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없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마실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또 햇볕을 전혀 볼 수 없고, 숨쉴 공기가 없다고 가정해 보라.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 지, 수, 화, 풍, 즉 우리 환경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가.
--- p.17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 있어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 본문 중에서
표주박 하나에 옷 한 벌로 가고 싶은 곳은 아무 데나 가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문다. 어느 곳에서 자더라도 주인의 일은 일체 묻지 않고, 그곳을 떠날 때에도 내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추위 속에 떠나도 외롭지 않고, 시끄러운 무리 속에 섞여도 그 때문에 내 마음도 물들지 않는다. 그러니 내 방랑의 뜻은 단순한 떠돌이가 아니라 도를 배우려고 하는 데 있다.
--- pp.90-91
전통적인 우리네 옛 서화에서는 흔히 '여백의 미'를 들고 있다. 이 여백의 미는 비록 서화에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끼리 어울리는 인간관계에도 해당될 것이다.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가득가득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여백의 미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두루 헤아려보라. 좀 모자라고 아쉬운 이런 여백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숨통이 트일 수 있지 않겠는가.
친구를 만나더라도 종일 치대고 나면, 만남의 신선한 기분은 어디론지 새어나가고 서로에게 피곤과 시들함만 남게 될 것이다. 전화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정의 밀도가 소면된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바쁜 상대방을 붙들고 미주알 고주알 아까운 시간에 기운을 부질없이 탕진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고 자신의 삶을 무가치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주어야 한다. 덜 채워진 그 여백으로 인해 보다 살뜰해질 수 있고, 그 관계는 항상 생동감이 감돌아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될 수 있다.
--- p.168
일상적인 우리의 정신상태는 너무나 복잡한 세상살이에 얽히고 설켜 마치 흙탕물의 소용돌이와 같다. 우리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도 이런 흙탕물 때문이다. 생각을 돌이켜 안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는 명상은 이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작업이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둘레의 사물이 환히 비친다. 본래 청정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 p.80
우리는 말하기 전에 주의깊게 생각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말하는 것보다는 귀 기울여 듣는 데 익숙해야 한다. 말의 충동에 놀아나지 않고 안으로 곰곰이 돌이켜 생각하면, 그 안에 지혜와 평안이 있음을 그때마다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말을 아끼려면 될 수 있는 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없이 무책임하게 제삼자에 대해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나쁜 버릇이고 악덕이다.
--- p.110
올바른 이해는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얻어듣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움튼다.
보다 바람직한 자기 관리를 위해서는 수시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자기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자기 관리를 하려면 바깥소리보다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스승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깃들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인내와 열의와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명상은 정신력을 기르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때때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 없어진다면 우리의 마음은 황무지가 되고 말 것이다.
행복을 얻는 비결은 즐거움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고 알맞게 그칠줄 아는데 있다.
진정한 친구란 두 개의 육체에 깃들인 하나의 영혼이다. 친구 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메아리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 신뢰감이 가지 않는 것은 그의 내면이 허술하기 때문이고 또한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꽃이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서 피어나는 것은 묵묵히 피고 지는 우주의 신비와 그 조화를 보고 배우라는 뜻일 것이다.
출가 수행승을 다른 말로 ‘비구’ 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에서 음으로 옮겨진 말인데 그 뜻은 ‘거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밖으로는 음식을 빌어 육신을 돕고, 안으로는 부처님의 법을 빌어 지혜의 목숨을 돕는다는 두가지 뜻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는 것은 벽이고, 이어주는 것은 다리이다. 벽은 탐욕과 미움과 시새움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두터워 가고, 다리는 신의와 인정 그리고 도리로 인해 놓여진다.
소련의 독재자 후루시초프는 정치가란 시냇물이 없어도 다리를 놓겠다고 허풍을 떠는 자들이다라고 말했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승려의 여름철 안거가 끝나는 마지막 날(음력 7월 15일)을 ‘자자일(自恣日)’이라고 하며 이날 비로서 수행자의 나이가 한 살 보태진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커다란 생명의 뿌리에서 나누어진 지체들이다. 그런데 이기적인 생각에 갇혀 생명의 신비인 그 ‘마음’을 나누디 않기 때문에 우주에 가득찬 그 에너지가 흐르지 않고 막혀 있어 세상은 병들어 가는 것이다.
옛 성현들이 이야기하는 행복의 조건 즉 절제에 깃든 행복의 교훈은 ‘일은 완벽하게 끝을 보려 하지 말고,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고, 말은 끝까지 다하지 말고, 복은 끝까지 다 누리지 말라’고 하였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 있다.
