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는 포로로 잡혀가 페르시아 아닥사스 왕의 술 맡은 관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술 맡은 관원은 중요한 단어입니다. 술 맡은 관원은 임금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관계입니다. 음식을 나누면서 말동무가 되는 관계입니다. 국정을 논하고, 여러 가지 자문을 해주고, 소식을 전하는 사이가 아니면 술 관원이 될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민 3세로서 그런 중요한 자리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실력이 있고, 인격적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며, 왕의 마음에 아주 딱 드는 매력 있는 자였습니다. (중략)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요? 그 나라 민족도 아니고, 포로로 잡혀온 사람인데 오죽 탁월했으면 그 자리까지 올라갔겠습니까? 사실 실력이 있으면 대개 믿음은 좀 적습니다. 믿음이 많은 사람은 또 실력이 없습니다. 그냥 “주여 믿습니다”만 외칠 뿐 현실을 헤쳐 나가는 능력과 기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은 너무 바빠서 하나님을 믿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실력도 있고, 국정도 다스리고, 나라도 다스리고, 기업도 다스리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 「조급할수록 기도하라」 중에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먼저 삼일 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것이 매우 지혜로운 처신이었습니다. 먼저 정보를 수집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는 행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삼일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도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기도와 묵상과 금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느헤미야는 삼일이 지난 밤중에 몇 사람을 데리고 순찰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우리는 조그만 아이디어가 생겨도 기가 막힌 영감이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설명도 하지 않고, 중무장도 하지 않고, 화려한 행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낮에 순찰한 것도 아니고 캄캄한 밤에 몇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벽을 시찰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의 지혜와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는 비전을 낳는다」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가지를 선택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도하고, 또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서 성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막아 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은혜 받고 예수를 믿었다고 기도원에 가서 살면 되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족을 돌보고 사회에서 일도 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기도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 세상은 누가 이끌어 갑니까? 그렇다고 기도하지 않고 세상일만 하면 우리의 믿음은 바닥을 칠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직장, 우리가 쉬는 가정,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깨끗해지도록 하나님의 정의가 임하게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입니다. 우리의 직장은 우리의 선교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선교사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2부 「기도는 믿음과 고난을 동반한다」 중에서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진정한 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나 세계 교회가 다 망해가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청교도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이 마약과 매춘, 동성애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악으로 온통 뒤덮여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축복했다고 하더라도 신앙을 포기하면 앞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시절에는 오히려 하나님을 붙들고 순수한 믿음과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살만해지고 부유해지니까 우리의 능력으로 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하나님을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바람 앞의 촛불입니다. 말씀을 버리면 멸망에 이릅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정신은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돌아가면 편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 3부 「회개는 회복의 지름길이다」 중에서
본문 말씀을 보면 문제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성벽을 건축할 때 느헤미야를 괴롭힌 도비야입니다. 그는 느헤미야를 모함하고 음모를 꾸며 성벽을 짓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도비야와 친하게 지내던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창고를 맡았는데, 도비야에게 그 창고의 방을 내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은 마음이 해이해지고 타협을 쿇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성전을 지키는 제사장은 인간적인 마음으로 도비야의 뒤를 봐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고작 방 하나 빌려 준 것이 무슨 대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 큰 문제가 됩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구멍 같아 보이던 것이 나중에는 우리의 영혼에 큰 구멍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그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창고에 쓰이는 모든 물건들을 밖으로 내던지고 그 방에 도비야 대신 들어가 살았습니다. --- 4부 「교회의 거룩을 지키면 이긴다」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