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로소 네게 졌음을 인정한다!
이아나의 얼굴이 고통으로 인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맹수의 발치에 피가래를 뱉으며 이아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엄하다, 저런 건방진 년 같으니!
황금빛 눈의 맹수 주변에 널린 벌레가 왱왱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져도, 비명 같은 쇳소리가 저를 향해도 이아나는 벌어진 입에서 붉은 핏덩이를 왈칵왈칵 쏟아 내며 그저 미친 듯이 웃었다.
침묵하던 맹수가 굳은 입을 벌렸다.
“그 고집이 이렇게 너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하여도?”
“그렇다. 내 삶은 모두 나 스스로가 개척한 것!”
이아나는 바닥으로 널브러지려는 몸을 똑바로 펴고 팔을 벌렸다. 뜨겁게 요동치던 그녀의 심장은 피를 질질 흘리게 된 지 오래다. 그녀의 왼쪽 가슴, 정확하게는 그녀의 심장을 꿰뚫은 검 한 자루가 느린 박자에 맞추어 대롱거렸다.
벌컥…….
단말마의 비명은 입이 아닌 딱딱하게 굳어 죽어 가는 심장이 내뱉는다. 그러나 죽더라도 할 말은 다 하고 죽겠다는 이아나의 강력한 의지를 받들어, 심장은 맹수의 송곳니에 물린 먹잇감처럼 꿈틀거리면서도 겨우 이승 줄을 붙잡고 있었다.
“후회는 없다. 이 모든 결과가 내 선택에 의한 것일지니……!”
이아나는 눈앞의 검은 맹수만을 직시하며, 퍼렇게 체온이 식어 가는 사람답지 않게 지극히 선명한 어투로 말했다.
“이 내가…… 쿨럭, 후회하리라 보나?”
붉은 선혈이 또다시 바닥에 한 움큼 떨어져 내렸다. 순간적으로 이아나가 토한 핏덩이에 쏠렸던 날 선 시선은, 자석에 이끌리듯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
이아나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는 금안은 어딘가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이아나는 그런 그의 시선이 제 몸처럼 익숙했다.
맹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없지. 너는 이아나 로베르슈타인이니까.”
“그래, 후회하는 건 나를 바랐던 네놈이다! 아하하하!”
그러니 너도 내게 졌다! 졌단 말이다!
끝까지 신경 거슬리는 말을 지껄여 대며 마지막 생기를 뽐내는 이아나의 당당한 웃음소리가 신경이 곤두선 채 온통 이글거리는 맹수, 아르하드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거슬린다. 죽어라.”
북녘의 바람보다 서늘한 음성은 이아나의 입가에 웃음을 선사했다.
웃음의 자국에 피가 묻어난다. 붉은 머리카락, 붉은 입술, 붉은 피. 온통 붉은 이아나는 아르하드의 금안을 붉게 물들였다. 아르하드는 어쩐지 눈이 시려서 인상을 찌푸렸다.
흐릿해지기 시작한 시야 속에서 미간을 좁히는 아르하드를 발견한 이아나가 피를 퉤, 하고 뱉어 냈다.
“아르하드 로이긴, 나보다는 네가 더 불……쌍하구나. 대체 어쩌다…… 쿡, 쿡.”
“……너는 정말 앞뒤가 꽉 막혀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망할 계집이다.”
비웃음 섞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르하드의 눈동자가 기어코 흔들리고 말았다.
“너만치 미치도록 탐이 났던 이는 없었다. 후회하는 건 나라고? 헛소리. 나는 너를 원했던 날들을 후회하지 않아. 하지만 널 원했기에 생겨 버린 내 갈증도, 네 그 빌어먹을 고집도 이제 끝이다! 이제 두 번 다시는 널 볼 일도, 너를 바랄 일도 없겠지!”
체념뿐만 아니라 분노까지 튀어나왔다. 번뜩거리는 금안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기이한 광망은 금방이라도 이아나의 목을 조를 듯했다.
“그러니 잔말 말고 죽어라! 네 시신은 내 눈에 두 번 다시 띄지 않도록 아예 불태워 주마!”
“…….”
분노로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아르하드를 가만히 쳐다보던 이아나의 몸이 차가운 대지 위에 천천히 꼬꾸라졌다. 그녀의 악명과 화려한 공적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말로였다. 하지만 이아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슬퍼하지도 않았다.
모든 결과는 제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다. 죽음은, 미치도록 아르하드를 이기고 싶어서 그를 적대하는 길만 선택했던 자신의 종착지였다. 후회할 리가 없었다.
다만 패배를 인정하게 된 이아나는 제 죽음을 내려다보는 아르하드 로이긴, 아니 아르하드 로 라르소 바하무트, 바하무트 제국 황제의 빛 꺼진 눈동자를 흐릿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흙바닥에 이리저리 흐트러트린 이아나는 마침내 피하기만 했던 진실을 인정하며 피 묻어 축축한 입술을 달싹여 웃었다.
“너는 나를 언제나 패배시키는 적이었으나…… 꽤나 좋은 동반자였다……. 그래, 그러했구나…….”
아르하드 로이긴, 자신과 누구보다 닮았던 자. 그래서 서로에게만 집중했고, 광적으로 집착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한쪽은 상대방을 온전히 얻기를 원했고 한쪽은 상대방을 온전히 꺾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였음에도 이러한 파국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아나는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써 완전한 패배를 인정했다. 죽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상대에게 적대감으로 얼룩진 웃음이 아닌, 진실한 웃음을 보였다.
‘아하하, 패배를 인정하고 나니 어찌 이리도 속이 시원한지.’
그녀는 이제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얼굴 근육 대신 속으로 낄낄대며 웃었다.
하지만 그런 이아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르하드의 황금빛 눈동자는 이아나가 입 밖으로 꺼낸 동반자, 그 짧은 말에 누렇게 죽어 갔다.
“닥쳐라. 이 답답한 계집! 늘 죽자 살자 덤벼들다가 이제 와서 그 말하여 무엇이 달라질 것 같나!”
답지 않게 격양된 어조로 말을 잇는 황제를 눈을 깜빡이며 쳐다본 이아나가 마지막으로 설핏 웃었다.
그의 말이 맞다. 하지만.
둘의 시선이 맞닿고, 이아나는 말했다.
“이번…… 생은 끝났다. 그러나…… 다음 생에는 너의 적……이 아닌 너의 기사가 되……리…….”
다음 생이 존재한다면, 당신에게.
그러나, 그렇다 한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내 생에 단 한 점의 후회도 없다.
이아나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뜨거웠던 불꽃이 초라하게 꺼졌다. 그렇게 로안느 왕국의 여공작이자, 대륙 최강자의 수좌를 다투던 여검사 이아나 로베르슈타인은 바하무트 제국의 황제, 정복왕 아르하드 로이긴이 빼어 든 검에 죽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