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가 없는 완벽한 환경을 구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나의 행동이 변화를 일으키는 믿음이다.
--- p.15, 「배리어프리 연표」중에서
일반적으로 문턱을 없애는 것을 배리어프리(barrier-free)라고 부르지만, 눈에 보이는 배리어를 없엔 곳에도 여전히 배리어가 존재한다. 따라서 ‘배리어가 없다’ 혹은 ‘배리어를 없앤다’는 의미보다 ‘배리어를 인식하고 그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에 무게를 둔 표현을 뜻한다.
--- p.39, 「배리어프리 연표」중에서
… 디자인과 시각 미술 안에서 접근성이라는 것 자체를 개념화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 혹은 작가 자신이 접근성을 이해하고 있고 이렇게 색다르게 다룰 수 있음을 과시하는 식의 미학적 접근 사례들을 접한 적이 있고, 그런 시도들은 오히려 접근성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기에 불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p.63, 「라운드 테이블」중에서
… 어느 순간에는 접근성이라는 절대 기준이 존재하고 그 절대 기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고 있습니다. … 배리어프리한 환경을 위해서 무조건 수어 통역과 문자 통역, 음성 해설이 있어야 한다는 절대적 규칙을 만드는 것을 저는 지양합니다. … 하지만 수어 통역사, 문자 통역, 음성 해설을 갖추지 못해서 접근성을 포기하는 방식은 아닌 거죠. 저마다의 방식으로 접근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 p.63, 「라운드 테이블」중에서
낮게 부착된 작은 글씨의 해설을 읽어보고 싶어 허리를 잔뜩 구부려 힘들게 작품 설명을 읽는 관객, 계단이나 갤러리에 접근하기 힘들어 포기하는 관객… 미술관에 와서 심리적으로 괜히 주눅이 드는 관객… 작품 해설을 봐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부딪히며 전시 감상을 포기하는 관객이나 안내 리플릿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관객, 나이가 들거나 장애가 있어 신체 모양이나 움직임이 타인과 달라 미술관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힘든 관객, 그리고 미술관에 진입해도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객. 이들을 위해 미술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 p.71~72, 「우리는 모두 이 안에 함께 있습니다」중에서
유니버설 디자인, 배리어프리 디자인, 인클루시브 디자인 등 용어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해당 디자인 영역은 주류 디자인만큼 질리도록 논의되지 않고 있다.
--- p.132, 「점자 만들기 키트, ‘점킷’」중에서
먼 걸음 하여 전시를 방문했음에도 전시의 특정 면면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 문화를 체험할 수 없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배리어프리는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며, 이에 대한 찬반의 가늠이 필요치 않다.
--- p.164, 「시각예술 전시의 접근성을 위한 배리어프리 실천하기」중에서
2011년 지하철 고속터미널역 환승 계단에 있던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난 걸 보고 역으로 전화했다. 역무원은 되물었다. “어머니, 계단 위쪽이면 9호선이나 3호선에, 아래쪽에 계시면 7호선에 전화하세요.”
--- p.165,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에서 모두의 1층까지」중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말은 너무나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에 적용된다니, 모두를 위한다니. 그래서 그 유토피아가 (적어도 글자체에 관해선)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내가 한번 쓴소리를 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공덕역의 경사로를 오르던 때가 떠올라 그 마음은 조용히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좀 말이 안 되고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렴 어떤가.
--- p.173~174, 「‘유니버설 디자인’, 디자이너들이 찾는 유토피아」중에서
마주 본 검은 벽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되었고, 순차적으로 높아지는 디렉팅 자료들을 보며 마지막엔 비장애인의 높이에서도 관람하기에 무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듯, 배려라는 목적으로 둔 발판 역할의 밀크박스에서는 특정 관람객의 완전한 배제를 굳이 고집한 아집마저 느껴졌다.
--- p.200, 「배리어프리 예술을 원합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