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의사들은 의료소비에 있어서 일반인들과 다른 선택을 보인다. 예를 들면, 건강검진 받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인공관절이나 척추, 백내장, 스텐트, 임플란트 등등 그 흔한 수술 받는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심지어 항암치료 참여율도 떨어진다. 요컨대 검사도 덜 받고, 수술도 덜 받고, 몸을 사린다.
주위에 가족이나 친한 친구 중에 의사가 있어서 질문해본 사람들은 나의 이런 지적에 공감할 것이다. 어떤 질문이 날아가도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괜찮아. 그냥 지내봐. 좋아질 거야." 이런 양상은 의사들 자신의 전문과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정형외과 의사들이 무릎 수술이나 어깨 수술을 받는 일은 그들 사이에서 특이한 뉴스거리가 될 만큼 희귀하다. 비유하자면, 마치 손님들에게는 매일 기름진 진수성찬을 차려내는 일급요리사가 정작 자신은 풀만 먹고 산다고나 할까. 왜 그럴까? 왜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들에게 권유하는 처방을 자신을 위해서는 선택하지 않을까?
(중략)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권위와 당위에 너무 쉽게 복종한다. 이건 신뢰와는 다른 얘기다. 너무 순순하고 고분고분해서 시키는 대로 다 하다가 간도 빼주고 쓸개도 빼주는 수가 있다. 반대로, 너무 약고 아는 게 많아서 절대 속지 않을 것처럼 구는 사람들도 거꾸로 자신을 진정 위하는 권유를 무시하다가 때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감히 의료 무용론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의료는 우리에게 삶의 고통을 경감해주고 활동성을 증진해주고 마음에 행복을 더해줄 수 있는 귀한 일이다. 다만, 어떻게 하면 이 의료를 사람들이 왜곡 없이 건강하게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 그 선택에 관한 고민을 했다.
(중략) 산발적인 증례들은 처음에 제각각 유일하고 일회적 진실인 듯 보였다. 하지만, 일상에서 촘촘히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어떤 패턴을 싸늘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실체는 '불안'이었다. 저마다의 심연에 바오밥 뿌리처럼 자리잡은 불안은 우리를 아우성치게 만들기도 하고 침울하게 만들기도 하고 여기 저기 쑤시고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검사를 받게 만들기도 하고 겁없이 큰수술을 덜컥 받게도 만든다. 불안은 어느새 우리들 사이를 돌고 돌며 또 서로 주고 받으며 전염병 병균처럼 도처에 만연해 있다. 제1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누가 무서운 아해고 누가 무서워하는 아해인지 알 수 없소.
어느 사십 대 후반의 남자가 있다. 희귀하게도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건강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다. 외모는 수호지의 노지심, 혹은 프랑스만화의 아스테릭스, 혹은 로비훗의 리틀존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다. 그렇다. 한 덩치 한다. 하루는 그의 건강이 걱정이 되어, 검진을 한번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물어 보았다.
-싫어. 난 아픈 데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도 검사하면 뭔가 이상이 나올지도 모르쟎아요?
-나오면 어쩔 건대?
-....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래 나오면 어쩔 건대..' 머릿속에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오르고 제각각 줄줄이 사탕처럼 다음 알고리즘을 짜기 시작한다. 여러 갈래로 흩어졌던 몇 가지 경우의 수는 '헤쳐모여' 하듯이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섭생을 잘하고 운동하라.'
무턱대고 검진부터 들이댄 건 내가 성의 없고 경망했던 거다. 곰곰 생각한 후에 이번엔 운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는 이번 제안은 받아들였고 매일 한 시간 반씩 꾸준히 운동을 했다. 운동하면서 슬금슬금 나타나는 변화에 기분이 좋아져서 자연스레 스스로 식단도 조정하는 것을 보았다. 운동은 건강으로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촉매다. 약 6개월이 지나면서 93키로 나가던 몸매가 78키로가 되었고 눈에 띄게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몸과 마음에 활기가 돌았다. 이 남자는 내 신랑이다.
불안이 장려되는 사회에서 가장 정당한 갑옷은 '소신'이다.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잘 갖춰 입을 수 있다. 사람은 없고 숫자와 그래프 선만이 판치는 숨막히는 근거주의(evidencism, evidence-based medicine) 시대에, 여기 소개된 일곱 가지 해법이 우리의 숨통을 틔워줄 하나의 환기장치가 되어주길 바란다. 마치 건축에서 르꼬르뷔지에의 신건축 다섯가지 요점처럼, 마치 요리에서 고앤미요의 누벨뀌진 십계명처럼, 우리는 의료계에 신선한 숨결을 원한다.
하지만, 여전히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다. 토크빌은 자유만이 금전에 대한 숭배와 잡다한 개인사에서 시민들을 구해낼 수 있다고 하였고, 러스킨은 인간은 영혼을 동력으로 삼는 기묘한 기관으로서 그 고유의 연료는 애정이라고 했다. 자유, 영혼, 애정, 의지, 신뢰 이런 인간의 고귀한 가치들이 편리, 안락, 타성, 우상, 허영 이런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러나 어디 한번 가보자. ---<프롤로그 '왜 의사들은 다르게 선택하는가'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