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어머니’라는 말의 뜻을 묻는다면 나는 “모국어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말 국어사전에 들어있는 몇 십만의 낱말, 아니 거기 실리지 않은 몇 백만의 낱말들을 하나로 묶는다면 ‘어머니’ 세 글자가 될 것이다.
“네 입에 밥 들어가니 참 좋다. 난 안 먹어도 배부르다. 하지만, 남의 입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때는 동기간들을 생각하라는 말씀으로만 들었다. 지금은 이웃을 보살피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새긴다.
아내와 다투고 돌아누워 자는 밤 어머니가 오셨다. “오해는 바로바로 풀거라 절대 가슴에 묻어두지 말아라“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이 짧은 이승의 시간을 꽃처럼 살되, 꽃과 잎이 떨어져도 허전하지 않는 내일을 살거라. 세상의 일을 기쁘고 즐겁게, 때로는 아프고 슬프게 맞이하면서 내 딸도 어른이 되겠지. 네가 겪는 모든 것들은 소중하니 마주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거라.
차디찬 어머니의 얼굴에 내 얼굴을 부비며 울부짖었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 제 어머니를 잘 아시겠지요? 이제 당신 곁으로 갑니다.” 내가 더 이상의 부탁을 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어디로 가실는지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많이 의지하신 탓에 오히려 모녀간에 살뜰한 정이 붙어 더욱 잊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시인이 된 딸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내 손을 꼬옥 잡아주시던 어머니, 이제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으니 마음이 아프다.
1967년 6월 20일, 시계가 정확히 정오를 짚을 때 어머니는 숨을 거두셨고 그 후 내 목숨 속에서 나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계신다. 내 삶의 모든 연소(燃燒)와 봉헌(奉獻)들은 내 어머니와 나와의 두 사람 몫인 것을 나의 하나님만은 알고 계신다.
그러니 내 딸이면 어떨까. 엄마. 싫다고? 그래도 엄마, 내 딸로 태어나 나에게 대들기도 하고, 내 약점도 꼬집고, 떼도 부리고, 그래서 엄마도 듬뿍 사랑받는 여자로 한번 살아봐야 하잖아요. 엄마! 다음 세상엔 꼭 내 딸로 태어나, 엄마!
도대체 자식의 성공이, 바쁜 생활이 어머님께는 무슨 도움과 의미가 되는가를. 이제야 알겠다. 왜 그 많은 유행가와 사모곡이 불효에 우는가를. 비가 오고 있다. 평생을 눈물에 젖으셨던 우리 어머님이 이 비에 젖으셔도 나는 이렇게 속수무책일 뿐이다.
어머니는 매사에 그런 식으로 자식을 키웠다. 체험해봐야 스스로 깨닫게 된다고 하셨다. 성격이 분명해서 예스, 아니면 노였다. 한 번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였다. 대신 약속하면 꼭 해주셨다. 일단 선택을 하게 하고 선택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하셨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