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팬데믹이 오면서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유럽에 갔다 오다니, 당신은 정말 운이 좋았어요”. 남편도 말했다. “그때 망설이다 유럽에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우리, 앞으로도 할까 말까 망설임이 들 때는 무조건 하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카르페디엠(Carpe diem),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와 유명해진 이 말은 ‘현재를 즐겨라’라는 의미로 주로 해석된다.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인 한동일 신부가 쓴 『라틴어수업』에 보면 Carpe diem의 전체 문장이 나온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한동일 신부는 이 문장을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라고 해석하고 있다. 나는 ‘현재를 즐기라’는 해석보다 이 해석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고,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며 오늘을 붙잡아라.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 pp.20-21
홍신자라는 현대무용가가 있다. 그녀의 책 『자유를 위한 변명』이 나온 것이 1992년이라니까, 내가 그 책을 읽은 것도 아마 그 무렵일 것이다. 워낙 오래 전에 읽은 책이어서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단 하나만은 잊을 수 없다. 그녀가 무려 스물아홉 살의 늦은 나이에 갑자기 무용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영문학도를 꿈꾸며 미국유학길에 올랐다가 어느 무용가의 공연을 보고 벼락처럼 찾아온 꿈이라고 했다. 스물아홉에 생전 해본 적 없는 무용을 하겠다니! 뼈가 굳을 대로 굳어서 춤 동작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나이에! 당시 소설가의 오랜 꿈을 잠시 접고 방송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던 나에게 무용가 홍신자 선생의 삶은 그야말로 충격이자 위로였다.
--- p.28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별똥별은 사실 보기도 쉽지가 않지만,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 하고 보면 없다. 매 순간 오직 그 꿈만 생각할 만큼 간절하고 강렬하게 원해야만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 정도 되면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지 않아도 이뤄지지 않을까? 별똥별이 소원을 이뤄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간절함이 내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래서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고,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열매를 맺는다.
--- pp.44-45
질투를 느낀다는 것은 자기 안에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재능의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대신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재능이나 관심은 있으나 그것을 싹 틔울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고, 감탄하게 될 때는 아예 관심 밖의 것이 거나 현재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인 경우다. 즉 질투는 상대와 나 사이에 별 격차가 없을 때 생기는 감정인 것이다. 역량이 커질수록 내가 느끼는 질투의 영역은 변화와 확장을 거듭해왔다. 나는 방송작가로 22년간 활동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동화를 쓰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래서 같은 방송작가 가운데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는 질투가 났지만, 동화작가들은 부러웠다. 동화작가가 된 현재는 글 잘 쓰는 동료 동화작가들에게는 질투가 나지만 세계적인 동화작가에게는 여전히 부러움만 느낀다. 나의 재능, 나의 역량이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는 증거다.
--- pp.53-54
지혜로운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학벌이나 직업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자기 성찰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복에너지의 가치를 알며, 삶을 긍정하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주저앉기보다는 지렛대로 삼을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갈등 상황에서도 상대를 바꾸려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시점과 조언을 해야 하는 때를 구분할 줄 알고, 적절한 타이밍에 유머를 구사할 줄 안다. 그런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할 줄 안다.
--- p.72
직장생활에서의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친밀감을 추구하지 마라. 부모처럼 나를 챙겨줄 사람도, 언니나 형처럼 따뜻한 조언을 해줄 사람도, 친구처럼 내 허물을 덮어줄 사람도 그곳에는 없다. 물론 정말 좋은 상사나 선배, 동료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제는 이것이다. 이 곳은 직장이고, 나는 일을 하러 왔다는 것. 직장 내 인간관계 또한 당연히 ‘함께 일하기 좋은 동료’ 정도만 되면 된다. 상냥해야겠지만, 싫은 일까지 억지로 참지는 마라. 먼저 인사하고, 밝게 웃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등 함께 일하기 좋은 동료가 되어야겠지만, 그렇다고 부당한 지시, 불쾌한 행동, 범법 행위 등을 참을 필요는 없다. “NO”라고 단호하게 말하자.
--- p.91
창업을 하지 않는 이상, 첫 사회생활을 대부분은 피고용인, 즉 직원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때 직장을 위한 직원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으로서 업무에 임해보자. 주인정신의 대상을 ‘직장’이 아니라 ‘자신’으로 바꾸는 것이다. 직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남김없이 배우자. 지혜롭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가자. 직장과 당신 자신, 둘 모두 윈-윈하는 직장생활이 될 뿐만 아니라 살다 보면 그것이 다 내 밑천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기계발 전문가인 제임스 클리어가 주장한 ‘1%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에는 1%에 불과한 작은 차이였지만 그것이 시간을 두고 거듭되고 누적되면 거대한 차이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당신이 직원인 직장인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주인인 직장인으로 사는 것, 여기에서 1%의 차이가 시작된다.
