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에게 가해지는 거창한 기대들!
엄마들은 거의 양립할 수 없는 기대를 딸들에게 하고 있었다. “성적을 올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라며 남자 못지않은 인생을 살 것과, “역시 결혼해 애를 낳아야만 여자다”라는 말로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요구하던 삶의 모습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고 있다. 그 세대의 여성들은 엄마의 이 상반된 기대에 어떻게 부응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30대, 계산 빠른 현실주의자
“선택받는다”는 말투가 좋지 않다면, 최소한 “한 명의 남자를 확보한다”거나 “한 명의 남자에게 소속된다”는 식으로 바꿀 수 있겠죠. 그것보다는 “남자에게 선택받지 않아도 나는 나”라고 말하면 더 좋은 거고요. --- 본문 중에서

모라토리엄 세대
이 비정규직은 단기 고용이기 때문에 직업훈련이나 연수를 받을 기회도 없어 미숙련 노동력으로서, 최하위 계층으로 고정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도 이 사람들이 아직 불만을 감수하고 살 수 있는 이유는 부모의 든든한 기반 덕분입니다. 나아가 아직 나이가 젊다는 자기 변명도 가능하고요. 그렇지만 남편의 기반도 없고, 부모의 토대도 없고, 젊다는 자기변명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 본문 중에서

여여 격차의 확산
결혼은 역시 ‘자존심 싸움’이기 때문에, 친구들 중에서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남편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져가요. “저런 사람하고 결혼하려고 이렇게 늦게까지”라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굴욕적이죠.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결혼 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서 역시 ‘친구들에 대한 과시 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혼에서 친구들의 승인이라는 게 아주 커졌다고 생각해요. --- 본문 중에서

여성성을 자원으로 하는 행위
저는 자신이 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시험해보면서, 그것을 혐오하기도 했죠. 실제 시험해보면, 그 시도에 남자가 걸려들어요. 그리고 “아, 역시 이 놈도 그저 수컷이었나” 하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역시 혐오감을 [……] 그래서 저는 제가 원조교제를 하는 애들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관념대로 제대로 육체가 움직일까 그런데 움직이는 거예요. 해보니까 별 다른 문제가 없어요. 사랑이 없어도 섹스할 수 있고,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어요. --- 본문 중에서

‘섹스 프렌드’는 사이 좋은 친구
젊은 애들한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남녀가 있는데, 따로 살면서 가끔 만나서 밥을 먹고 섹스도 한다. 이런 관계를 뭐라 불러야 하나요”라고. 저는 “그건 ‘사이 좋은 친구 사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아요. 두 사람이 만나고 있지 않을 때까지 상대방 신체의 성적 사용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에 ‘커플이나 연인이나 부부’라는 관념이 발생해요. 자기의 허가 없는 신체의 성적 사용에 대해 ‘배신’이라고 말하면서, 자기한테 따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말이에요.

<b>서브프라임 매리지, 애인예비군, 결혼대기조, 섹스 프렌드, 비혼, 싱글맘, 모라토리엄 증후군…… <br/>결혼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우에노 치즈코의 ‘비혼’ 대담<br/><br/>나쁜 남자, 낡은 법 </b><br/>최진실, 옥소리, 허수경. 악성 루머에 시달리다 끝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최진실의 죽음 이후 ‘한 부모 가정’의 보호와 친권제도를 둘러싼 법적 문제로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싱글맘’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가정을 일궈 화제가 되고 있는 허수경은 모자 가정을 위한 사회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미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간통으로 고소를 당한 옥소리가 청구한 간통죄 위헌심판 은 아슬아슬하게 기각되기는 했지만 성과 결혼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변화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br/>『경계에서 말하다』,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사안들이 문제로 대두되어온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나쁜 남자와 낡은 법을 비판해왔다. 그리고 그런 비판적 성찰의 결과가 담긴 『결혼제국 ―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에서 우에노 치즈코는 단순히 결혼의 이념형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혼 제도 자체의 결함과 모순에서 시작해 비뚤어진 성의식과 결혼관이 빚어낸 사회적 병리 현상을 진단한 뒤, 사회 전체의 건강함을 지향하는 해법을 찾고 있다.<br/>이미 몇 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을 놓고 벌이는 아줌마들의 진지한 수다를 읽으며, 지금 여기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건 놀랍게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서브프라임 매리지, 애인예비군, 결혼대기조, 여성 비정규직, 섹스 프렌드, 비혼, 싱글맘, 모라토리엄 증후군……. 나쁜 남자가 있고 낡은 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비슷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br/><br/><b>서브프라임 매리지의 시대 ― 불량채권자가 되어가는‘비정규직·비혼의 30대 여성’ </b><br/>“지금 비정규직이고 비혼인 세대가 10년 뒤면 어떻게 될까?” 경제 호황을 누리던 때에 태어나 잘 교육받고 사회 참여를 시작한 30대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계속되는 경제 불황 속에서 빠르게 늘어난 비정규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30대들은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곧 무보험자, 무연금자로 전락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미혼 여성들은 결혼을 서둘러야 할까? 결혼을 통해 안정을 찾고 사랑이 충만한 섹스를 하며 보란 듯이 자녀를 잘 키우면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일까? 어느 날 멋진 남자가 내 인생을 구제하러 나타날 것이라는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이 여성들은, 그러나 우에노 치즈코가 보기에 모두 ‘결혼대기조’와 ‘애인예비군’일 뿐이다.<br/>이 책 『결혼제국』은 일본의 저명한 여성주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와 임상심리 상담가 노부타 사요코가 나눈 대담을 통해 결혼 제도에서 생겨난 사회문제들을 차근차근 짚고 있다. 우에노 치즈코는 현대의 가정은 ‘강제 수용소’와 같은 특징을 지녔다고 갈파하면서 아무런 의식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결혼 제도의 위험성에 주목한다. ‘왜 결혼을 하는가’에 대한 특별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결혼 생활은 그 안에 얽힌 근본적인 문제들은 제쳐두고 다만 ‘결혼 유지’를 위한 애정, 인내, 배려라는 올가미로 여자들을 희생시키며 억압자와 피억압자를 양산하고 있다. 이렇게 길들여진 여성들은 ‘남편의 인프라, 부모의 인프라, 자식의 인프라’에 의지하며 성적 학대와 가정 폭력과 복연살인을 감수하고, 한 남자에게 소속되었다는 안정감만을 믿는 젠더 병에 걸린 환자가 된다. ‘강제 수용소’가 된 가정에서 여자들은 자식에게 집착하거나, 오기 부양을 통해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br/> <br/><b>결혼제국, 여자의 갈림길</b><br/>우리는 모두 결혼이라는 병에 걸려 있다. ‘생계부양자 모델’로 고착된 가정과 결혼에 억눌려 고뇌하고 있는 남자들 주변에서 여자들은 모두 ‘결혼대기조’와 ‘애인예비군’일 뿐이다. 고소득 남성 노동자들이 사회와 가족을 지키는 사이에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여자들은 ‘명품 신앙’에 빠지거나, ‘섹스 프렌드’, ‘폴리아모리’ 등 변형된 형태의 관계를 통해 집 나간 자존감을 찾으려 하고 있다.<br/>우에노 치즈코는 결혼제국 속에서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 시대의 여자들에게 결혼에 갇히지 않는 능동적인 선택을 하라고 제안한다. 우에노는 ‘비혼’, ‘싱글맘’ 등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면서 여성들이 출산과 비정규직 노동을 전담하며 사회의 보조자로 지내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의 기준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