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을 나서면서 반드시 방문해야 할 도시에 케임브리지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곳의 어디를 방문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귀중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대학 박물관들이 참으로 많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킹즈 칼리지 채플에 있는 루벤스의 <동방박사들의 경배>였다...지저스 칼리지에도 뛰어난 작품들이 많았는데, 사각형 안에서 흩어지는 돌 구슬을 표현한 리처드 롱의 조각 작품은 선사시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이 대학의 박물관에서는 현대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는데특히 커다란 나무 밑에 심어져 있던 앤터니 곰리의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 Learning To Be>는 잊을 수가 없다. 곰리는 자기 몸을 직접 본떠서 납으로 된 거푸집을 만들었다고 한다. 욕망으로 긴장한 듯한 그 조각은 자유를 향해 비상하겠다는 듯 주먹을 꼭 움쳐쥐고 있었지만, 나무 밑에 심어져 있는 그 형상은 영원히 땅에 묶여 있을 운명이었다. 이 작품은 위대한 작품의 도덕적 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예였다...그 곳에 소장돼 있는 박력있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면서 케임브리지 여행의 나머지 시간을 다 보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케임브리지에서는 피츠윌리엄 박물관을 꼭 방문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소규모 박물관이라고 일컬어진다. 티치아노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 거기에 있었고, 거대한 베로네제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이외에도 눈부신 인상주의 작품들, 도자기들, 그리고 청동 조각품들도 있었다. 피츠윌리엄 박물관은 풍부한 소장품들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많은 좋은 작품들 중에서 필름에 담을 수 있는 것만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 『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 pp.47~48
이 작품은 아름답다 못해 에로틱하다는 느낌이 드는 초상화이다. 길게 늘어진 검은 고수머리와 화려한 머리띠, 반짝반짝 빛나는 큰 눈동자, 그리고 늘어진 옷을 애교 있게 목으로 끌어당기는 그녀의 몸짓을 한번 보라. 이런 면면은 남자 화가들도 표현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비제-르브룅은 그것들과는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유심히 살펴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솔직함과 강한 자신감에서 우러나는 백작부인의 남성적인 활력과 힘이다. 남자 화가였다면 백작부인의 화려한 용모에 매료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을 르브룅은 잘 포착해낸 것이다.
--- p.121
이 그림의 주제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물론 나의 해석이 결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다른 해석들 옆에 나란히 놓일 또 하나의 가능한 해석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은 열정, 즉 불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숯에 입김을 불어 불을 붙이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 숯불을 통해 초에 불을 붙이는 행위는 명백한 성적 상징일 텐데, 내 생각에 이는 성적인 모험이라는 놀랄 만한 세계를 접하게 된 젊은이를 의미하는 것으롤 보인다. 하지만 그 세계는 또한 위험한 세계이기도 해거, 젊으니 양쪽으로 그 위험을 상징하는 두 이미지가 놓여 있다. 한족에는 넋이 나간 듯이 웃고 있는 남자가 서 있는데, 그는 열정을 잘못 사용했을 때의 상태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 열망이란 성적인 열정일 뿐만 아니라 깊고 강렬한 모든 감정을 말한다. 이 남자는 이성을 잃어버린 책임감 없는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열정은 때로는 위협이 될 수도 있는데, 이 남자는 그 진중함을 거부하고 있는 성숙하지 못한 성인인 것이다. 다른 쪽에는 원숭이처럼 생긴 이상한 이미지가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제일 그럴듯한 해석은 그것이 예측불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원숭이는 어떤 행동을 보일지 전혀 해석할 수 없는 동물이다.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위험이다. 그러니까 열정에 빠진 사람은 예측하지 못했던 행동을 종종 하기도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 안에 있는 동물적인 본능이 가지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꽃을 보고 혼자서 미소짓고 있는 넋이 나간 듯한 남자는 열정의 진중한 아름다움을 두려워하고 있고, 욕망에 푹 빠져 있는 원숭이는 그 욕망을 현실에 맞게 조절할 줄을 모른다. 이 두 가지 위험이 어둠 속에서 위협적으로 버티고 있는 세상을 젊은이는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화>는 모든 인간들에게 중요하면서도 본능적인 열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그것에 어떤 의미를 찾아준답시고 그 의미를 제한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해석되지 않는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 다양한 의미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려면 이성이 아닌 상상력의 문을 통해 작품에 접근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가능한 한 모든 단계에서 작품을 경험하는 것 말이다.
--- pp.149~151
이 그림은 꽤나 강렬한 그림으로 깊은 감성과 뛰어난 기교로 그려낸 것이다. 적어도 그 점만은 인정해줄 수 있으며 몇몇 부분은 분명 훌륭하다. 벽지나 시트, 침대 위의 주름들 그리고 그림 속 스펜서 자신의 안경을 한번 보라. 나는 특히 스펜서의 빛나는 머릿결이 마음에 든다. 패트리샤에 관해 말하자면 머릿결은 그리 돋보이지 않지만, 음모는 확실히 부드럽고 풍성해 보인다.
이 그림은 시각적인 면에서 매우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특히 야릇한 몸 색깔이 참 인상적인데, 여자의 몸에는 핑크색과 노란색, 그리고 보라색이 강렬하게 섞여 있다. 남자의 몸은 두 가지 톤으로 보여주는데, 몸은 시체 같은 납빛이지만 얼굴은 상기된 채 붉은 빛을 띠고 있다. 남자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우선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빈약한 몸에 코에는 안경을 걸친 왜소한 남자의 시선은 정면에 있는 여인을 지나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스탠리에게는 꽤 유혹적인 여인이었을지 몰라도 사실 이 여자의 자태 역시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여인은 스탠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아내 힐다와 이혼하고 그녀와 재혼하고 싶어 안달하게끔 만든 상류계층 출신 여성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 스탠리는 아내에게 매일 편지를 쓸 정도로 자상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패트리샤와 잠자리를 함께 한 어느 날, 패트리샤는 잠자리를 같이 하는 조건으로 스탠리에게 먼저 집문서를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에 응한 스탠리는 결국 패트리샤와 단 하룻밤만을 보내고 헤어지고, 집에서도 쫓겨났다. 패트리샤는 스탠리의 집을 자기 앞으로 한다는 증서를 잠자리의 요구 조건으로 제시했고, 막상 목적을 이루자 곧장 그와 헤어졌던 것이다.
스탠리도 그들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설사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더라도 그의 예술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몸 색깔의 대조, 그리고 그녀의 무관심한 표정이 그 점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그녀가 거기 그렇게 누워 있는 것은 그와 함께 있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녀는 마치 그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데, 사실 그녀에게 있어 스탠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또한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한 불행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을 한 쌍의 커플로 그려냈다.
여기서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다소 신랄한 면을 볼 수 있다. 바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갈 수 없는 한 남자의 모습이다. 단순히 웃어넘기기엔 이 그림은 조금 슬프다. 스탠리 스펜서가 그러한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낸 것인지, 아니면 묘사하려는 남녀의 실제 관계가 그렇듯이 그림 자체도 단절되고 분리된 것인지는 보는 이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 같다
--- 『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pp.38~40
두 사람은 꼭 껴안고 있지만,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서로 마음의 공간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서로 얽혀있는 다리와 팔은 그들의 일체감을 나타내지만, 그 사이에는 공간이 있어서 자신만의 자리를 가질 수 있게 허락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결혼이다.
--- p.126
경건하고 성스러운 삶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의 진실로 이끌어주는 아름다움이며 그 진실과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는 신이 항상 함께 하신다. 예술은 종종 내가 보지 못하고 있던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 p.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