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과 옛 이야기가 어우러진 그림책
--- 00/01/05 허은순
입말로 쓰여진 그림책들이 지금은 많이 나와 있지만, 이 것은 4년전에 제가 처음으로 본 입말로 쓰여진 그림책이었습니다. 이 그림책은 옛 그림을 써서 만든 그림책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시 말하면, 남계우, 조희룡, 김홍도, 심사정, 신사임당, 정선 등 조선시대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과 민화를 부분적으로 써서 새롭게 다시 만든 그림책이에요. 옛 그림과 아이들 그림책이라면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디자인과 구성이 잘 되어 그런 우려를 싹 씻어버립니다. 하얀 나비와 검은 나비의 대조를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바탕을 노랑으로 한 것도 눈에 띄구요.
특히 디자인이 돋보이는 부분은 붓꽃과 나비가 있는 그림과 앞뒤가 이어지는 겉표지 그림인데요. 쭉 펼쳐보면 부분부분 인용한 그림이 전혀 새로운 하나의 멋진 그림으로 완성되어 있어요. 글자를 고정시키지 않고 움직이는 효과를 주어 또 다른 그림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이 그림책이 만들어 졌을 때는 좀 보기 드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글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돼있는 그림책들이 많이 나오죠.
또한 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달라져 가는 모습들도 잘 연결해 놓아서 읽기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이 만들어진 이후 이런 종류의 책들이 잇달아 나온 것을 보면 꽤 반응이 좋았나 봅니다. '내가 처음 가 본 그림 박물관' 시리즈 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선조들의 그림을 박물관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가까이 서 볼 수 있도록 기획했다는 것도 눈 여겨 볼만한 부분이구요.
이 그림책은 아주 특이해요. 나비뿐만 아니라 갖가지 곤충과 함께 중간중간에는 꽃에 얽힌 옛날이야기까지 있는 그림책입니다. 나비가 양면에 가득 나오는 그림은 1963년에 출판된 'I Am A Bunny(Written by Ole Risom, Illustrated by Richard Scarry)'와 비슷하지만, '봄날, 호랑나비를 보았니?' 에는 각각의 나비가 자기 이름을 말하고 있는 문장이 딸려 있다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나는 왕나비야', '나는 남방공작나비야'. '나는 꼬리명주나비야'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리고 그림책에서 부분적으로 쓴 그림들을 뒷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도록 그림의 완전한 모습을 실어 놓아서 그림을 감상하는데도 도움을 준답니다. 개인적으로는 강릉에서 보았던 신사임당의 그림도 있어서 아주 반가왔어요.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통해서 한국화의 멋을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