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서브프라임 위기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위기의 진원지는 바로 ‘20세기 미국’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위기가 발생하기 전, 미국이 마지막으로 주택 대위기를 겪은 것은 1925년에서 1933년 사이였다. 그 기간에 주택 가격이 총 30퍼센트 떨어졌고, 대공황 절정기에 실업률은 25퍼센트까지 치솟았다. 그러한 위기는 당시 금융 제도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5년 미만의 단기 주택담보대출을 받았고, 만기 직전에 대출을 연장하면 되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대출자들은 대출을 연장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집을 차압당했다.
당시에는 대출자들이 신규 주택대출을 받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는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보안장치가 없었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서로 힘을 합쳐 그러한 제도적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애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집에서 쫓겨나가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고 집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한 역사적 위기 때 쓰였던 정책들이 현행 위기를 극복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대공황 당시 주택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자, 민간과 공공부문은 혁신적인 조치들을 취했다. 역사적으로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중대한 변화가 단순히 한 사람의 정책적 결과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정부와 경제계 지도자들 모두가 미국의 경제 위기를 이해하고 미국 경제의 제도적 인프라를 개선하려는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p.42
현행 금융 위기에 관한 공식 강좌에서만 간혹 거론되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1990년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출현은 금융 민주주의(즉 금융 혁신의 이익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가질 수 있는 사회)의 도래를 의미했다. 비록 금융 민주주의의 원시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前 연방준비위원회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에서부터 부동산 이코노미스트였던 故 에드워드 그램리치(Edward Gramlich)에 이르는 저명한 비평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운동을 긍정적인 발전으로 보았다. 마구잡이식 대출 관행에 대한 비판이 있기는 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수백만 명의 저소득자들에게 주택을 보유할 기회를 효과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매한 사회적 소망에도 불구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실행 상에 중대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모기지 인수에 필요한, 날로 복잡해지고 있는 금융 조직들을 지원할 리스크 관리 제도를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p.61
일부 국가는 여전히 주택 붐을 이루고 있지만, 많은 국가들이 미국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림 2.4에서는 대런던(Greater London)과 대보스턴(Greater Boston) 간의 실질 주택 가격을 비교하고 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반대편에 자리한 두 도시가 놀랄 정도로 비슷한 가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론 두 도시 간에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두 도시 모두 1980년대에는 붐을 경험했고, 1990년대 초반에는 주택 가격 폭락을 경험했다. 두 도시 모두 2000년대 초반에는 주택가격이 급등했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두 도시 모두 주택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많은 국가에서, 많은 도시에서, 서로 다른 가격대의 많은 주택에서 붐이 발생했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매우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뜻한다. 이러한 버블은 어느 한 시장이 지닌 독특한 특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다음 장에서 나는 서로 다른 여러 지역에서 이와 같이 전례 없는 가격 움직임이 발생한 궁극적인 원인이 ‘시장 심리의 전염력(시장 심리에 기름을 붓는 이야기들의 포괄적인 특성 때문에 국경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전염력)’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 것이다. ---p.97
최근 투기적인 부동산 붐에서, 시장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 분명 크게 눈에 띄었다. 칼 케이스(Karl Case)와 나는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을 때인 2005년에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주택 구매자들에게 향후 10년 간 예상 주택가격 추이를 물었다. 중간 예상 가격은 연간 9퍼센트 상승이었고, 평균 예상 가격은 연간 14퍼센트 상승이었다. 응답자들 가운데 약 3분의 1이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심지어는 연간 50퍼센트 상승을 기대하는 이도 있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예상을 했던 것일까? 그들은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현실을 보고 있는 중이었고, 그러한 상승에 대한 다른 이들의 해석을 들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해석이나 기대가 전염되는 현실을 목격했던 것이다.
부동산 붐이 생기는 과정을 들여다보자. 사업 지역의 ‘재개발 호?’ 등의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중 중요한 부분이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시장에 의해, 그리고 시장에서 목격한 가격에 의해 각색되고, 언론매체에 의해 부풀려진다. 여기서 ‘부풀려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언론은 가격 움직임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가격이 상승 움직임을 보일 때, 언론은 ‘새로운 시대’에 관한 이야기들을 추가로 손질하여 호도한다. 여기서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즉 가격 상승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회’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고, 그러한 이야기들의 전염력이 더욱 강해져 가격 상승을 한층 부추김으로써 투기적 버블의 시기 동안에 ‘가격 상승-이야기-가격 상승’이라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이러한 순환 고리는 ‘가격상승-경제활동-가격상승’이라는 양상도 띤다. 투기적 가격 상승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 확산되어 소비가 보다 증가하고, 그로 인해 경제가 보다 성장하고, 그로 인해 낙관적인 시각이 더욱 확산되고, 그로 인해 가격이 한층 상승하는 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보통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냈다는 의식이 보통 투기적 버블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의 기초여건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버블 그 자체가 그러한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p.107
역사가인 아론 사콜스키는 1932년 자신의 저서 「미국의 토지 버블」에서 투기 분위기는 미국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조성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미국은 시작부터가 투기였다.”
