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란 전주 고향집 화단엔 도심 한복판임에도 과실나무와 꽃나무 들이 무성했다. 채 봄이 되기도 전 노란 수선화가 피고 상사화가 애처로운 꽃대를 올리면, 앵두꽃, 모과꽃, 철쭉, 영산홍, 석류꽃, 감꽃, 모란, 작약, 장미, 백합, 대추나무순, 무화과나무순 들이 잇달아 피어나고, 수목들 틈새, 양지바른 틈, 물고추를 갈고 들깨를 갈던 돌확 옆에서 고추꽃, 부추꽃, 상추꽃, 파꽃, 쑥갓꽃, 깨꽃, 머위, 아욱 들이 여릿하니 피고 자라며, 담장을 따라 붉은 넝쿨장미가 숭얼숭얼 피어오르면 아름다움은 절정을 이뤘다. 나의 아침은 자명종이 아닌 수목들 사이 새소리가 깨웠으며 이른 아침 나를 업어 키운 나의 증조모는 단정한 매무새로 천천히 마당을 쓸었다. 어린 날부터 나는 어머니를 따라 곧잘 풀을 매어주는 호미질을 했다. 커가면서 장독대를 오르내리며 간장·된장 독 뚜껑 위에 한약 찌꺼기를 널어 말려 화단을 파고 거름으로 묻어주는 삽질도 능숙해졌다. 어느덧 나는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의 쐐기벌레가 더이상 무섭거나 징그럽지 않은 단발머리 소녀로 껑충 키 자람을 했고 감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엎드려 책을 읽거나 글 나부랭이를 끼적거렸는데 예민한 감수성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금기의 책들을 읽는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스무살이 되고 나는 돌확에 고추를 갈고 들깨를 갈아 어머니 등 너머로 보고 익힌 솜씨로 김치를 담그고 메기매운탕을 끓였다. 어머니를 대신해 중앙시장, 모래내 시장 등 재래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닌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곳 재래시장은 전주 근교 면단위 리단위 농민들이 농사지어 갖고 나온 소소한 푸성귀들과 과실들로 넘쳐났다. 등 굽은 허리로 농민들은 보따리보따리 이고지고 나와 아무렇게나 노점을 펼쳤다가 거리단속반에 쫓겨 후미진 골목 안으로 숨어들어가 도시민들이 후려치는 헐값에 흥정 한번 제대로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넘겼다. 그리고 한숨 한번 쉬고, 하리망당 헐거운 웃음 한번 웃고 나면 그만이었다. 그건 내가 책에서 보고 배운 아름다운 세상, 정의로운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다. 더이상 나는 붉은 넝쿨장미 담장 안에 갇혀 있을 수 없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