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목적은 지난 선거를 통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 한국 정치사의 결정적 순간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읽기만 한다면 과거는 단지 ‘죽은 역사’로 머무르지 않을 것이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살아 있는 역사’로 다가옵니다. 마찬가지로 지나간 선거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 정치적 격변은 직전에 치러진 선거에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1945년 해방부터 2017년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치사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역동적이었습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늘 선거가 함께했습니다. 1948년 5월 제헌의회 선거에서 2020년 4월 제21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70여 년 동안 우리는 열아홉 번의 대통령 선거, 스물한 번의 국회의원 선거, 일곱 번의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치렀습니다. 보통 4년이나 5년 주기로 선거가 치러지고 그 사이사이 국민투표나 재·보궐선거가 이루어졌던 점을 생각하면, 거의 매년 선거를 치른 셈입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엄청난 부정선거였다는 사실입니다. 제4대 총선은 곧 있을 1960년 3·15 부정선거의 예행연습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공무원과 경찰이 대거 동원되어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으며 야당 참관인들이 각지에서 구타당했습니다. 또 ‘3인조·9인조 투표’ 등 집단 투표도 난무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경찰관, 공무원, 또는 자유당 당원인 조장의 인솔 아래 9인이 떼를 지어 몰려와 3인이 1개 조로 함께 투표하는 사실상의 공개 투표 방식입니다.
이렇게 조를 짜서 오지 않고 개별적으로 온 선거인에게는 투표용지를 주지 않거나, 이에 항의하는 야당 참관인을 투표소에서 몰아내기 위해 술을 먹고 와서 시비를 걸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야당 참관인에게 직계가족이 사망했다는 전보가 오도록 조작해 참관인이 급히 귀가하는 일도 있었지요.
--- ‘올빼미 개표, 닭죽 개표를 아시나요?’ 중에서
색깔론에 치중한 윤보선은 정책 공약에는 소홀했습니다. 윤보선 후보 측의 선거 구호는 ‘결전의 날’, ‘군정 종식’ 등 짧고 간결한 것이었고 홍보물에서도 글자 위주의 홍보물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반면 박정희는 자신의 경제 개발 계획에 대한 청사진을 구체적인 수치와 통계를 들어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경제 자립과 정치 안정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박정희는 ‘새 일꾼에 한 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보자’는 선거 구호를 사용하며 황소를 그려 넣은 홍보물을 제작했습니다.
이 밖에 ‘이순신을 택할 것인가, 원균을 택할 것인가?’, ‘흥부를 택할 것인가, 놀부를 택할 것인가?’ 같은 구호를 사용해서 무신 이순신을 띄우는 대신 문신 원균은 평가절하하며, 부지런한 흥부와 게으른 놀부를 대비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부지런히 일하는 소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공화당 당기에도 소를 그려 넣었습니다.
--- ‘5·16 군사 정변과 박정희의 등장’ 중에서
최근 선거에서 가장 근소한 표 차이로 후보 간에 희비가 엇갈린 대표적인 사례는 2018년에 실시된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들 수 있다. 기초의회 선거인 청양군 의회의원 선거 가선거구에서 재검표와 선거소청, 선거소송 등 우여곡절 끝에 당선자가 몇 번씩 뒤바뀐 그야말로 극적인 사례였다. 당시 청양군의회 의원 선거에서 임상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김종관 후보가 맞붙었다. 청양군 선관위의 개표 결과 두 후보자 모두 1,399표를 얻으며 공동 3위를 기록했다. 기초의원 선거는 중선거구제를 택하고 있기에 선거구에 따라서는 3등까지도 당선인이 될 수 있었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두 후보자가 동점을 기록할 경우 연장자가 당선인이 된다는 공직선거법 규정
에 따라, 이 결과에 승복한다면 한 살 연장자인 56세의 임상기 후보자가 당선인이 될 수 있었다.
낙선자인 김종관 후보자의 재검표 요구와 신중을 기하려는 청양군선관위의 결정에 따라 재검표가 진행되었다. 밤을 새워가며 세 번이나 재검표를 한 끝에 개표 결과가 뒤집어졌다. 임상기 후보가 1,397표, 김종관 후보가 1,398표를 얻은 것으로 나와 당락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승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선거 이모저모+]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중에서
제19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치러지는 만큼,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론이 크게 작용해 새누리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습니다. 임기 중반이나 말기에 치러지는 선거는 대체로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띠기에 여당에 불리하고 야당에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당시 이명박 정부의 반복된 실정으로 대통령 지지율도 매우 낮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민주통합당도 나름 선전했지만 제1당이 되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실제 선거 결과가 예측과 다르게 나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제18대 대선의 대진표를 미리 작성하다’ 중에서
현재까지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가장 길었던 때는 2016년 제20대 총선입니다. 이때 사용된 투표용지의 길이는 33.5cm였습니다. 당시 21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냈지만 투표지 분류기가 34.9cm까지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투표지 분류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개표 절차나 소요 시간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2002년 제3회 동시 지방선거부터 개표 보조 기구로 투표지 분류기를 도입하면서 개표의 신속성과 정확성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투표용지가 너무 길어지면 분류기를 사용하기 어렵고, 그러면 직접 손으로 개표를 할 수 밖에 없어 개표 절차가 어려워질뿐더러 시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 ‘코로나 팬데믹을 넘어선 K-선거’ 중에서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57만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당선되었다. 비주류 대통령의 출현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일부 보수 인사와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선거 무효와 재검표를 주장했다. 이때 제기된 부정선거 음모론은 국정원 간부를 사칭한 특수학교 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정보기관 중견 간부의 양심선언」이라는 문건에서 시작됐다. 이 황당한 음모론에 속아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은 재검표를 요구했고 2002년 12월 26일 대법원에 당선무효소송 및 증거보전 신청을 제기했다.
2003년 전체 투표지의 44.5%를 대상으로 법원 직원과 일반인 8,000명을 동원해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유례 없는 재검표가 실시됐지만 승부는 달라지지 않았다. 재검표 결과 이회창 후보는 88표가 증가하고 노무현 후보는 816표가 감소했는데, 이는 투표지 분류기 때문이 아니라 무효표에 대한 판정이 번복되어 발생한 집계였다. 결국 한나라당은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재검표 결과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 재검표에 소요된 비용 5억 원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다. 당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가 사임했다.
--- ‘[선거 이모저모+] 선거가 끝나면 출몰하는 음모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