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에서부터 머리칼이 쭈뼛 곤두섰다. 그가 잠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것은 어린 양이 아니었다. 더욱 길고 더욱 맵시가 있었으며, 더욱 날씬하고 더욱 희었다. 그 창백하고 유리처럼 번쩍이는 갸름한 얼굴에서 커다랗게 뜬 두 눈이 똑바로 그를 보고 있었다. 작고 셈세한 손은, 마치 향의라도 하려는지,물이 얼어붙기 전까지 잠시 떠올랐던 듯 양옆구리 위쪽으로 약간 올라가 있었다. 몸전체가 희었고, 입고 있는 찢겨진 속옷 역시 희었다. 걸친 것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다. 캐드펠은 그녀의 가슴
부근에서 흙빛이 번져 나간 자취를 언뜻 본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희미한 나머지 열심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차츰 형태를 바꾸더니만 마침내 뿌옇게 흐려지고 말았다. 얼굴은 연약하고 셈세하고 어렸다. 양은 양이었다. 잃어버린 어린암양, 하느님의 어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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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두 사람의 표정은 마치 서로 가슴과 가슴을 대고 껴안은 듯 절절한 그리움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캐드펠은 새로운 깨우침으로 경이를 느끼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올리비에가 말한 그의 어머니의 이름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돌연 거칠 것 없이 떠오르는 하나의 얼굴, 부드러운 빛 아래에서 빛나는 사랑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올리비에의 자부심에 찬 얼굴, 그 뺨과 이마를 통하여 캐드펠은 한 여자의 얼굴을, 27년이라는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캐드펠은 꿈을 꾸는 사람처럼 돌아서서 그들 둘을 그 자리에 남겨두고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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