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탁!
두세 칸씩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단연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작은 전쟁이 일상이었던 나라에 있을 때도, 바로 옆 건물이 폭파되어 죽을 위기를 넘겼을 때도, 단연코 이러지는 않았다.
7층부터 응급실이 있는 1층까지 단숨에 뛰어내려온 수한은 숨도 고르지 않은 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응급실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찾았다.’
베드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발견한 순간,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험하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도 도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왼손을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였다.
“선배, 오랜…….”
“너, 이런, 씹……. 미쳤어?!”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 그의 모습에 오히려 놀란 건 주위에 있던 의료진들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천지가 개벽했다는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고, 도아는 그들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듯 웃었다.
유수한은 이성적인 남자였다. 폭력이 있던 그 시절에도 험한 욕설 한 마디 뱉지 않았고, 큰 사고를 친 후배들에게도 눈으로만 욕할 뿐, 감정 섞인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고의 수위가 높을수록 눈빛만 섬뜩해질 뿐이었다.
말로 표현하는 법이 없는 남잔 굳이 수고스럽게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질책도, 칭찬도 모두 눈빛으로 전했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은 직속 선배의 욕설을 듣는 것보다 그의 눈빛을 더 견디기 어려워했다.
그런 그가 큰 소리로 욕을 내뱉었으니 사람들의 반응이 이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수한만은 모르고 있었다.
“웃어?”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낮게 으르렁거리자 도아가 맑게 웃으며 답했다.
“선배 욕하는 거 처음 봐서.”
아, 짜릿해.
그렇게 읊조린 것 같다.
이 정신 나간 후배가.
예도아.
……예도아, 망할.
도아를 노려보던 수한이 급기야 앓는 신음을 뱉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잇새로 한숨과 짜증이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너 제정신 아니야.”
의사도 사람이었다. 생명이 하나밖에 없는.
집보단 병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니, TS(외상외과)에서 근무하며 유수한은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허무하게 죽는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했다.
생살이 찢겨 나가고, 형태는 우그러지고, 필요 생존 장기가 찢어진 환자들이 실려오는 현장은 그들에겐 일상이었지만 트라우마로 남기도 했다.
그게 전부다.
다시 말하면 트라우마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건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였다. 싫다고 해서 내려놓을 수 없는 짐.
그런데 예도아는 아니었다.
그녀는 간혹 생명이 몇 십 개나 주어진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녀 역시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는 써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했고, 이는 유수한의 멘탈을 깨부수다 못해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걸 이제 알았어요?”
지금처럼.
‘젠장!’
해맑게 웃는 여자를 보는 순간 수한은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언젠가 바랐던 적이 있었다.
이 여자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길.
평온했던 그의 일상을 어지럽히는 이 여자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지만 지금은.
“난 선배 앞에선 늘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악동처럼 웃는 여자가 반갑다. 하지만 이를 표현할 만큼 그는 솔직하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