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보호자분이 미루가 중성화 수술을 할 때가 되었다고 데리고 왔다. 오랜만에 미루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비쩍 말라 죽어가던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몰라볼 정도로 포동포동 살이 오른 미묘가 되어 있었다. 달라진 미루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료 중이라 눈물을 참아보려고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 p.21, 「손이라도 잡아주세요」 중에서
그날 이후, 튼튼이 보호자가 울먹이며 말했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셔서…”라는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 말은 때로는 ‘제가 감당하실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라고 어느 보호자 앞에서 마음속으로 말할 때 소환될 때도 있고, 또 때로는 ‘감당하게도 못해 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되뇌일 때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수의사라면 “치료해주셔서…”라든가, “살려주셔서…”라는 말보다 훨씬 더 들어야 하는 말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 p.56~57, 「튼튼아, 살아줘」 중에서
박쥐는 너무 사납다. 지금까지 고작 열흘 정도 치료하면서도 숱하게 위험한 상황을 넘겨왔는데, 앞으로 석 달을 데리고 있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 데리고 있어 본 바에 의하면 석 달을 더 데리고 있는다고 성격이 온순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야말로 야생의, 날것 그대로의, 펄펄 뛰는, 난폭하고, 무시무시한 이 고양이 박쥐가 측은하고 귀여운 것이 치명적인 고민이다.
--- p.86~87, 「수의사의 몇 가지 소소한 고민」 중에서
크게 숨을 한번 쉬고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종류를 알 수 없는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강아지 머리에는 뭔가에 그을린 듯한 상처가 있었고, 오른쪽 다리에는 알 수 없는 썩어가는 상처가 있었다. 왼쪽 다리의 허연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처참한 상태의 강아지가 고통과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면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강아지를 보는 순간, 모든 것들이 충격으로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 p.120~121, 「상자 속 강아지」 중에서
어느 ‘오전 수술이 없는 날’. 그날도 간식 창고를 뒤져 모든 종류의 간식을 꺼내 절대 부족할 리 없는 열량 섭취를 하고 있었다. 어린 고양이를 데리고 한 손님이 왔다. 모든 아기 고양이들이 다 예쁘지만 특히 더 독특하고 예쁜 고양이였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콧소리를 한껏 섞은 목소리로 ‘애귀양~ 반가웡~’ 하며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다 늙고 머리 빠진 늙수그레 원장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상한 원장으로 소문나서 그나마 없는 병원 손님이 다 끊길 것이다. 그래서 난 항상 엄숙, 근엄, 진지, 즉 ‘엄근진’ 애티튜드를 유지하려고 (믿기 어렵겠지만) 노력한다.
--- p.132~133, 「늘 그랬듯이」 중에서
우리의 동물 환자들은 자신이 받는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크나큰 고통과 함께 마취에서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 고양이도 마취에서 깨어날 때 뒷다리 두 개가 한꺼번에 없어져서 ‘몸통만 남은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지 무척 걱정이 되었다. 호흡이 빨라지면서 고양이는 점점 깊은 마취 상태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김 부장님은 깊은 근심과 측은한 마음을, 나는 언제든지 처치할 수 있도록 추가 진통제를 가지고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몸을 조금 꿈틀거리더니 고양이가 눈을 떴다. 조용히 눈을 뜬 고양이는 고통의 울음과 몸부림 대신 가벼운 눈인사와 함께 작게 야옹 소리를 내주었다. 김 부장님과 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평온하게 깨다니… 분명히 많이 아플 텐데…….
--- p.「180쪽, 인어 아가씨 에리얼」 중에서
제가 수의사가 정말 다이내믹하고 지루할 틈이 없는 직업이라고 하는 건, 치료하는 질병이 많기도 하지만 찾아오는 환자들의 스토리가 너무나 재미있고 다양하기 때문이에요.”
“원장님, 그래서 우리가 매일매일이 즐거운 거군요.”
“맞아요. 게다가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니까요.”
--- p.190, 「럭키한 고양이, 로키」 중에서
그분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차마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한 선생님은 진료 중 고양이에게 엉덩이를 물리기도 했고, 부장님은 입원한 강아지에게 얼굴을 심하게 물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들이 화를 내거나 고양이나 강아지를 원망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모두들 우리 동물 환자들이 기운을 차려서 물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동물들에게 얼마나 힘들지를 걱정한다. 이런 이들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고 행복한 일이다.
--- p.196, 「다행이다」 중에서
할 일도 많고 볼 책도 많아서 언제나 허덕이는 일상이지만, 수의사가 된 지금도 나는 간절히 수의사가 되고 싶다. 소중한 것들을 간직하고 부족한 것들을 채우려 노력하는 그런 수의사가 되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다.
--- p.275, 「수의사가 되고 싶은 수의사 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