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성, 남녀양성의 탄생.
--- 김혜순(시인,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우리나라 한 여성 소설가의 소설 속엔 사랑에 빠진 한 여성이 상대방 남성이 여성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그 여성이 레즈비언적 성향을 과도하게 지녀서 하게 된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 남성이 가진 여성적 속성을 자신이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임과 동시에, 그 남성이 품은 여성적 성향을 자신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읽을 때 나는 남성 속에 들어 찬 여성성의 매력을 여성들이 훨씬 더 잘 읽을 수 있으며, 동시에 남성이란 존재도 본래적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을 두루 갖춘, 그래서 여성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처럼 한 인간 속에 들어찬 남녀 양성(兩性)을 인정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녀의 양성성을 두루 갖춘 인간의 모습을 복원하여 전쟁과 폭력이 끝이 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책이 등장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나누기 중에서도 사람을 남성과 여성, 이렇게 둘로 나누는 것만큼 확고부동하며, 그 이분법의 파급력이 큰 기준은 이제까지 없었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남과 여는 이렇게 닿을 수 없는 두 개의 섬처럼 남성/여성적 정체성이 점점 멀어지게 된 원인을 종교, 신화, 정신분석학, 인류학, 문학, 철학적 역사 속에서 탐색한다.
그리고 그 깊은 골인 남녀의 구별 기준들 속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평등의 근원인 이분법적 사고가 도사리고 있음을 밝혀낸다. 특히 그녀는 이 오래된 이분법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남성다워야 함' 혹은 '여성다워야 함'이 침범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야기하고, 특히 여성을 자궁과 가정주부라는 주변의 지위로 물러나게 하면서 초월성에 참여할 수 없는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즉 심리적 양성성의 불균형한 발전이 정신적 황폐화와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양성 문화를 탄생 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구분의 틀 속에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은연중에 주장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저자는 남성은 남성다워야 한다는 정언 명제 속에 역설적으로 숨어 있는 여성성,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명제 속에 은폐되어온 남성성을 오히려 부각시키면서 수많은 중간형태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즉, 남녀 양성의 존재를 회복시킨다. 이 존재 속에서 치유의 창조적인 재생의 에너지를 발견한다.
남녀양성의 존재는 새로운 세기에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남녀가 가진 양성의 특성을 억압하지 않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솟아난 존재다. 그리고 이 존재는 성적 중성화의 결과로 생겨난, 신비주의 텍스트들 속에서 기습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 양성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던 양성성을 인정한 존재, 연금술적으로 몸속에서 결합되어 있는 양성의 요소들을 억압하지 않을 때 스스로 변화된 존재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이 가진 모든 특성을 억압하지 않는, 미셸 세레스의 '혼합된 몸의 철학'을 반영하는 존재다.
남성의 구역과 여성의 구역이라는 구분이 점점 흐릿해지고, 자궁이라는 여성 고유 기관의 대체물이 생겨나리라고 회자되는 현시대, 저자의 말이 실현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남성, 여성이 아닌 수많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바라보며,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