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준비로 빈틈없이 빼곡한 일정 속 유일한 숨구멍은 수요일이다. 1주 차 ‘다모임’과 2주 차 ‘전학공’, 그리고 3주 차 ‘주전자동’. 낯선 줄임말이 당황스러웠지만, 하나씩 경험하며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다. 먼저 ‘전학공’은 ‘전문적 학습공동체’의 줄임말이다. 교사는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학교는 무엇보다 학습 지도를 고민하는 조직화 된 학습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지향이었다. 전학공이 학년별로 운영되는 학습 모임이라면, 다모임은 학교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기구로 기능했다.”
--- p.36
“아이들이 배려해야 할 대상은 같은 교실을 사용하는 친구들과 선후배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학교로 오는 길에 만나는 골목의 작은 고양이와 들꽃부터, 평상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모든 상점과 마을 어른들까지였다. 배려를 위한 조건은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이기에 2학년 아이들은 교과수업을 통해 반송마을에 대해 다각적인 정보를 학습했다.”
--- p.47
“얘들아 반가워. 얼굴 훨씬 좋아졌네. 선생님 이름은 이영일이고 2015년에 왔으니까 이제 8년 차네. 뭔가 네가 물어보니까 뭉클하다. 선생님은 혁신학교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2015년에 지원해서 왔어. 2016년에는 교육과정 부장도 하고. 맞아, 독수리 오자매였어. 지금은 한국어 학급을 담당하고 있고, 아마 올해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 선생님 개인적으로도 이제 마지막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있고.”
--- p.61
“이름은 김성미고, 2012년에 반송중학교에 왔어. 올해가 2022년이지? 그럼 딱 10년이네. 다행복학교가 만들어지던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다행복부장을 했고, 지금은 2학년 부장을 맡고 있어. 처음엔 다행복학교 다들 싫다고 했었어. 그때 이영일 선생님이랑, 김주영 선생님이랑 교감 선생님에게 혁신학교 해보자고 했거든. 반대가 심했지.”
--- p.69
“선생님은 2014년에 반송중학교 교사로 와서 2022년에 인간이 되어 나왔던 것 같아. 반송중학교가 선생님한테는 큰 의미였고, 그래서 지금도 행복해. 아이들이 괴롭히면 눈물도 나고 죽을 것처럼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어. 선생님한테 행복은 반송중학교야.”
--- p.77
“선생님은 반송중학교에 와서 처음 교사가 되었다고 생각해. 내가 이제야 교사가 되었다는 뿌듯함이랄까. 집에 가서도 아이들이 생각나고. 내일은 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줘야겠다 생각나고. 그래서 선생님은 그냥 하루하루가 행복해. 따로 행복을 정의하긴 어렵고. 그냥 선생님들하고, 너희들하고 고민하고 실험하는 하루하루가 행복이야.”
--- p.81
“반송중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봄학교’와 ‘가을학교’에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는 학교 축제가 있는데 중학교는 없잖아요. 그래서 다행복학교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봄이랑 가을, 이렇게 두 번 진행하는 거로 했어요. 그런데 축제라고 해도 중학교 교육과정과 완전히 다른 걸 할 수 없어요. 새로운 걸 넣을 빈 시간도 많지 않고요. 그래서 학교 교육과정 안에 필수로 들어간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진로 활동, 봉사 활동을 축제로 만드는 걸 고민했어요.”
--- p.83
“도저히 놀 만한 공간이 없어서 지하에 탁구실을 만들기도 하고, 없어진 레슬링부가 쓰던 매트를 가져와서 한 반을 채우기도 하고 그랬지. 거기에서 애들이 탱탱볼 가지고 놀고, 풋살도 즐기고 많이 썼어. 나중에는 해운대구청 지원을 받아서 농구장에 우레탄도 새로 깔고 축구장하고도 구분했어. 그래서 애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지.”
--- p.86
“나는 반송중학교가 다행복학교로 시작할 때 초빙받아서 왔어. 선생님들이 반송중학교로 배정받아서 오는 경우도 있는데, 선생님처럼 이렇게 직접 초빙으로 오는 경우도 있거든. 그래서 다양한 방식의 교육을 고민하던 선생님들과 만났지. 그게 ‘씨앗동아리’였어. 교사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매일 나눴지. 그때 마침 반송중학교가 다행복학교로 선정되었고, 딱 새로운 학교로 이동할 시기였어. 그래서 그걸 알고 있던 다른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나를 초대해줘서 여기로 오게 되었지.”
--- p.91
“나는 보건이 업인 사람이니까 너희들이 건강한 게 행복이지. 물론 신체적인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까지 포함해서. 그리고 특히 다행복학교에서는 학생만이 아니라 선생님도 건강해야 해. 행복해야 건강해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건강해야 행복할 수 있는 건 맞아. ‘다행복학교에서 학생만이 아니라 선생님도 행복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도 행복해야만 한다.’ 지금 선생님의 철학이야.”
--- p.99
“행정직이랑 교사랑은 확실히 분리되어있어. 함께 일하지도 않고, 서로 가깝지도 않고. 그런데 반송중학교는 ‘모두 다 같이’가 기본적인 태도랄까. 워크숍을 다녀오고 나서 나도 학교에 빠르게 흡수된 느낌이었어. 서로 챙겨주니까 일터라기보다는 놀이터 같기도 했고. 제일 좋은 건 반송중학교에 와서 자존감이 높아졌어. 늘 교사를 보조하는 역할로만 있다가 나만의 고유한 업무가 생기니까 성취감도 들고 완성한다는 느낌도 들고.”
--- p.101
“얘들아, 반가워. 덕분에 오랜만에 학교에 오네. 어떻게 이런 작업을 시작한 거야? 대단하다. 나중에 마무리되면 꼭 아줌마한테도 한 권 선물해줘야 해. 나는 2021년도에 학부모회장 했었어. 세홍이 형 기억하지? 세홍이 형이 학생회장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학부모회장을 했었고, 운영위원장도 했었어.”
--- p.108
“반가워. 형은 2019년도에 입학해서 2021년까지 다녔고, 2021년도에 학생회장을 했었어. 나도 반송에서 오래 살았지. 반송이 외곽이라 작다고 해도 천천히 살펴보면 도서관도 있고, 버스와 지하철역도 가깝고, 문화시설도 있으니까 딱히 부족한 점은 없었어. 우리 동네가 그렇게 크지 않으니까 웬만하면 모든 친구와 잘 지냈던 것 같고. 영산대학교 근처에 청소년문화센터와 놀이센터도 있고 너희도 이번 방학 때 친구들이랑 체험해봤으면 좋겠어.”
--- p.114
“아이들의 행복이 확인되었다면 이젠 교사들의 배움과 성장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나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훨씬 더 민주적인 학교 운영체계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했다. 학교의 목표를 더 많은 구성원에게 공유하고 함께 채워가는 것,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철학을 토대로 수업 시간을 이어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민주적인 운영체계였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내년에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과업이었다. 결과와 더불어 과정을 평가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고 또 얼마나 미흡했는지 솔직히 점검하는 반송중이라 다행이었다. 선생님들이 추구하는 것은 더불어 배우고, 그러면서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수업의 시간이었다. 하나의 평가에서 또 다른 평가로, 계속해서 피드백을 타고 넘어가며 이렇게 1년이 또 그려졌다. 반송중학교는 이렇게 매년 달라질 것이다.”
--- p.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