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함. 을씨년스러움. 깊은 어둠. 침잠된 우울함. 무거운 침묵. 숨이 막혀올 듯한 암울함. 모스 섬을 본 후부터 느끼는 감정이었다. 처음 느낌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어서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은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지만 이곳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리저드 성을 향해 가는 마차 안에서 더욱 짙어졌으며 도착했을 무렵엔 질실할 정도의 답답함이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얼핏 파운의 얼굴을 살펴본 후에야 내가 갖고 있는 느낌이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파운을 비롯하여 릭과 스콧, 카이까지도 굳어진 표정으로 긴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아, 이럴 때일수록 대장의 면모를 보여야겠지. 몇 번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늦추어 조금은 편한 얼굴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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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브노의 목에서 경악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대단한 실력일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렇게 아무런 기척도 없이 잔상을 남기며 빠져나갈 정도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기습하듯 공격한 것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주브노 역시 마스터로서 경지에 이른 자였다. 재빨리 마나를 검에 주임하며 자신의 검기를 뻗어냈다. 잔상을 남긴 채 뒤로 빠져나갔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의 간격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이용해 검기를 창처럼 찔렀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었지만 뻗어오는 검기는 여전히 레온의 시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검기가 노리는 부분이 여전히 목 부분인 것을 눈치 챈 레온은 재빨리 몸을 눕혀 뒤로 날았다. 바닥에 눕듯 몸을 길게 뻗은 후 왼쪽 어깨를 축으로 허리 높이 정도에서 몸을 회전했다.
치직! 아슬아슬하게 레온의 몸이 검기를 벗어났다. 뒤로 묶어 늘어뜨린 꽁지머리 끝이 검기에 약간 타긴 했지만 레온은 무사히 몸을 굴려 주브노의 두 번째 공격도 피해냈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 바닥에 댄 후에 다시 반원을 그리며 몸을 회전하자 레온의 몸은 다시 주브노를 정면으로 향하며 땅 위에 착지했다.
금세 사방에서 환호가 솟구쳤다. 주브노의 검기를 볼 수 있는 자는 없었지만 허공 속에서 레온의 머리끝이 타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어떤 공격이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공격을 날렵한 몸놀림으로 피해낸 레온에게 환호가 쏟아지는 것도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