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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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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

: 일본을 꿰뚫는 9가지 키워드

이승철 | 행성B | 2020년 03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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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54g | 148*215*30mm
ISBN13 9791164710959
ISBN10 116471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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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優生)보호법’. 일본에서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존재했던 법의 이름이다. 구조나 실행 방법은 나치 독일의 것 그대로다. “불량 자손의 출생 방지”라는 목적을 내걸고는 유전성 질환이나, 지적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수술’을 시행했다. 의사가 대상자를 진단한 뒤 불임수술의 필요성을 판단한 후 각 지방자치단체에 설치된 심의회에 신청하기만 하면 된다. 장애의 종류에 따라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심의회에서 ‘적합’ 판정만 나오면 본인의 동의조차 필요 없는, 글자 그대로 강제 불임수술이 이루어진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우생론에 꽂힌 사회」중에서

우울증 등 정신장애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긴 하지만 사원이 죽음을 선택할 때까지 몰아붙이는 회사, 그리고 그러한 틀 속에서도 개인 스스로 소속된 조직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버티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일본 사회의 현실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2018년 판 『과로사 등 방지대책백서』를 보면, ‘근무 문제가 원인이 된 자살자 수’는 2017년 1991명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28.4퍼센트에 달하는 566명이 ‘일의 피로’가 원인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 내 인간 관계로 인한 자살자(481명, 24.2퍼센트)보다 더 높은 자살 원인 1위다. 2011년 근무 문제 관련 자살자 수가 2689명에 이르고 그 가운데 ‘일의 피로’가 원인이 된 사람이 723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018년엔 다소 그 수가 줄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아직도 500명 이상의 사람이 사실상 ‘과로 자살’을 선택한 것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매년 과로 자살은 근무 문제가 원인이 된 자살의 최다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과로사보다 무서운 과로 자살」중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5년 일본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65.5퍼센트로 G7(세계 주요 7개국) 중 이탈리아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일본 여성이 일하기 싫어서 그럴까? 아니다. 여성을 주저앉히는 사회적 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일본에서 취재하며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한마디가, “여자들이 굳이 정규직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결혼하면 그만둬야 할 직장, 굳이 정규직으로 들어가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밤 늦게까지 일하느니, 정시에 퇴근하는 비정규직으로 편히 일하며 배우자를 찾겠다는 의미란다. 물론 모든 일본 여성의 생각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이 사회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채롭다. 그리고 일본 여성들이 어떤 사회적 위치에서 일해왔는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면도 있다.
---「드라마에만 있는 센 여자 열풍」중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이렇게 앞으로 남은 시간을 걱정하는 건, 이들이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 안으로만 극히 파고드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고,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경제성장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해 ‘디플레이션(deflation) 세대’라고도 불리는 일본 젊은이들은 모든 면에서 뭔가를 바꾸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세대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 2013년 유행어 대상 후보에도 오른 ‘사토리 세대(悟り世代)’다. ‘사토리(悟り)’, 원래는 불교용어로 ‘깨달음’, ‘득도’, ‘달관’을 뜻하는 말이지만 무엇에도 욕심이 없어 적극적이지 않고,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세상을 달관한 듯한 일본 젊은 세대의 특징을 표상하는 단어로 곧잘 쓰인다.
---「어른이 되기 싫어요, 반경 1미터 세대」중에서

이렇듯 천문학적인 일본의 재정 적자는 30년 동안 진행된 결과로 IMF 국제 금융위기, 리먼 쇼크 등의 세계 경제 불황과 2011년 3.11 대지진 등 각종 재해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급속히 고령화되고 사회보장비 지출이 크게 늘고 있는, 즉 앞으로 쓸 돈이 크게 늘어날게 뻔히 보이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미래를 생각할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경제학자들, 그리고 ‘균형 재정’ 달성이 숙원인 일본 재무성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증세’다. 세금을 더 거둬 조금씩이라도 빚을 지지 않고 나라 살림을 충당해갈 수밖에 없다는, 아주 간단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다. 그동안 거듭된 전문가들의 증세 요구에도 시행 시기를 미루던 아베 정권은 결국 2019년 10월 소비세를 8퍼센트 수준에서 10퍼센트로 끌어올렸다.
---「빚지고 당겨쓰고, 2021년 경기 절벽」중에서

일본 사회 밑바닥에 깔린 보수적 분위기가 선거에서는 늘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분석도 있다. 즉 전후 짧은 정권 교체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자민당 집권 체제가 계속 이어져왔고, 그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일본 사회가 정치적 변화에 매우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에 대한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에 익숙하고 정권이 부패해도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향감각을 상실한 모습을 보이는 게 일본 사회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찾아오는 감정은 어떻게 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다. 오죽하면 일본에서의 정권 교체는 ‘당에서 당으로의’ 교체가 아닌, 자민당 내 ‘파벌에서 파벌로’ 총리가 바뀌는 ‘당내 교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일까? 장기집권을 이어가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해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견제받지 않은 권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러한 흐름이 아베 총리의 퇴진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결국 일본 국민들이 진정한 변화를 얼마나 바라는지, 특히 이를 표심으로 얼마나 나타내는지에 달려 있다.
---「일본에 과연 촛불은 켜질 것인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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