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글 가져오셨어요?”
하야티가 공손히 묻는다. 처음 글방에 온 사람에게 인사 다음으로 건네는 말이다.
“아, 네.”
어색하게 대답하며 쭈뼛쭈뼛 가방에서 글을 꺼낸다. 테이블 위에는 벌써 대여섯 편의 글이 나란히 놓여 있다. 오늘 새로 온 이의 글도 그 옆에 자리를 잡는다. 다른 글을 읽던 글방러들이 따끈따끈한 글로 손을 뻗는다. 이제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모두가 집중해서 글을 읽는 시간이다.
--- p. 5
글방을 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써서 만나 합평회를 하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때 두근두근 초긴장하는 얼굴들도 변함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늘 글이 좋았다는 평을 받은 사람의 발그레한 홍조도 변함이 없다. 얘들아 웬만하면 쓰지 마, 글 쓰는 거 힘들어, 안 쓰고 살 수 있으면 쓰지 말고 살아.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하는 말이다. 흥, 그러면서 어딘은 왜 쓰세요, 하고 되묻는 얼굴로, 그따위 시시한 말에는 속지 않는다는 도도한 표정으로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글방러들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을 들고 나타난다.
--- pp. 8-9
글쓰기는 매주 향상되지 않는다. 지지부진 지리멸렬의 답보 상태가 몇 달 혹은 해를 넘기기도 한다. 매주 이토록 충실히 써 오는데 매주 이토록 쓰라린 이야기만 해야 하다니, 쓰는 이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고역이다. 어이하나 그렇다고 재미없는 글을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는 법. 글방의 유일한 규칙이라면 글에 관한 한 정직할 것, 그러니 읽은 느낌 그대로 말을 하는 수밖에. 진척 없는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어느 날 ‘점핑’의 순간이 온다. 지난주까지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진 글이 그야말로 짜잔 하고 나타난다. 재밌는 건 글쓴이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거다. 지난주도 지지난 주도 지지지난 주도 본인은 최선을 다해 썼기 때문에. 한번 점핑한 글은 예전의 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점핑한 그곳에서 주옥같은 글 몇 편을 쓰고 다시 지지부진 지리멸렬의 시간을 보낸다. 다시 점핑,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 pp. 13-14
어디까지 쓸 것인가? 알고 보면 글쓰기는 용기와 관련된 행위다. 눈부신 한 편의 글 안에 전투의 상흔이 이곳저곳 깊게 배어 있는 까닭이다. 견고한 질서 완고한 관습 치밀한 통제를 부수고 깨뜨리고 균열을 내는 것, 글쓰기란 그런 것이므로 우리는 종종 뚝뚝 떨어지는 서로의 피를 지혈하고 깊게 베인 상처를 싸매주고 뜯겨나간 옷자락을 수선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종종 기억과 기록은 동일하지 않으며 문자 안에 다 담기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말로도 글로도 복구되어지지 않는 상처, 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게 되었다. 쓰는 일이란 그러므로 공적인 기억의 바깥을 떠도는 배제된 혹은 은폐된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일 수도, 문자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무덤에서 부장품을 발굴하는 일일 수도, 표현되어지지 않는 것의 표정을 더듬는 일일 수도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게 되었다. 끝내 남는 것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 이라는 게 다만 놀라울 뿐.
--- p. 15
글이 주는 위안이란 서로 다른 여러 세계가 교차하고 충돌하고 비껴가고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우주에 자신이 속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누추하고 남루할 줄 알았던 내 존재가 맙소사, 다른 수많은 별들과 함께 반짝반짝 빛나고 있구나, 목격할 때다. 내 후회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내 절망이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고 내 뜨거운 눈물에 춥고 쓸쓸한 누군가가 밥을 말아 먹는다는 걸 아는 것, 글이 주는 위안일 것이다.
--- p. 46
글을 쓰는 일은 재능보다, 성실함보다,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종종 글방러들에게 말하곤 했다. ‘어디까지 쓸 것인가’는 ‘내 마음의 우물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것인가’라는 말로 바꿔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차곡차곡 입력된 관습과 지식과 정치와 경제와 윤리의 체계를 의심하고 살짝 깨물어 부수어보기도 하고 와장창창 깨트려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가 작가라고, 나는 스스로 두려워하면서, 말하곤 했다.
--- p. 52
밥 같은 거 잘 못해도 설거지 같은 거 잘 못해도 걸레 같은 거 깔끔하게 짜지 않아도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아픔 같은 거 잘 알아채지 못해도 남의 수난 같은 데 조금 무심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종의 절멸 같은 것 신경 쓰지 않아도 어떤 생명의 고통 같은 것 공명하지 않아도 당대의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끼 맛있는 밥상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닐 테다. 내 입에 맛있는 건 다른 사람 입에도 맛있다는 걸 안다고 잘 팔리는 책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닐 테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임을 안다고 해서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다. 입맛 좋은 소녀들은 어쩌다 나를 만나 밥과 글이 동등하다는 잔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을 뿐이다.
--- pp. 82-83
신기한 일이라고 나는 종종 말하곤 한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도 아주 열심히 진지하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매번 새롭고 놀랍다. 저 명민한 이들은 알아챈 것이다. 자신이 곧 우주라는 걸, 내 한 몸이 꽃일 때 온 세상이 봄이라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글 쓰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토록 열렬히 글방을 열어가다니. 이들로 인하여 글방은 확장되고 변주되고 진화한다. 그리고 연결된다, 당신과 나, 이토록 우연히 이토록 찬란히.
--- pp. 24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