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의 술잔을 드는 것으로 표현되든, 그리스도의 성배를 마시는 것으로 표현되든 이 성체배령의 의식은, 적어도 이 두 종교에 관해서 말하는 한 똑같다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의식의 참가자들이 지니는 자각의 수준은 다르다. 디오니소스적인 참가자에게 이 의식의 의미는 사물의 근원, 즉 어머니 대지의 자궁에서 억지로 찍겨져 나오는 <폭풍과도 같은 탄생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폼페이에 있는「신비의 집Villa de Misteri」이라는 프레스코 벽화에는 이 의식이 베풀어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사제가 입문자에게 술잔을 내미는데, 그 술잔에 무시무시한 가면이 반사되고 있다. 이 골포분위기의 조성은 곧 디오니소스 신을 부르는 말하자면 초혼의례에 해당한다. 뒤로는 지상의 귀중한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도 보이고, 번식과 성장의 원리를 나타내는 신성한 창조력의 상징인 남근도 보인다.
오르페우스 교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자연의 영원한 순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과거지향적인 종교인데 반해, 기독교는 입문자에게 전지전능한 하느님과의 궁극적인 결합의 약속을 강조하는 미래지향적인 종교이다.
--- p. 142-143
그림자라고 해서 반드시 꿈꾼 사람과 적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좋건 싫건 한 길을 함께 가야 하는 동행인과 같다.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져주는 척하면서, 때로는 저항하면서, 때로는 다독거리면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무시되거나 오해받을때만 적대적인 힘이 된다.
--- p.173
<오늘날에는 아무도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을 경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답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너무나 주관적인 의식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하느님이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지극히 오래된 진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보라. 불교도는 무의식적인 환상세계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깨비라고 불러 배척하고 있지 않은가? 기독교도들은 자신과 무의식 사이에다 교회와 성서를 끼워 넣고 있지 않은가? 뿐인가. 합리적인 사람, 지적인 사람도 자기의 의식이 정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까지도 알지 못하고 있다.
---p.102
<오늘날에는 아무도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을 경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답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너무나 주관적인 의식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하느님이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지극히 오래된 진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보라. 불교도는 무의식적인 환상세계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깨비라고 불러 배척하고 있지 않은가? 기독교도들은 자신과 무의식 사이에다 교회와 성서를 끼워 넣고 있지 않은가? 뿐인가. 합리적인 사람, 지적인 사람도 자기의 의식이 정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까지도 알지 못하고 있다.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