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무수히 많은 데이트와 소개팅을 했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나쁘지 않았다. 잘 꾸미고, 여성스럽고, 상냥하고…. 주변의 친구들이 어찌저찌 다들 장가를 가는 건 아마 이런 여자들 덕분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 나쁘지 않은 여자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정도로는 만남을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 p.14
내 인생 최고의 ‘썅년’이자 친구들 사이에서 공인된 나쁜 년인 그녀가 다시 등장한 것도 쇼킹한데, 거기다 메갈이 됐다면?
--- p.51
사 년 전의 그녀는 안 그랬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상한 남자친구들을 만난 것 때문에 상처받아서 그렇게 된 거라면, 내가 그 상처를 낫게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 p.46
그날 밤 자려고 누웠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어떻게든 그녀와 다시 시작하겠다는 목적은 이뤘는데,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녀의 목적에 포섭된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거 혹시 여성단체 기부금 벌려고 나 이용하는 거 아냐? “메갈 하지 말라는 말은 안 한다”고 했지만, 내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결국엔 안 하게 만들 거라는 자신도 조금 있었다. 다시 옛날처럼 연애를 하면서 사랑을 듬뿍 줄 거고, 그러면 그녀가 조금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거고, 메갈이니 한남이니 그래서 우리는 사귀면 안 된다느니 그런 생각을 버리고, 나와 결혼이라는 사랑의 결실을 이루게 될 테니까.
--- p.70
“나한테 지난번에 그런 말 했던 거 기억나? 세상을 바꾸려고 하면서 남자 한 명을 못 바꾸겠냐고.”
--- p.119
“근데 페미들은 섹스 이런 거,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섹스가 무슨 죄야?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때만 좋다는 거.”
“그래? 난 시도 때도 없이 해도 좋던데, 헤헤….”
내가 눈치 없이 헤헤거리니 그녀가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았다.
--- p.133
“그래. 그럼 말해줄게. 오늘 출근길에 이런 뉴스들을 봤어. 어젯밤에 어느 대학교 여성 전용 기숙사에 같은 학교 남학생이 불법 침입했대. 여학생들 강제 추행하고, 반항하면 때리고. 강남 클럽에서 여자들 기절시키고 강간하려고 쓰는 물뽕이라는 마약 기사도 봤는데 너무 끔찍했구. 초등학교 육학년이 스쿨 미투 고발글 올린 것도 봤어. 아, 어떤 랩퍼가 이상한 노래도 만들었더라고. 이퀄리스트 뭐라더라? 포털에선 또 어떤 여자 연예인 이름이 살이 쪘네 어쨌네 하는 걸로 하루종일 인기 검색어 1위였고.”
“으응….”
“그리고 오후에는 성폭력 사건 소식을 들었는데, 재판도 못가고 무혐의 처분이 났다는 거야. 전부터 피해자분이 올린 글 봤었거든. 너무 열이 받아서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건지, 무슨 법대생도 아닌데 계속 찾아보고 있어. 기가 막혀서 진짜.”
“어어….”
“그게 내 오늘 하루였어.”
--- p.99
오, 나 이제 드디어 그녀를 콘트롤하는 방법을 좀 찾은 것 같은데?
---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