좋은 선배란 후배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배 자신의 삶이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 00/02/16 김남정(nomade)
어머니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내 거처로 불쑥 찾아오신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광주에서 사실 때인데 고모네 딸을 앞세우고 직접 불일암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내 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상을 차려드렸다. 어머니는 혼자 사는 아들의 음식 솜씨를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날로 산을 내려가셨는데, 마침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위태로웠다. 나는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짝 마른 솔잎단처럼 너무나 가벼워 마음이 몹시 아팠었다. 그 가벼움이, 어머니의 실체를 두고두고 생각케 했다.
어느 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아, 이제는 내 생명의 뿌리가 꺾였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이라면 지체없이 달려갔겠지만, 그 시절은 혼자서도 결제結制(승가의 안거제도)를 철저히 지키던 때라, 서울에 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나 대신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다. 49재는 결제가 끝난 후라 참석할 수 있었다. 영단에 올려진 사진을 보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친어머니에게는 자식으로서 효행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 때면 어머니를 대하는 심정으로 그 모임에 나간다. 길상회에 나로서는 파격적일 만큼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나이 이 처지인데도 인자하고 슬기로운 모성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 생명의 언덕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 pp.101-102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산마루에 떠도는 구름
다만 스스로 즐길 뿐
그대에게 보내줄 수 없네
--- p.51
사고가 나던 그날 밤, 나는 전에 없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날이 샌 후에도 어째서 그토록 불안한 마음이었는지 곰곰이 헤아려보았지만,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점심시간 식탁에서 라디오로 정오 뉴스를 듣고서야 비로소 불안했떤 그 실체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커다른 생며의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괌의 대한 항공기 참사 사건에대한 법정의 단상 중......)
--- pp.78-79
바람직한 인간관계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주어야 한다 덜 채워진 그 여백으로 인해 보다 살뜰해질 수 있고,그 관계는 항상 생동감이 감돌아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될 수 있다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웠더니 심지를 줄여도 자꾸만 불꽃이 올라와 펄럭거린다 가득 찬 것은 덜 찬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눈앞에서 배우고 있다.
--- p.168-169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죽는 일도 그 시간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시계바늘에 의존하지 않으면, 순간 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시가넹 쫓기지 않고, 초조해하지 말고 시간 밖에 있는 무한한 세계에 눈을 돌리면 그 어떤 시간에서 여유를 지니고 의젓해질 수 있다는 소리이다.
--- p.24
며칠 전 새로 만든 흙방에 도배를 했다. 벽과 천장은 티가 섞인 한지로 바르고 바닥은 장판으로 발랐다. 장판 아홉 장 깔이 방이니 한 평 반쯤 될까. 빈 방에 방석 한 장 깔고 앉아 있으니 새로 중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거치적거리는 것 없어 홀가분해서 좋다.
장판방이지만 시멘트를 쓰지 않고 흙으로만 발랐기 때문에 바닥이 매끄럽지 않고 우둘투둘하다. 이 우둘투둘한 질감이 나는 너무 좋다. 요즘은 어떤 방이든지 한결같이 매끄럽고 평탄하기만 한데, 오랜만에 이런 질박하고 수수한 방바닥을 대하니 마음이 참으로 느긋해진다. 우둘투둘한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있으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미친 바람 소리도 한결 부드럽게 들린다. 이 방에 나는 방석 한 장과 등잔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두지 않을 것이다.
--- '흙방을 만들며' 중에서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 쯤에 와 있느냐?' 이글을 눈으로만 스치고 지나치지 말고, 나직한 자긴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자신을 향해 소리내어 읽어보라.
--- 본문 중에서
그대의 가을은 어떠한가..
아직도 푸르름 그대로 인가!
푸릇푸릇 여름의 색을 벗지 못하였나..
울긋불긋 그것이 가을이네..
그대의 가을은 어떠한가..
아직도 노심초사 떨어지는 낙엽이 아까워
맘 졸이고 있는가..
그냥 놓아주게 곳 겨울이니 그냥 놓아주게..
그저 새 봄이나 기다리세 그려..
--- p.
개인적으로 법정 스님을 존경하는 나이기에 이 책에 대해서는 찬사를 할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모든것을 버리고 오두막에서 사시는 법정스님이 넌지시 인생과 사람에 대하여 충고하신다. 밤에 자신의 하루를 반성하면서 읽으면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따뜻해 질것 같다...
나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