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본격적인 대중매체 시대에 들어선 시기인 1980~1997년 사이에 대중매체가 확산되는 데 따른 미술계의 변화를 살핀다. 시기 구분에 있어서 1980년을 기점으로 삼은 이유는 한국 대중매체사의 중요한 획을 긋는 사건이자 전격적인 대중매체 확산의 신호탄이 된 컬러 TV의 보급과 방송이 이루어진 해가 1980년이기 때문이다. 연구의 하한 시기를 1997년으로 제한한 것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실시된 시점이 1998년임을 감안해서이다.
― 10쪽, 「들어가며」
1980~90년대에 우리는 두 번의 ‘미디어 혁명’을 경험했다. 1980년의 컬러 TV 방영과 1998년의 무선 인터넷망의 보급이 그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모든 국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때였다.
― 18쪽, Ⅰ장 「대중매체의 확산과 대중문화를 보는 시각의 변화」
80년대 전반 당대를 대중매체 시대로 인식한 현실과 발언은 모더니즘적인 고급미술과 대중문화의 구분에 회의하며 시각문화 전반에 대해 각성하고 삶과 미술의 간극을 좁히고자 소통으로서의 매체에 주목한다. 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한 70년대 단색화식의 재귀적 작품 이해 방식에서 벗어나 예술이 사회에서,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무엇을 담아내고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 57쪽, Ⅱ장 「1980~1997년의 미술계와 매체 논의」
80년대 말 이후의 매체에 대한 인식은 논자마다 그 지향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대체로 민중미술 계열의 매체론이 미술의 민주성과 미술의 사회참여적 측면을 구현하기 위해 매체가 갖는 기술복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복수 제작 가능성이나 매체의 관습적인 활용 방식 및 특성을 파악해 그것을 다른 맥락으로 역이용하는 방식에 주목했다고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은 매체의 다양화 현상을 포스트모던적 다원화의 일환으로 이해함으로써 특정한 매체를 주장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매체 논의가 드러내는 공통점은 확산일로의 기술 기반의 시각매체와 대중매체의 이미지에 대한 반응이었다는 점이다.
― 68쪽, Ⅱ장 「1980~1997년의 미술계와 매체 논의」
80년대 전반의 미술이 팽창일로의 도시의 모습과 확산일로의 대중매체의 영향에 대해 주목했다면, 80년대 말 등장하는 신세대 작가들은 일상성에 주목한다. 일상과 관련된 담론은 작품보다는 비평계가 그 필요성을 먼저 인식한다. (…) 일상성에 대한 주목은 80년대 말의 사회상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 시기에 논의되기 시작한 후기구조주의는 대중을 통제하는 지배집단의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어떻게 규제하고 매개하는지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있으며,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이데올로기의 축을 상실한 진보 진영은 일상성 비판을 통해 이러한 공백을 타개하고자 한다.
― 93~94쪽, Ⅲ장 「도시와 대중문화, 그리고 시각 이미지」
대중매체 시대의 미술은 변화해가는 시각 환경에 대응해 비판성을 견지하며 예술의 사회적 개입에 고민하는 한편, 기술 기반의 매체 확장을 통해 대중매체의 확산 현상에 대응하고자 한다. 그 결과, 80년대 후반 우리 미술계에는 이전 시기와는 상이한 매체 개념이 도입되며, 몇 가지 양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첫째, 사진 매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 둘째, 다양한 일상의 오브제와 여러 매체를 엮어 종합적인 메시지와 이미지를 창출하는 복합매체 및 설치 경향의 증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상·비디오·컴퓨터 등의 기술 기반의 매체 활용이다.
―118쪽, Ⅳ장 「기술 기반 시각매체의 도입」
모더니즘 해체의 동인이 된 설치미술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라 할 수 있다. 당시 평자들은 ‘설치미술’이 우리 미술계에서 퍼져나가는 맥락을 ‘공간 및 장소에 대한 관심’과 ‘매체에 대한 관심’ 그리고 ‘내용 및 내러티브에 대한 관심’으로 꼽고 있다. 이는 설치미술의 발생 맥락과 그 역사를 반영한 평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론상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당시 설치와 관련해 미술계에서 논의된 방식은 80년대 후반 이후의 한국 미술계의 특수성을 반영한다. 즉, 설치미술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장소나 공간의 문제를 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치와 관련한 평론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글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설치미술을 다루는 글들은 거의 모두 매체의 문제와 소통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33~134쪽, Ⅳ장 「기술 기반 시각매체의 도입」
기술 매체를 활용하는 작업들 중 특히 미디어 아트는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그것은 미술뿐 아니라 음악·무용·연극·영화의 요소를 통합함으로써 미술과 타 장르 간의 융합을 야기함은 물론, 대중적 시각 이미지와 오브제를 미술의 문맥 속으로 편입시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철폐하게 한다. 시각매체가 미술의 문맥에 활용되면서 일어난 이와 같은 변화는 예술을 정의하는 기준의 변화로 이어진다.
―156쪽, Ⅳ장 「기술 기반 시각매체의 도입」
80년대 후반 미술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은 이 시기가 시각문화 전반에 대한 인식이 급변하는 시기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기존 미술계에 대한 구조 분석과 시각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다양한 문화이론들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다. 당시 논의된 ‘문화연구’는 구조주의 문화론과 문화주의 문화이론이 결합된 것이다. 문화연구는 정치·경제적 영역만큼이나 문화적 영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좌파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90년대 이후 우리 문화계를 주도하는 흐름이 된다.
― 164쪽, Ⅴ장 「시각문화와 문화연구」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