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피라 뮤직
음악에는 참으로 시추에이션이라는 것이 중요해서, 주방에서 아내가 혼자 킨피라를 만들 때의 백뮤직으로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어울리지 않는다. '스카이 파일럿'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때는 뭐니뭐니 해도 닐 영이다. 딱 맞는 음악이 등 뒤에서 흐르고 있으면, 작업도 순조롭고 노동 의욕도 솟는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백뮤직을 골라야 하니, 그것은 그것대로 힘들지도 모른다.
--- p.47
지금은 비교적 진지하게 대답하고 있지만, 한창 건방졌던 젊은 시절에는 인터뷰에서도 나는 종종 엉터리 대답을 했다.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하고 묻는 일이 있으면, '글쎄요, 최근에는 메이지 시대의 소설을 자주 읽습니다. 초기 언문일치 운동에 관련된 마이너 작가들을 좋아하는데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구와다 마사오라던가, 오자카 고헤이의 작품은 지금 읽어도 몹시 자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물론 둘 다 실존하지 않는 작가다. 완전히 꾸며 낸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얼렁뚱땅 만들어 내어 대답하는 데에 의외로 능하다. 특기라고 할까, 장기라고 할까.
--- p.113
이상한 일이지만 이탈리아 파스타는 진정 맛이 있다. '당연하잖아, 그게 어째서 이상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탈리아와 이웃한 나라들에서 먹는 파스타가 하나같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기만 하면 파스타가 갑자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어지는 것이다. 국경이란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로 돌아오면 그때마다 '오, 이탈리아는 파스타가 맛있구나.'하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 생각건대, 그런 '새삼 절감하는' 하나하나가 우리 인생의 골격을 형성하는 것은 아닐까.
--- p.41
음악이란 좋은 것이다. 음악에는 항상 이치와 윤리를 초월한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와 함께 엮여진 깊고 아름다운 개인적인 정경이 있다. 이 세상에 음악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인생은(즉 언제 백골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우리의 인생은) 더욱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되었을 것이다.
--- p.108
우리가 테이블에 앉았을 때, 조금 떨어진 자리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다. 아직 밤이 되기는 일러, 손님은 우리와 그 사람들 뿐이었다. 아마 남자는 이십대 후반, 여자는 이십대 중반쯤, 둘 다 인물도 괜찮고, 도회적이며 깔끔한 옷차림을 한, 아주 스마트한 분위기의 커플이었다. 와인을 고르고, 음식을 주문하고, 그것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두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들었다기보다는 저절로 들려 왔지만), 이 두사람은 깊은 사이가 되기 직전이구나'하는 것을 알았다. 내용적으로는 극히 평범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목소리의 톤으로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도 일단은 명색이 소설가이니, 그쯤의 남녀 마음은 읽을 수 있었다. 남자는 '슬슬 꼬셔볼까'하고 생각하고 있고, 여자도 '그냥 넘어가 줄까'하고 생각하고 있다.
--- pp. 13-14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예요.' 나중에 아내가 야단쳤다.
'그렇지만 말이야, 그건 염력이야.' 하고 나는 변명했다.
'그 할머니가 찌릿찌릿 전파를 보내 내 손이 미끄러워지도록 했단 말이야.'
물론 아내는 그따위 말은 상대도 해 주지 않았다. 지금도 그 아홉 장의 접시는 집에서 사용하고 있다. 뭐, 그렇게 나쁘지 않은 접시이긴 하지만.
--- p.138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서 사과를 하나 들고 서재로 가서 사과 마크의 '애플' 스위치를 누르고, 나는 새벽 빛 속에서 화면 준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빨갛고 신맛 나는 사과를 한 입 가득 깨물어 먹는다. 그리고 자, 오늘도 열심히 소설을 써야지 하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계속해왔다. 절대 윈도즈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태로서는 바꿀 생각이 없다. 윈도즈에는 사과 마크가 붙어 있지 않으니까.
--- pp.44-45
생각건대, 인간의 실체란 것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인가의 계기로, '자,오늘부터 달라지자!'하고 굳게 결심하지만, 그 무엇인가가 없어져 버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마치 형상 기억 합금처럼 혹은 거북이가 뒷걸음질 쳐서 제 구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처럼 엉거주춤 원래의 스타일로 돌아가 버린다. 결심따위는 어차피 인생의 에너지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 p. 8
모든 것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조용하며 아득히 멀리 있었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하나의 형태로 묶고 있던 띠 같은 것이 무엇인가의 힘이 가해지자 풀어져서 아래로 떨어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세계는 이미 다 풀어져서 지금부터 세계는 나와 무관하게 진행되어 가겠구나 하고. 자신이 점점 투명해지다가 결국 육체를 잃고 오감만이 나중에 남아 처리해야 할 업무처럼 세계를 나의 눈 속에 담아둔 것 같았다. 아주 신기하고 은밀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엔진이 걸려 주위에 다시 굉음이 돌아왔다. 비행기는 크게 공중을 선회하다가 활주로를 향했다. 나는 다시 한번 자신의 육체를 되찾은 한 사람의 여행자로서 로도스섬에 내렸다. 그리고 계속 살아 있는 자로서 레스토랑에서 생선을 먹고 와인을 마시고 호텔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죽음의 감촉은 아직도 내 속에 선명한 실감을 동반한 채 남아있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그 작은 비행기 안에서 본 풍경이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아니 , 실제로 그 때 나의 일부는 죽어 버렸다고조차 생각한다. 맑은 로도스섬 상공에서, 아주 조용히..
--- p.26-27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아내는 '당신은 정말 뻔뻔스럽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성격인지 몰라.' 하고 어이없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절대로 나는 뻔뻔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특별히 뭔가 불편했던 기억도 없고, 부자유스러움을 느낀 적도 없었기 때문에, '대충 이 정도면 됐어.'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지, 절대 '이 상태로도 충분히 핸섬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 p. 119
나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롤 캐비지를 만들 때는 예전에 프린스라고 불렸던 아티스트가 좋을 듯한 생각이 든다. 에릭 크랩튼은 버섯 우동을 만들 때에 좋고, 돈까스는 마빈 게이가 좋을 것 같다.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몹시 곤혹스럽지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 p.47-48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식품인 카키피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하나는 '타인이 개입하면 감씨와 땅콩이 줄어드는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내는 땅콩을 좋아해서 나와 같이 먹으면 카키피 속의 땅콩만 일방적으로 먹어 버려, 결국 감씨만 남게 된다. 내가 투덜거리면, '당신은 어차피 콩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감씨가 많은 쪽이 더 좋죠?'라고 한다.
확실히 나는 땅콩보다는 감씨 쪽을 더 좋아한다. 그것을 기꺼이 인정한다(나는 대체로 냄새를 맡아보고 단 것보다 매운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카키피를 먹을 때, 나는 자신의 내재된 욕망을 최대한 억누르며 감씨와 땅콩을 가능한 한 공평하게 다루도록 애쓰고 있다. 자신의 속에 반강제적으로 '카키피 배분 시스템'을 확립하여 그 특별한 시스템 속에서 삐뚤어지고 보잘것없는 개인적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단 것과 매운 것이 있어서 양자는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세계관을 새삼 확인한다. 그러나 그런 까다로운 정신 작업을 다른 사람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도 솔직히 말해서 몹시 귀찮다. 그래서 '뭐, 그건 그렇지만......'하고 궁시렁거리면서, 주뼛주뼛 남겨진 감씨만 먹고 있다. 음, 일부일처제란 어려운 제도이다. 오늘도 카키피를 먹으면서 나는 새삼 절감한다.
--- p.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