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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애 안 노는 애 못 노는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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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애 안 노는 애 못 노는 애

: 아이들의 관계 맷집을 키우는 놀이 수업

얼씨구 글 / 최광민 그림 | 한울림 | 2018년 10월 1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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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375g | 150*210*17mm
ISBN13 9788958271185
ISBN10 895827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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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들 사이의 은근한 권력관계가 드러난다. 고학년이나 중학생과 놀이를 할 때 특히 그렇다. 그 반에서 누가 인기가 많은지, 누가 운동을 잘하는지, 누가 가장 센지 금세 알 수 있다. 심지어 그 반에서 가장 센 아이가 수업에 협조적이지 않으면 나머지 아이들이 그 아이를 따라가기도 한다.

그 일상의 권력을 놀이 속에서 깰 때 아이들은 희열을 느낀다. 놀이라는 비일상에서나마 강자를 이겨보는 경험이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술래 여자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발이 빠른 편이 아니니 평소에는 자기 반에서 달리기로는 ‘짱 일진’이라는 육상선수 남자아이에게 도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놀이에서는 다르다. 무려 20여 분을 쫓고 쫓아서 마침내 멋지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처럼 일상에서는 하기 힘든 도전과 모험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놀이가 가진 매력이 아니겠는가.
--- p. 17

놀이가 시작되자 달팽이 놀이를 할 때는 한없이 유유자적하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중 특히 내 눈에 들어온 건 어느 여자아이 그룹이었다. 한 여섯 명 정도 되는데, 교실에서 실내놀이를 할 때면 연신 거울을 꺼내 보며 딴 짓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놀이에 참여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여섯 명 중 한 아이는 옷이 위로 말려 올라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 팀 아이 한 명을 붙잡아 놀이판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걸 본 같은 그룹 여자아이 한 명이 그 힘겨루기에 가세했고, 상대 팀 아이 한 명도 이에 질세라 달려들었다. 그렇게 여자아이 네 명은 2대2로 붙어서 넘어지고, 깨지고, 서로를 끌어내고, 끌려 들어가면서 몸싸움을 벌였다.

개뼈다귀 놀이는 이처럼 온몸을 다하는 적극적인 전투정신과 건강한 공격이 서로 허용되어야 재미나고 신난다.
--- pp. 27~28

다행히 여자아이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스스로 팔을 길게 뻗었고 몸을 원 안쪽으로 깊숙히 들이밀었다. 덕분에 첫 번째 판에서보다 훨씬 빨리 한 명을 쳤다. 드디어 함께 쳐줄 술래가 생긴 것이다. 그러자 놀래의 몸놀림이 달라졌다. 술래가 적극적으로 움직일수록 놀래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얼싸안고 몸부림을 친다. 호랑이 굴 놀이는 그래야 재미가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자아이의 표정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아이는 원래 감정 표현을 크게 하지 않는 편이었다. 처음 한 명을 쳤을 때도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천생 여자인 아이의 가녀리고 순진무구한 얼굴이 놀이라는 판 안에서 호랑이 굴에 들어온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처럼 용맹무쌍한 얼굴로 변해갔다. 내가 알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 p. 42

중요한 건 놀다가 싸우고 갈등하는 순간이 바로 아이들이 관계 맺기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다. 놀이 도중에 아이들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내가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고 아이들끼리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논다’는 것은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에 무척 서툴다. 놀면서 누가 자신을 건드리거나 몸과 몸이 부딪치는 걸 유난히 싫어한다. 술래잡기에서 술래가 치면 ‘때렸다’고 하고, 놀이에서 져서 벌칙을 받으면 ‘놀린다’고 여긴다. 장난으로 혹은 친해지고 싶어서 건드리면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아이를 하나만 낳아 키우면서 생긴 현상이다. 다 어른들의 책임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이나 문제를 잘 견디고 풀어나가 는 능력을 나는 ‘관계의 맷집’이라고 표현한다. 이 관계의 맷집을 어린 시절부터 길러주어야 건강하고 자존감 있는 아이로 자란다.
--- pp. 60-61

하지만 벌칙과 놀림을 불편해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놀이에도 문화적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청소년 상담가 친구로부터 들은 바로는, ‘엉덩이로 이름 쓰기’가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인권위원회에서 되도록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
단다. 재미있자고 하는 놀이 속 벌칙과 놀림이 왕따가 횡행하는 현실에서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가 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똑같이 ‘엉덩이로 이름 쓰기’ 벌칙을 받아도 어떤 아이는 구경하는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친구들이 ‘그만하고 들어오라.’고 말려도 엉덩이를 180도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신나게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한다. 놀이 속 놀림을 스스로 즐기고 그 재미를 증폭시키며 장난을 친다. 놀이와 벌칙을 구분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건강한 놀림을 더 많이 경험하기를 바란다. 놀림이나 벌칙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맷집을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이 놀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많이 놀면서 자란 아이들이 관계의 맷집도 세다.
--- p. 67