사콜스키는 미국이 이주민들의 나라가 되리라는 인식이 18세기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땅 투기꾼들은 1600년대 말부터 1에이커에 1실링을 주고 수천 에이커를 사들였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이주민들에게 구매가격의 두세 배 되는 가격에 그 토지들을 되팔았다. 투기 열풍이 분 것이다. 때때로 토지에 지나치게 비싼 값이 매겨지기도 했다. 훗날 그것은 토지 가격 폭락과 투자자들의 파산을 초래하기도 했다. 일부 최고 권력자들도 토지 투기 열풍에 휘말렸다. 사콜스키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 같은 초기 미국인도 토지 투기꾼이었다. ---p.134
나는 터키 이즈미르(Izmir)에서 가까운 오즈데르(Ozdere)에 위치한 아름다운 해변 리조트에서 국제적인 투자 전문가 집단과 야외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에게 해 위로, 한때 수학자 피타고라스와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가 살았던 그리스 사모스섬이 보이는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나는 사람들의 믿을 수 없는 애향심에 대해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나는 캘리포니아에 대한 캘리포니아인들의 감정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의 기분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인들은 “모든 이들이 이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고 종종 말한다. 나는 캘리포니아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설문지를 돌리고, 그곳의 부동산 상황에 대한 비평을 부탁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캘리포니아인들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터키에서 나는 그곳에 모인 이들에게 “여기보다 캘리포니아에 있었으면 하시는 분, 손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터키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아마도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잘 모를 것이다. 캘리포니아인들이 터키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계속 주목을 받고 있다는 믿음(심리학자인 토머스 길로비치는 이것을 일명 ‘스포트라이트 효과’라고 부른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실제보다 아름답게 생각하는 심리를 북돋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일종의 애향심은 좋은 현상처럼 보인다. 주택 보유를 권장하는 프로그램들이 그러한 애향심을 부추긴다. 그렇지만 그러한 심리 역시 투기적 버블 생성에 일조한다. 옛날부터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버블이 가장 심한 곳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냉혹한 시장 원리에 부동산 시장을 열어 두는 것이다. 6장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우리는 시장을 민주화해야 한다. 진정으로 세계 여러 곳의 출신인 터키인들은 부동산을 처분할 수 있을 만큼 시장 상황이 좋으면, 버블이 일어나는 동안 캘리포니아 부동산을 매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서브프라임 위기에 일조한 가격괴리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열린 시장’이 모든 버블을 예방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장에서는 우리가 최근 목격하고 있는 이례적인 주택 가격 폭등 그리고 그것이 신용 시장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이 되풀이되는 것을 예방할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p.136
주택 버블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사람들은 주택 가격 상승을 일반적으로 희소식으로 여겼다. 기자들에게 주택 가격 하락을 ?망하면, 나는 그들로부터 ‘카산드라(Cassandra:예언은 맞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혹은 믿고 싶지 않은 예언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옮긴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주택 가격 하락은 결코 나쁜 소식이 아니다. 만약 주택 가격이 소득에 비해 하락한다면 우리는 경제적인 여유가 더 생길 것이고, 새로운 집에 투자할 여력이 더 생길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녀가 있고 심지어는 손자, 손녀도 있다. 보통 우리보다 그들이 수적으로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우리 사회의 다른 이들을 염려한다. 우리는 그들이 미래에 주택을 구입할 여력이 있길 바란다. 따라서 주택 부족은 결코 희소식이 아니다. 오히려 주택 가격 하락이 희소식이다.
정부가 부동산 신화의 정당함을 뒷받침해주고, 주택 가격 붕괴를 막는 공공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단기적으로 주택 가격 하락으로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고, 시스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 하락은 분명 좋은 일이다.
이러한 장·단기 역설은 비슷한 역설을 펼치는 케인즈 경제 이론을 연상시킨다. 즉 갑작스런 저축률 상승이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단기적으로는 갑작스런 저축률 상승을 두려워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축률 상승을 환영한다. 왜냐하면 미래를 위해 투자할 자원이 우리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기와 장기를 각각 고려해야 하고, 단기와 장기에 대응하는 정책이 각각 달라야 한다. ---p.161
지금까지 미국은 수차례 금융 위기를 겪었다. 예를 들면 1797년, 1819년, 1837년, 1857년, 1873년, 1893년, 1907년, 그리고 1933년에 심각한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그러한 위기들은 수년에 걸친 제도 수정으로 대개 해결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는 1913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설립과 1930년대 초 뉴딜 개혁정책이다. 하지만 효과적인 개혁 정책들이 경제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다. 특히 주택 부문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사실 주택 부문은 구시대적인 금융 정책들로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수의 주택을 포괄하는 보다 광범위한 금융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어떤 사건들이 서브프라임 위기를 초래한 것인지 명백한데도, 기본적인 경제 제도의 불완전함에 관한 논의가 폭넓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시장에서는 버블이 생겼다 터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대의 경제 위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의 방법밖에 가지고 있지 않고, 위험할 정도로 투자가 다각화되어 있지 않으며, 실직하거나 병에 걸리면 파산할 위험이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피할 수 없는 제도적 특성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마치 자연물처럼, 제도 그 자체를 개혁 불가능한 무엇인가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뉴딜 시대의 개혁처럼 성공한 개혁 정책들을 보면 이러한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기본적인 제도 개혁은 가능한 무엇인가일 뿐 아니라, 꼭 필요한 무엇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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