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누가 제게 ‘주식투자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조금은 멋있게 보이려고 그랬는지 ‘주식투자는 세상의 변화와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후 저는 훨씬 더 세상의 변화에 민감해졌습니다. 주식투자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관심도 따라서 커집니다. 예전에는 경제적인 일들에만 관심이 갔고 대체로 국내의 상황 위주로 관심이 갔다면 투자금이 커진 후에는 관심의 영역이 우리 사회, 정치, 군사, 외교적인 사안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하물며 아프리카나 남미의 상황으로까지 자연스럽게 넓어지게 됐습니다. 제 계좌의 포트폴리오가 늘면 늘수록 저의 관심사의 넓이와 깊이도 확장됐습니다.
--- p.15~16
많은 분이 주식투자를 시작했냐고 물을 때 ‘주식에 들어갔냐?’라는 표현을 씁니다. 적금에는 ‘들어갔냐’고 하지 않고, 또 더 큰 돈을 넣어야 하는 집을 사면서도 ‘아파트에 들어갔냐’고 하지 않는데 유독 주식은 ‘들어가다’라고 표현합니다. 그저 관용적 어법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주식투자를 ‘들어갔다 잘 나오는’ 일회적인 사고파는 행위라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즉, 사서 시작하고 팔아서 종결되는 매매로 생각하기 때문에 들어간다는 표현을 쓰는 거죠. 들어갈 때 이미 나올 것을 염두에 둔다는 얘기입니다.
--- p.18~19
100만 원을 투자해 200만 원이 됐다고 해볼까요? 이 경우 대부분은 행복감을 느끼기보다는 후회를 합니다. ‘내가 그때 100만 원이 아닌 1000만 원, 아니 빚을 내서라도 1억을 질렀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과 같은 행운을 기대하면서 쌈짓돈을 털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내서 투자금을 늘리게 됩니다. 어떻게 될까요? 또 성공할까요? 대부분은 큰 손실을 경험하며 그때서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포트폴리오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p.23
지난 몇 년간의 한국 증시를 한번 되짚어봅시다. 2015년 대중국 관련주에 투자하고 뒤이어 제약 바이오 업종을 거쳐 우량 블루칩에 머물다가 2018년 초 코스피 2600 부근에서 모두 팔고, 코로나19로 주가가 폭락한 2020년 봄에 주식을 다시 쓸어 담아 수익을 낸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요? 다소 거창한 얘기지만 역사를 한번 되짚어봅시다. 1960년대 말 미국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에 투자하고 70년대 유가와 에너지 주식에 올인한 뒤, 1980년대엔 도쿄에서 수익을 내고, 이어 90년대 미국 성장주에 투자한 후 밀레니엄 버블이 무너지기 직전 2000년 초에 극적으로 탈출해 채권만 쥐고 있다가 2003년경부터 2007년 금융위기 전까지 강세장을 향유하고 쉰 다음, 2009년부터 지금까지 주식을 꾹꾹 눌러 담아온 사람이 과연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 p.54~55
켄 피셔(Ken Fisher)가 이런 멋진 말을 했어요. “주가는 3개월 뒤나 12개월 뒤를 반영하는 거지, 지금 당장이나 너무 먼 미래를 ‘프라이싱(Pricing)’ 하지는 않는다”고요. 이를 ‘백미러 효과’라고도 합니다. 투자자들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영향을 받기보다 방금 일어난 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거죠.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런 경향이 다들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방송이나 세미나에서 “반보 앞만 보고 가자”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너무 먼 미래를 너무 빨리 프라이싱하는 것도 그렇고, 지금 당장 일어난 일에 일희일비하기도 그렇고, 1분기나 2분기 정도 앞을 가늠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가는 게 적절하다고 보죠.
--- p.196
바이든 행정부는 4년간 무려 2조 달러를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영국과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가 탄소중립 을 선언하고 실제로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을 하며 생산된 제품에 일종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거죠. 또 15억 인구의 중국이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국가적 차원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미국, 중국, 유럽이 일제히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나서는 겁니다. 새로운 생태계가 크게 생겨나는 거죠. 당연히 선점하고 있거나 진출할 준비를 마친 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될 겁니다. 그들 산업을 키우려는 각국의 전략은 비단 좋은 환경만을 위한 걸까요? 아닙니다. 바로 이 길이 가장 큰 고민거리인 고용을 회복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가장 유력한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 p.277
저는 사람들이 지금의 분위기에 취해 너무 안일함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반대로 지나치게 기술적인 측면, 즉 주가가 장기간 너무 많이 올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염려하고 겁내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히 따져봐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를 직관에 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니 결국 숫자가 들어간 지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죠.
--- p.301
2020년과 2021년의 차이는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게 핵심입니다. 백신으로 인한 집단 면역에 가까워지기 이전에 주가는 앞서 반영해갈 거예요. 어쩌면 2020년 12월에서 2021년 1분기 정도가 이러한 백신 개발 기대의 정점이 아닐까 싶어요. 오히려 일상으로의 전진이 가져올 기댓값 변화의 중심은 실적과 금리입니다. 기업 실적의 기댓값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주가가 이미 충분히 반영했고, 또 연초 기댓값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1분기 이후에는 자신 없는 거예요.
--- p.306
한국 주식시장이 2020년 오랜만에 글로벌 시장을 아웃퍼폼(Outperform) 했습니다. 저는 이 추세가 계속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의 구성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0년 주기로 우리 시가총액 10위 기업들을 한번 비교해보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재 시가총액 10위의 구성을 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1, 2위입니다. 반도체 메모리 전 세계 선두 업체 두 곳이죠. 그다음이 LG화학, 삼성SDI입니다. 즉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2차 전지를 만드는 회사 두 곳입니다. 전에 없던 일이죠.
--- p.319
최근에 경기 관련주들의 상승세가 눈에 띄는데, 그래도 다수의 주된 관심사는 여전히 성장주에 가 있습니다. 테슬라와 애플 그리고 구글과 아마존이 관심을 더욱 끌 겁니다. 그런데 과연 수익률이란 측면에서 이 성장주들이 답일까요? 미국 시장에서 에너지나 여행, 항공 혹은 이른바 콘택트 비즈니스를 갖고 있는 기업들의 주가 상승률이 이들 성장주보다 훨씬 못 미칠까요? 적어도 연간 저점 대비 고점의 수익률로만 보면 성장주가 아닌 경기 관련주, 코로나19 피해주들이 더 높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언제 사고 언제 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내기도 할 것이고, 기업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도 있으니 트레이딩이란 측면에서 조심은 해야 하겠습니다.
--- p.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