엄마의 현명한 판단으로 맘껏 뛰어논 덕분에 한때 화내기 대장이었던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고, 놀이에서 지고, 함께 노는 아이들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도 여유 있게 대처할 줄 아는 자존감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늘 좋은 모습만 보여준 건 아니다. 예전처럼 졌다고 화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릴 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내가 알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감정을 자제할 줄 아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의 욕구와 충동을 조절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리라.
나는 놀이만으로 그 아이가 변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많은 규칙과 절제를 요구하는 놀이를 통해 터득한 배움이 아이의 몸과 마음에 배여든 것이 아닐까 싶다.
한때 화내기 대장이었던 이 아이의 경우처럼 이기고 싶다고 규칙을 지키지 않고 내 욕구에 미치지 않으면 반칙과 울음으로 반응하는 아이들도 놀면서 그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나간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스스로 성장한다.
--- p. 102

아이는 왜 ‘미칠 것처럼 재밌었다’고 말했을까? 신나게 달려서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날 처음 진심으로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마음으로 만났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놀이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이다. 놀다 보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표정을 읽는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비춰주고 서로에게 반응한다. 그 행위가 아이들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하게 해주고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준다.

그날 나는 반 아이들과 그 아이가 함께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반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그 아이를 배려해주면서 협동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잘못된 벌칙을 준 것에 대한 미안함에서 나온 일시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험이 아이들에게 자신과는 조금 다른 아이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출발점이 되리라고 나는 믿었다.
놀이에는 마음을 묶어주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 놀이로 마음을 나누고 화합하고 소통하면서 나는 아이들의 성장을 경험하고, 나 또한 성장한다.
--- p. 110

놀이는 아이들의 본능이자 삶이므로, 놀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아이는 성장과 발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여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되기도 하고, 극도로 예민한 아이가 되기도 하다. 갈수록 우울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학교 폭력과 왕따 같은 현상이 늘어나는 것도 아이들에게 놀 기회가 부족해지는 사회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원탁회의에서 어느 아이가 적어 낸 ‘놀이는 상처를 치료하는 시간이다.’라는 문구에는 이런 현실이 반영되어있다. 바꾸어 말하면 놀지 못해서 아이들이 받은 수많은 상처들이 오히려 놀이로 치료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놀이를 통해 서로를 치유해주고 치유받기도 한다. 이건 내가 그간의 경험으로 얻은 확신이다.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가치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다.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라는 산소를 마셔야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놀이라는 비일상에서 져도 보고, 울어도 보고, 다쳐도 본 아이들일수록 자존감이 높고 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도 쉽게 극복한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잘 노는 아이들을 쓰다듬고 칭찬해주고 기를 살려줘야 한다. 잘 노는 아이들에게 “잘 노는 걸 보니 크게 될 놈이구나.” “넌 놀이의 달인이네. 놀이의 달인은 뭐든지 잘할 수 있단다.”라는 말을 자주 해주어야 한다.
--- pp. 146-147

단합대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놀이판 그리는 걸 반대하셨던 형님이 1층에 사는 여자아이와 나를 부르셨다.
“네가 정 원한다면 놀이판, 그거 그려라.”
“네? 아니에요. 안 그려도 괜찮아요.”
“네 맘 다 안다. 대신 나랑 약속하자. 저녁 7시 이후에는 아이들이 놀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거다.”
“형님이 반대하시면 안 그리려고 했는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형님의 손을 꼭 잡고 거듭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그런 나를 보고 형님이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네가 페인트까지 갖고 와서 부탁하는데 어떻게 반대하니. 약속만 잘 지켜, 알았지?”
다음날 당장 호수공원에서 가져온 페인트를 들고 나와 작업을 시작했다. 1층에 사는 주민과 그 여자아이도 함께했다. 우리는 8방 망줍기와 발목지 사방치기 놀이판을 그린 후 그 옆에 예쁜 그림도 함께 그려 넣었다. 3시간 동안 정신없이 그리고 나서 보니 약간은 촌스럽지만 정감 있는 놀이길 두 개가 완성되었다.
이후 형님이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놀이길을 보고 좋아라 하던 아이들이 막상 모여서 노는 날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원에 다니느라 놀 틈이 없다고 했다. 그저 가끔씩 시간이 날 때 아이들은 모여서 놀았다. 그것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자유로운 혼자일 때보다 골치 아픈 일도 많고 갈등을 겪을 일도 많다. 서로 연결되어있으면 서로에게 치러야 할 관계의 대가도 그만큼 많다. 하지만 사람이 모여 관계를 맺고 뭔가를 함께한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몸으로 부딪치고 감정으로 부딪치다 보면 나와 너, 우리라는 연결고리가 생겨난다. 이 연결고리를 굳건히 하는 데 놀이만큼 좋은 게 없다.
--- pp. 187-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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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아이들은 왜 놀이를 좋아할까?’
‘놀이는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비석치기나 딱지놀이와 같은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어떻게 변화될까?’
답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입말을 통해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놀이로 만난 경험은 이론이 되고 더 나은 실천의 밑거름이 된다. 놀이로, 연극으로 20여 년간 한결같이 ‘아이 사랑’을 실천해온 저자의 뜨거운 열정이 이 책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지기를 바란다.
- 이상호 ([사단법인 놀이하는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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