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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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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민길호 | 학고재 | 2000년 10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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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643g | 148*210*30mm
ISBN13 9788985846684
ISBN10 898584668X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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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민길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75년 캐나다로 이주한 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U.B.C.)에서 미술사 연구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에밀리 카 아트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밴쿠버에 살면서 사진작가, 공예작가, 서양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 전 이 책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두 그림과의 '운명적인 만남' 이후 줄곧 반 고흐에 대해 연구해왔고, U.B.C. 에서 「반 고흐 그림의 상징적 언어와 표현」이란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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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 희생당하면서 그 고통에 어떠한 숭고한 값어치를 두고 그것들과 싸우며, 그렇게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내가 죽어가는 형의 침대 옆에서 빨리 회복되어 이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말했지만 형은 슬픔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며 죽기를 원했단다. 나는 형의 뜻이 무언지 알고 있다.'
--- p. 293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부활한 제가 저 먼곳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 눈은 현실을 보는 눈이 아닙니다. 이제 다가올 죽음 건너편을 관찰하는 예리하고 냉철한 눈입니다. 현실의 고통과 슬픔은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그저 있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나 다가올 죽음 너머의 세게는 이제부터 준비해야 할 새로운 도전입니다. 굳게 다문 입에서 굳은 마음의 각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잘 정돈된 붉은 머리와 턱수염이 더욱 엄숙하게 보입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푸른 녹색 상의 속의 하얀 셔츠가 유난히도 희어 보입니다. 순수하고 정결한 제 마음의 일부입니다.
--- p.255
저는 일생 동안 36번에 걸쳐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유화로 그린 수치인데, 연필로 그린 것은 세어보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그보다는 더 많을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예외없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화상에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저를 수없이 발견하고는 당황해하고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래도 그 자체가 저였기에 알면서도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슬프지만 그러한 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희망과 기쁨으로 그렇게 그렸습니다.

저의 자화상은 세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가 네덜란드 시절의 것입니다. 그때는 몇 번의 연필화를 제외하고는 제 얼굴을 직접 그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화가로서 자신을 정립하지 못한 데다 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빌려 제 마음의 자화상을 그려보았습니다.

둘째가 파리 시절입니다. 36점의 자화상 중 27점이 이 시절에 그린 것입니다. 화가로서 성장해감에 따라 그림과 마음에 변화가 많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의 일기장에는 보이지 않는 삶의 슬픔과 고통이 항상 배어 있습니다. 그리고, 변해가는 제 그림의 형태와 색을 볼 수가 있습니다.

파리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그림 그림이 제 자화상입니다. 정장 차림에 중절모를 쓴 저의 모습에서 잔잔한 희망과 미래에 대한 호기심 어린 표정을 볼 수 있습니다. 세가토리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린 자화상은 존엄성을 은근히 과시하려는 듯한 얼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남자의 자존심, 그리고 남자로서의 위신 같은 것을 나타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애써 감추려 입에 문파이프가 그림을 더 부자연스럽게 만듭니다.

그리고 인상파와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으면서부터는 밝아지고 거칠어진 붓질이 한층 대답해지고, 극도로 강렬한 색으로 저의 얼굴을 그려갔습니다. 그런데 세가토리와의 사랑이 깨지면서 얼굴 표정은 정중함을 잃고 거칠어지기 시작합니다. 또 언제나 광기 서린 듯한 눈빛은 더욱 밝아지고 색의 조화는 태양빛이 보여주는 그대로입니다. 제 눈동자는 항상 불타고 있습니다. 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러울수록 저의 눈동자는 광채를 더해갑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제 영혼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울지라도 저는 제 갈길을 알고 있었고 저의 의식과 관계없는 무한한 힘이 저 높은 곳에서 저를 이끌어가고 있었고 저의 의식과 관계없는 무한한 힘이 저 높은 곳에서 저를 이끌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고통에 비례하여 영혼의 힘이 항상 따라왔습니다. 그 힘이 무너지면 저는 이곳에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곧, 저의 자멸을 의미합니다.
--- pp.124-125
쉬지 않고 돌진하는 기관차처럼

희망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미래의 미술학교, 화가들의 천국이 될 노란집을 정리 정돈해야 했습니다. 노란집은 방 네 개와 넓은 마루방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고갱과 제가 방을 하나씩 쓰고 나머지 방과 공간을 작업실과 그림 보관하는 곳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우선 고갱이 쓸 방을 장식했습니다. 마룻바닥에 푸른색과 녹색, 붉은색 무늬가 있는 카펫을 깔았습니다. 벽은 흰색으로 밝게 칠하고 창문의 커튼은 엷은 녹색 천으로 달았습니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침대 옆에 조그마한 책장을 놓았습니다. 들어오는 문 옆에 세수하고 손씻을 세면대를 설치하고 타원형 거울을 그 위에 걸었습니다.

새로 꾸며진 방은 신혼부부의 방같이 깨끗하고 아늑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보이는 정면에 제가 그린 해바라기꽃 그림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들어오는 문 또 한편에는 시인의 정원에서 남녀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풍경을 그린 그림을 걸었습니다. 진한 녹색의 정원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 사랑의 시가 절로 나올 법한 시인의 정원 풍경입니다. 노란색과 녹색의 화려함과 아늑함이 이곳으로 올 고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방은 평범한 색의 마루깔개를 놓고 벽에는 무미건조한 흰색을 칠하고 나무로 만든 침대를 갖다놓았습니다. 그저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으면 족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해바라기꽃 그림을 제 방에 걸었습니다. 이제 고갱을 맞이하기 위한 단장은 일단 끝났습니다. 9월 16일, 지누 아주머니 여인숙에서 노란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물론 고갱이 올 때까지는 식사는 아주머니 식당에서 했습니다. 이사한 첫날 밤 푸른 꿈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내 집의 포근함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바빴고 가장 많은 그림을 그린 때입니다. 그래도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그저 가슴은 즐거움과 희망으로 고무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가 올 때까지 비어 있는 벽을 채울 그림만 그리면 되었습니다
--- p.
노란색의 소박한 의자가 저를 향해 외롭게 놓여있습니다. 소박하지만 견실한 풍채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끈으로 엮어 짠 방석 뒤에 제 파이프와 그것을 채워줄 엽연초가 하얀 천에 싸여 있습니다. 그 흰색이 모든 것을 잊은 듯한 초연함을 보입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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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이 책 말미에 <반 고흐의 그림 두 점을 공개하며>라는 부록을 덧붙여 두 점의 미공개 그림을 반 고흐의 그림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도판 12 <세탁장 펌프에서 물을 긷는 마르호트>(82~83쪽)와 도판 24 <가죽 포도주병과 야생 흰 장미가 있는 정물>(128~129쪽)은 소재, 구도, 선과 붓질, 색, 상징적 의미 등 모든 면에서 반 고흐의 그림일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은이가 복원해낸 반 고흐의 삶과 이상과 그림 속에서 이 그림들은 각각의 자기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들의 진적 여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과 전문 연구자들의 몫으로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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