌지만 1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살아갈 때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기대는 변하지 않는다. 5달란트 받은 내가 본전치기 삶도 못 되고 빈털터리가 되어 인생의 어릿광대로 전락해 세상의 놀림을 당할 때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끝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든 뒤집을 역전 기도는 아직도 남아 있다.
--- p.82-83
믿는 이들에게 왜 어려운 일이 오는가?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바르게 기도할 수 있다. 먼저, 죄 때문에 온다. 이때는 회개해서 성화의 길로 나가야 한다. 또한 훈련과 연단을 위해 온다. 더욱 믿음의 열정을 가져야 한다. 일단은 불평하지 말고 인내하며 견디는 믿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상을 주시려고 때때로 어려움이 온다.
인생의 두려움을 그냥 두려움으로 놔두면 나를 망하게 한다. 두려움이 왔을 때 기도로 방어막을 형성해야 한다. 미국에는 “두려움이 기도를 거치면 용기가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기도는 능력을 불러오고, 견디게 하며, 해결하게 하며, 용기를 내어 일어서게 한다. 기도의 능력을 믿는 신자가 되어야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가 막힐 때가 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럴 때 찬송하자. 찬송하면 마음에 위로가 오고, 그때 입술이 열린다. 찬송과 기도, 말씀은 같이 가야 한다. 평소에도 늘 찬송함으로 기도에 기름칠을 하자! 그러면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하신다. 선교학자 패트릭 존 스톤(Patrick Johnstone)은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신다. 우리가 세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 세게 역사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기도와 찬양으로 세상을 이기는 ‘기찬’ 인생이 될 수 있다.
--- p.134-137
내 의지를 앞세우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내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하나님의 뜻이 내 생애에서 이루어지도록 그분께 모든 결정권을 드린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A. Kierkegaard)는 기도에 관해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자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내 생각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니 금식하고, 그것이 잘 안되면 기도원의 결사 기도로 들어간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는 자칫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포기시키려 하는, 기도의 원래 뜻과는 반대로 가는 스팸 기도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응답을 받으셨다. 처음에는 고난의 잔을 피하려고 기도하셨지만, 응답은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응답으로 받아들이시고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마 26:46)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기도 시작 전에는 고민하셨다. 심히 슬퍼하셨다.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도 하셨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서는 당당하셨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하셨다. 기도하신 예수님께는 고민이 사라졌다. 이제는 일어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잔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시는 일만 남았다. 기도 후에 일어난 능력의 역사다.
--- p.194-195
누구에게나 가시가 있다. 견디기 힘든 큰 가시, 견딜 만한 작은 가시, 남이 아는 가시, 아무도 모르는 가시가 있다. 낳아 주신 부모도 모르고 자식들도 모르는 가시, 부부 간에도 서로 알지 못하는 숨겨진 가시가 있다. 그럼에도 가시가 없는 척 가면을 쓰고 살 때가 있다. 그 가면이 나쁜 의미는 아니다. 내 가시로 남을 힘들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시는 아프다!
내게 가시 기도는 무엇일까? 삶에서 자신을 찌르는 가시를 놓고 기도해 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가시가 뽑히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해결은 해 주지 않으시고 “알았으니 그만해라!” 이런 응답을 주셨다면 그때 심정은 어떨까? 화가 나거나 맥이 빠질 것이다.누구에게나 가시는 있다. 기도해서 없어질 가시라면 기도하고, 기도해도 없어지지 않을 가시라면 은혜의 통로로 만들자. “내가 약했기에 하나님께 더욱 능력을 공급받았다” 하는 간증을 만들어 내자.
조개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어떤 조개는 뱉어 버린다. 그러면 조개 값의 가치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조개는 이물질에 연한 속살이 아프지만, 그 상처를 품고 견디다 진주가 된다. 우리 인생의 가시도 기도를 통해 진주로 만들어 내자.
--- p.23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