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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강의 - 팬데믹 이후의 학교와 병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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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강의 - 팬데믹 이후의 학교와 병원을 생각한다

: 팬데믹 이후의 학교와 병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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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190g | 113*183*13mm
ISBN13 9791190351959
ISBN10 119035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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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한국도서관협회 ‘길 위의 인문학’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큰 주제는 ‘팬데믹 시대의 일상의 인문학’이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반 일리치를 선택했다. 근대사회에서 우리가 저지른 일들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포스트 코로나를 생각해 보는 데 일리치만큼 좋은 사상가는, 적어도 나에겐 없었다. 그리고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슬픔과 비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희망은,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의 말처럼, 정치적 선택이다. 한 치 앞이 내다보이지 않을 때도 한 발을 떼는 것, 희망이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정치적 행동이다. 나는 여전히 이반 일리치, 데이비드 그레이버, 김종철 선생님 같은 스승들과 함께 이 길에 서 있다.
---「머리말」중에서

오늘 다룰 이반 일리치는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에 이미 이런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진짜 당연한 거야?’ ‘학교를 왜 가야 해?’ ‘학교를 넘어서 생각해 봐야 되지 않아?’ ‘선진국이 되는 게 좋아?’ ‘임노동이 아닌 삶을 생각해 봐야 되지 않아?’ 이런 질문들을 던졌단 말이에요. 그리고 선진국과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이라는 구분도 이상한 거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이반 일리치가 했던 이런 질문들이 코로나 시대를 숙고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팬데믹의 출구를 여는 데 이반 일리치만큼 좋은 동반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 pp.20~21

그래서 우리는 고통에 대해 사유하지 않고, 나아가 죽음에 대해서도 더 이상 사유하지 않아요. 이반 일리치는 그게 너무 이상하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일리치는 암 치료를 거부하고 환자가 아닌 방식으로 10년을 더 살다가 2002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물론 근본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에 이가 아프면 치과에도 갔어요. 그리고 탈장으로 수술도 하고 했지요. 병원에 대해 새롭게 생각을 한다고 해서 병원에 절대 안 가고 수술 같은 것도 안 받겠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여러 조치들을 합니다. 찜질 같은 요법을 쓴다거나, 생아편 성분이 있는 약초를 심어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현대 의학이 일률적으로 제시하는 통증 완화치료, 즉 ‘통증은 무조건 감소하는 것이 좋다’라는 명제를 거부했을 뿐인 거죠.
--- pp.32~33

이때 ‘조작’이라고 하는 건 삶의 물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욕망까지도 포함합니다. 언제부터 우리 여성들의 욕구는 44사이즈가 됐을까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어떤 프로세스나 기준 속으로 가둬 버린다는 거죠. 여덟 살이 되면 무조건 학교를 가야 된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등등. 근대는 이런 고정된 프로세스를 통해 삶을 조작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조작적인 도구를 쓰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학교에 가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고요.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 학교를 안 가는 것은 굉장한 결여로 느껴지는 거예요. 학교를 가지 않으면 내가 모자란 걸로 느껴지는 거죠.
--- p.47

학교 교육에서는 중학교 1학년에는 수학은 어디까지 배워야 하고, 지리는 어디까지 배워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죠. 배우는 순서도 정해져 있습니다. 한국지리를 먼저 배운 다음 세계지리를 배우고, 인문학적 관점에서의 지리를 배우고, 이런 식으로 단계를 밟아 나가야겠지요. 그리고 이런 과정 역시 전문가에 의해서 고안된 거잖아요. 그런데 사실 배움은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역사에 대해서 몰라도, 그러니까 르네상스는 언제고, 프랑스혁명은 언제고, 이런 것들을 몰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몰라도 가령 어려운 철학자인 푸코를 읽는 데도 문제가 없어요. 푸코를 읽다가 ‘내가 세계사나 유럽사에 대해서 모르는구나’라고 생각을 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공부를 하면 되는 거예요.
--- p.78

일리치는 이렇게 사회의 의료화가 강화되면 … 어떤 몸이 적절한 몸인가를 사회적으로 규정하게 된다는 거예요. 요즘 인바디 측정도 많이 하시죠.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계에서부터 실제로 병원에 가서 하는 건강검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정상’(normal)과 ‘비정상’(abnormal)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몸을 정상으로 바꾸라는 사회적 명령을 받아요. 그러면 만성질환자,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 같은 사람들은 끝까지 ‘비정상’으로, 그래서 정상인의 타자로 살게 되는 거예요. 이거는 더 이상 병의 문제가 아니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인 거예요.
--- p.117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우주의 법칙을 신처럼 직관적이고 필연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한테 닥쳐오는 것들, 내 몸에 생겨나는 변화들,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사유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사유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거고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것을 공부해서 파악한다고 해서 그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 그걸 겪을 수 있는 삶의 기술들을 우리가 고안해 내야 합니다. 그런 삶의 기술은 공생의 도구들과 연결되겠지요. 첫번째 강의에서 이야기한 ‘공생의 도구’를 양생 혹은 ‘자기 돌봄의 테크네’라고 이야기해도 될 듯합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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