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부터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토지의 소유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었다. 특히 도시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주거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토지이용에 관해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세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도시의 발전을 조절하고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적 수법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훗날 필요할 도로 용지를 건축선법을 통해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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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문제의 기저에는 도시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쟁이라는 요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의 물리적 개발은 상업, 산업, 교통, 행정, 노동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이익 집단 간 갈등이 빚은 산물이다. 이익집단은 도시 내에서 안전하게 자신들의 장소를 점유함으로써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이러한 경쟁의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도시는 성장하거나 쇠락한다. 또한 도시 내부의 물리적 구조를 조절하는 과정은 새로운 갈등을 발생시키고 낡은 것은 제거하면서 경쟁하는 이익집단 간의 관계를 변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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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가 주창한 전원도시론 이후 20세기 초 도시계획의 요체는 ‘도시와 농촌의 결합’이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도시 이론’이 완성되었다. 신도시는 거주자들로 하여금 자족적 커뮤니티로 구획된 경계 내에서 생활이 완결되도록 짜인 구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는 오늘날 우리가 대도시 주변에서 목도하는 것처럼 교외지가 팽창되는 시기를 맞았다. 그러나 자동차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사람들은 예전보다 광역적 차원에서 살게 되었으며, 고용·소비·여가는 더 이상 신도시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의 변화로 1945년 이후 서구에서는 신도시 건설을 통해 분산화를 시도하는 자족적 커뮤니티라는 전원도시의 이상을 낡은 모델로 치부하게 되었고, 성공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신도시들은 급속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 도심으로의 회귀, 정보화의 영향으로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 pp.84~85
그런데 토크빌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다수라는 폭군은 산업사회 중심지보다 교외 지역에서 더욱 기세를 떨쳤다. 라이트는 지나친 도시화의 위험 중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인식했지만, 자신이 신봉하던 가치를 장려하는 도시의 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가 설득력 있게 주장했듯이, 익명성의 자유,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와 경험을 지닌 집단과의 근접성, 무한대인 인간과의 접촉 범위 등 대도시는 개인주의에게 천혜의 환경이다.
--- p.119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르코르뷔지에는 비교를 위해 점지된 인물 같다. 그들의 이상향 도시는 동일한 공상적 주제에 대한 두 개의 대립이형(對立異形)으로서 정면으로 대치된다. 이 두 사람은 산업화로 인해 정의와 조화, 미학의 새 시대로 가기 위한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새 시대는 현존하는 모든 도시를 새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로 대체해야만 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사회를 물리적으로 재편하는 것은 미래와 과거를 가르는 근본적이고도 혁명적인 조치라고 생각했다.
--- p.135
구도시와 신도시 사이에는 도시계획가가 존재한다. 도시계획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진정한 산업사회의 질서 간의 사회적 갈등 너머를 바라본다. 그의 상상력은 제일 먼저 공동의 선을 이해하고 그것을 새로운 종류의 사회를 위한 계획으로 형상화한다. 상상력이야말로 도시계획가가 지닌 권한의 근원이다. 하워드, 라이트, 르코르뷔지에는 이 권한을 다른 어떤 정치 지도자들의 권한보다 더욱 심오하고 진실하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계획가는 어떠한 단일 집단의 목표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계획가는 오히려 모든 사회적 격차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 p.194
우리는 너무도 많은 계획이 의도는 좋았으나 추진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것과, 너무도 많은 기술이 승리를 거두지만 결국 비인간적인 목적에 전용되는 것을 목격했다. 또한 너무도 많은 조직이 잘 조직되었지만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억압을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갈등, 비합리성, 증오, 유혈을 유발하고 있다. 심지어 가장 선진화된 나라에서조차 맨 얼굴의 야만성이 목도되고 있다. 이제 산업사회가 치유되어 필연적으로 형제애와 화합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하워드, 라이트, 르코르뷔지에의 이상향 도시는 시대에 걸맞은 방안이 출현했기 때문에 밀려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상향 도시는 그와 같은 해결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대체되었다.
--- p.195
그러나 아무리 걸출한 도시계획가라 하더라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수천의 개개인과 소집단은 이룩할 수 있다. 그들의 독자적이고도 예측 불가능한 선택이 바로 도시가 가장 필요로 하는 활력을 창조한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침이나 승인 없이 움직이는 개인은 버려진 상점 전면에 식당을 개점하기로 결정하고, 건물 꼭대기 방을 발레 학교나 유도장으로 바꾸기로 하며, 전에는 결코 필요하지 않았던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기로 마음먹는다.
--- p.197
산업도시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도시 분산화를 선호하는 분산주의자와 고밀도 도시를 좋아하며 도시의 난개발을 비난하는 집중주의자 간의 대립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20세기 도시계획의 역사는 19세기 산업도시의 폐해에 대처하는 방안들로 점철되어 있다. 하워드, 게디스, 라이트, 르코르뷔지에부터 멈포드, 오스본과 그 외의 다른 추종자들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많은 도시계획가의 도시계획은 산업도시가 가져온 폐해에 대응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1945년 이후 19세기적 도시 문제는 감소했지만 20세기적 도시 문제가 새로 등장하면서 도시계획을 이끄는 동기는 더욱 다양하고 세밀해졌다.
--- p.231
르코르뷔지에가 집중주의자라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분산주의자이다. 두 사람은 에버니저 하워드가 주도한 레치워스와 웰린 전원도시, 그리고 햄스테드에서 적용한 아이디어와 경험을 자신들의 작업에 반영시킬 수 있는 후발자의 혜택을 누렸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하워드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르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와 라이트의 ‘브로드에이커 시티’가 양 극단에 위치한다면, 하워드의 전원도시는 그 중간 지점을 점하고 있다. 나중에는 하워드가 집중주의자나 분산주의자가 아닌 절충주의적 입장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 같은 학자는 하워드를 분산주의자의 태두로 간주했다.
--- p.233
20세기에 만들어진 오래된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도시 정책을 폐기해야 하는 것 아닌지 조심스럽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제 국토성장 패러다임을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메갈로폴리스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도권?호남권?부산 대도시권을 주축으로 하고 혁신도시가 연계되는 메갈로폴리스 전략으로 21세기 국토공간을 재편해야 한다. 수도권 대 지방의 대립은 20세기의 잔재이며, 21세기의 화두는 메갈로폴리스 네트워크상에 있는지 여부이다.
--- p.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