--- pp.172-173
작은 성취 앞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자기검열에 시달린다. “이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하다가 내가 무능력한 게 들통나면 어쩌지?” “이번 일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어. 난 아직 그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는걸.” 하지만 무능력한 사람이 프로젝트를 맡거나 승진을 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당당하다. 당신 또한 당당해도 된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라고 겸손해할 필요도 없다. 운도 실력이다. 기회를 포착하는 당신의 눈과 감각이 그 운을 만들어낸 것이다. “장수 가운데 최고의 장수는 지장도 덕장도 용장도 아닌 운장”이라고 하지 않는가? 운이 좋은 걸 차라리 자랑하자. 여성들은 “겸손하라” “배려하라” “주위 상황을 살펴 행동하라” 등의 말을 자주 듣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당신을 위축시키거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면 확실히 ‘나쁜 것’이다.
--- p.87
‘해결 가능한 걱정’이라는 결론이 날 경우엔, 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죽 나열한 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한다. 그런 다음 그 결정을 실천에 옮긴다. 이 과정에서 일이 점점 더 꼬여가거나, 해결이 뜻대로 안 될 때도 사실은 꽤나 된다. 그럴 때는 그 사태가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일을 예측해본다. 그리고는 나를 설득하는 것이다. “어휴, 그 정도야 감수해야지 어쩌겠어? 그래도 더 큰 일이 아닌 게 어디야?” 실제로 대부분의 일은 예상했던 최악의 결과보다 훨씬 더 좋은 쪽으로 마무리된다. ‘해결 불가능한 걱정’이라는 결론이 날 경우에는 아예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한다. 의외로 이 노력은 잘 통한다. 걱정도 에너지 덩어리여서 우리의 관심을 먹으면 더 크게 성장한다. 반대로 마음을 안 쓰면 저절로 스르르 힘이 빠지고 결국 사라진다.
--- p.210
이 아리아드네의 실 또한 우리 내면에 대한 은유다. 인내심,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주할 용기, 암흑을 견딜 끈기, 창조적인 직관, 쾌활한 긍정성 등 당신 안에는 분명 당신을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이 존재한다. 다만 지금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일 가능성이 높다. 자기 안에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찾아보자. 그리고 미궁을 빠져나가기 위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궁리하자. 그렇게 당신 안에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아 실이 아닌 동아줄로 만들 때 우리는 성장한다. 그리고 미궁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을 향한 우리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 p.230
자신을 이처럼 몰아세우면 고난을 해결하기는커녕 그 앞에서 얼어붙고 점점 힘을 잃게 된다. 스스로에게 너무 냉정하게 굴지말자. 대신 어린아이처럼 더 신나는 일을 찾아 뛰어나가자. 어린아이들의 왕성한 호기심도 잃지 말아야 하는 힘 가운데 하나다. 어린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세상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진다. “왜요?” “왜 그런데요?”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해가 될 때까지, 또는 납득이 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가장 위대한 업적은 왜 라는 아이 같은 호기심에서 탄생한다. 마음속 어린아이를 포기하지 말라”.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말이다.
--- p.240
나는 지금도 걸으며 기도를 한다. 오프라 윈프리의 사진 한 장을 떠올리며 걷기 시작한 그때처럼 내가 이루고 싶은 이미지를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리면서 걷는다. 모든 기도가 그러하듯이 내 기도가 모두 이뤄진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걸었기에 나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무기력증에서 벗어났고, 미래를 긍정하게 되었으며,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여유로워졌고, 몸이 건강해졌다.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으며, 72일간 유럽여행을 했고, 열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하겠다는 버킷 리스트를 이루었다. 국가자격증도 하나 취득했으며, 수입도 늘어났다. 삶이 무기력할 때 걸어라. 두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새로운 기운이 수혈될 것이다. 당신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다.
--- pp.253-254
버럭 화를 내봐야 다시 치졸한 나만 남을 뿐이다. 이때 필요한 전략도‘3 초 멈춤’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드러나 버린 민낯을 버리고 어떤 품성의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지를. 화, 흔히 다스려야 된다고 이야기되는 대상이기는 하지만 사실 꼭 필요한 행위이기도 하다. 화를 내야 하는 경우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겁한 행동이다. 화를 내야 할 일에는 당연히 화를 내야 한다. 그렇더라도 화를 내고 후회할 것 같다면 3초만 멈추자. 그리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합당한 상황, 적절한 대상, 적당한 방법으로 화를 내고 있는가?” 시간이 약이다. 3초의 시간도 약이 된다.
--- pp.273-274
“난 운이 좋아”라는 필터로 세상을 보면 운이 좋지 않은 경우가 별로 없다. 설사 천 가지 만 가지의 나쁜 일이 있더라도 그것보다는 하나의 좋은 일에서 다행을 찾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운전 중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내리막길이어서 더욱 아찔했다. 어찌저찌 조치해서 간신히 차를 세운 후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와, 뒤에 따라오는 차가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평소에 운이 지지리도 없다고 생각해왔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잖아도 바쁜데, 갑자기 왜 브레이크가 고장 나고 난리야! 이놈의 똥차!” 자신은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좋은 일 천 가지, 만 가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나쁜 일 한 가지만 원망한다.
--- p.276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싶은 것들이 있다.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지만 내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인생을 좀 더 즐기라는 것. 암흑의 미궁을 지나야만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 타협하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꿈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라는 것. 누군가 나를 자기 멋대로 휘두르려고 할 때 날을 세우고 싸워도 괜찮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한 더불어 살아야한다는 것. 그리고 삶은 어차피 해피엔딩이라는 것.
--- pp.281-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