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아직도 그 답을 자신 있게 펼쳐놓지는 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좋은 삶을 구현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구체적 삶의 여정에서 늘 고민하고, 고민을 통해 얻은 좋은 생각을 직접 실천하면서 더 나은 삶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이 좋은 일상을 꾸리는 것이고 그것이 좋은 삶을 만들어가는 밑바탕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야말로 바로 ‘철학하는 것’, 즉 ‘지혜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10
어떤 사람들은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 가축의 처지를 동정해 ‘동물의 생존권’을 지켜주자는 차원에서 육식을
문제 삼는다. 내가 육식을 전면적으로 금하기에 앞서, 육식을 극도로 줄인 계기도 바로 ‘동물의 생존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나는 값이 비싸더라도 ‘유기농 고기와 달걀’만 구매하고, 유제품 섭취를 줄였다.---p.21
내가 걷는 속도에 맞춰 일상을 조금 느리게 꾸리는 이유는, 도시에 살면서 놓치기 쉬운 자연의 리듬에 나 자신을 내맡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는 계절을 잊은 공간이다. 닫힌 공간에서 닫힌 공간으로 이동하는 도시에서는 쇼윈도의 변화에서 계절을 느낄 수 있을 뿐, 사계절 내내 마트에는 각양각색의 채소와 과일이 범람하고, 백화점 같은 공간의 실내온도는 사계절 내내 비슷하게 유지되어 계절의 자취가 사라졌다.---p.25
나이가 들수록 몸이 쇠약해지고 질병에도 더 취약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삶의 열정이나 사람에 쏟는 애정, 새로운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배움의 욕구까지 줄어들고 사라질 이유는 없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것을 만나기를 거부하는 태도는 문제다. 죽는 그 순간까지 삶의 열정과 배움의 의지를 통해 잠재되어 있는 나를 끊임없이 깨워낼 힘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p.31
이른 봄 하천가 산책길을 걷노라면, 바위 위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물속에 두 발을 담근 채 꼼짝하지 않고 있는 백로와 왜가리를 만나곤 한다. 이 새들은 본래 여름 철새였지만, 어느덧 텃새가 되어 우리 동네에서 겨울을 나고 봄을 맞고 있다. 이 멋진 새들을 동네에서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이렇게 자꾸 북쪽으로 이동해 새터를 잡아가는 반면, 다른 동물들은 자기 터전을 잃고 지구 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p.41
이번에도 난 병원에 가지도, 약을 먹지도 않았다. 아프기만 하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의 눈에는 이런 내 모습이 미련해 보일 수도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려 한다며 한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드물기는 하지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기도 한다. 그런데 호미조차 필요 없는 상황에도 가래부터 꺼내드는 병원이 싫어서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되려나.---p.43
거대하지만 취약한 도시, 그런 도시만큼이나 건강하지 못한 도시인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 해법은 바로 농사에서 찾을 수 있다. 언뜻 생각하면, 먹을거리를 대부분 도시 밖에서 구하는 도시와 농사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농사는 도시로 하여금 자연의 흐름에 참여하고 소통하게 해, 왜곡된 삶의 방식을 치유해나가도록 도울 것이 분명하다. ---p.52
동물을 키우는 데는 아이를 키우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것에 버금가는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야생 동물과 달리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동물이라면, 보살핌의 몫은 당연히 그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동물을 반려자로 삼으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동물을 끝까지 잘 돌보겠다는 굳은 결심이 서야 한다. 그런데 집에서 키우는 동물은 아직도 장난감과 별다를 바 없는 ‘애완’동물이며, 삶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 즉 ‘반려’동물이라는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p.85
삶의 진정한 자립은 돈을 버는 데서 얻어지는 것도, 사람이나 도구를 돈으로 사서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데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집안일이 소비에 집중하는 그림자 노동이 아니라 삶의 필요 노동으로서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고민과 더불어, 자기 몫의 필요 노동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는 데서 자립적 삶이 시작된다.---p.99
아침마다 매미 소리에 잠을 깨는 요즘에는 하루 시작이 상쾌하다. 오늘처럼 무더운 날, 열어둔 창으로 날아드는 그 소리는 서늘한 바람 같다. 게다가 자동차 소음까지 한 겹 덮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도처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물결처럼 밀려오면 ‘아, 진짜 여름이구나!’ 하는 감흥에 빠져든다. 정말이지, 매미 없는 여름은 상상하기 힘들다. 귀뚜라미 없는 가을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p.133
CCTV가 범죄자 검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소수의 흉악범을 잡으려고 모든 시민을 감시 아래 두는 것은 분명 지나친 조치다. 솔직히, 감시 카메라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안전에 관한 강박 때문에 모든 사람을 합법적으로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할 빌미를 우리 스스로 제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유를 강탈당한 안전.’ 지금 우리는 자진해서 ‘창살 없는 우리’ 안으로 기어들어 가고 있다.---p.141
젊을 때부터 자신을 잘 알고 개성을 발휘하고 꿈을 실현해가는 사람만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나’ 개인으로서 즐거운 노년을 향유할 수 있다. 내 꿈을 자식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사람이 어떻게 노인이 되어 자기 꿈에 날개를 달 생각을 하겠는가. 어려운 일이다. 노년은 젊을 때부터 키워온 정신적, 경제적 자립을 기반으로 찬찬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p.151
넓고 화려한 집, 값비싼 집이 아니라 낡고 누추하고 좁은 집이라도 아니, 단칸방이더라도, 우리는 편안하고 행복하고 꿈꿀 수 있다. 행복한 공간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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