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려
1766년: 3월 13일, 연안김씨 가문 김재칠(金載七)의 장남으로 태어나다.
1780년: 성균관에 들어가다.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의 문장을 익히다.
1787년: 아들 김기연(金夔淵)이 태어나다.
1788년: 10월, 모친상을 당하다.
1791년: 생원이 되다.
1792년: 진사시에 급제하다. 6월, 아들 김려연(金?淵)이 태어나다. 김조순(金祖淳)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모아 ‘우초속지(虞初續志)’라는 패
사소품집(稗史小品集)을 내다.
1797년: 11월, 강이천(姜彛天)의 비어사건에 연좌되어 경원부(慶源府)에유배되는 도중 정조 왕의 특명으로 부령(富寧)으로 이배되다.
1798년: 1월, 부령에 도착하여 ‘기몽시(記夢詩)’를 짓다. 이때부터 진해(鎭海)로 이배될 때까지 부령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
1799년: 1월, 부친상을 당하다. 수절하던 부령의 기생 영산옥을 위해 부령부사 유상량(柳相亮)의 잘못을 풍자한 ‘정안전(貞雁傳)’을 지어 필화사건에 연루되다.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이 일어나서 이상겸(李象謙)의 상소로 인하여 천주교도인 강이천 등과 교유했다는 죄목으로 다시 형신(刑訊)을 받고 진해(鎭海)로 이배되다. 10월, ‘사유악부(思?樂府)’를 짓다.
1803년: 진해에서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짓다.
1806년: 10월, 아들 김유악(金維岳)이 아버지가 무죄함을 주장하여 재심을 요청하였고, 이에 10년의 유배 생활에서 풀리다.
1807년: 아버지의 묘가 있는 공주에서 3년간 시묘를 살다.
1808년: 여름, 서울로 들어와서 ‘의당별고(擬唐別藁)’를 완성하다.
1811년: 삼청동으로 이사해서 시집 ‘만선와승고(萬蟬窩?稿)’를 짓다.
1812년: 의금부에서 처음 벼슬살이를 시작하다.
1813년: ‘취련봉기(翠蓮峯記)’를 짓다.
1816년: 겨울, 정릉참봉(靖陵參奉)이 되다.
1817년: 가을, 경기전령(慶基殿令)이 되었다가 10월, 연산(連山) 현감이 되다.
1819년: 3월, 연산 현감에서 체직되어 돌아오다. 5월, ‘감담일기권후(坎?日記卷後)’를 짓다. 7월, ‘귀현관권후(歸玄觀卷後)’를 짓다.
1820년: 9월, ‘간성춘예집권후(艮城春?集卷後)’를 짓다.
1821년: 4월, ‘만선와승고권후(萬蟬窩?稿卷後)’를 짓다. 9월 16일, 함양(咸陽) 군수로 재임 중 사망하다.
1882년: 손자인 고령(高靈) 현감 김겸수(金謙秀)가 활자로 문집 담정유고(?庭遺稿)를 간행하다.
역자
하상(夏祥) 이두순(李斗淳)1944년생.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교토(京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퇴직한후 개인 취향의 글을 쓰고 있다.농업 관련 연구서 외에 호박씨와 적비(2002), 한시와 낚시(2008),기후에 대한 조선의 도전, 측우기(2012), 수변의 단상(2013), 고전과설화속의 우리 물고기(2013), 은어(2014), 농업과 측우기(2015),평역 난호어명고(2015), 신역 자산어보(2016), 우해이어보와 다른어보들(2017), 연꽃의 여인, 연희(2017), 문틈으로 본 조선의 농업과사회상(2018), 초부유고, 늙은 나무꾼의 노래(2019), 견지낚시의 역사와 고증(2019), 낚시를 읊은 우리 옛 시(2020), 농촌의 노래, 농부의노래(2020), 노년의 시(2021)와 같은 책을 썼다. 본명과 이하상이란 필명으로 책을 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