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천사가 몸을 드러냈는데, 온통 빛의 옷에 휩싸여 감히 맨눈으로는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하는 말은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천사가 말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감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몰랐습니다. 부자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습니다. 저녁 때 필요한 것이 살아 있는 사람이 신을 장화인지 아니면 죽은 자를 위한 목 없는 신발인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사람으로 있을 때 제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의 아내 마음에 있는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고아들은 자신을 챙길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낯선 여인의 마음에 있는 사랑으로, 그들을 가엾게 여기는 사랑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들이 잘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은 알았습니다. 이제 저는 또 다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시지 않으셨음을, 그리고 사람들이 협력하며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모두에게 그들 자신과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심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염려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 하나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그 안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중에서
아브제이치가 복음서를 열자마자, 어제 꿈이 기억났다. 다만 그는 문득 누군가가 몸을 흔들며 뒤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브제이치가 고개를 돌리자, 어두운 구석에 꼭 사람 같은 자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사람들이 서 있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어떤 목소리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마르띤! 마르띤!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소?” “누구를 말하는 거요?” 아브제이치가 말했다. “나요.” 목소리가 말했다. “바로 나.” 어두운 구석에서 스쩨빠니치가 나타나서 미소를 짓고는 마치 구름이 흩어지듯이 사라져버렸다.
“그건 나요.” 또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어두운 구석에서 아기를 안은 여인이 나타나서 미소를 지었고, 아이가 웃더니 역시 사라져버렸다. “그건 나요.” 목소리가 말했다. 노파와 사과를 든 소년이 나타나서 둘이 함께 미소를 짓더니 역시 또 다시 사라져버렸다. 아브제이치의 마음이 기쁨으로 차올랐다. 그는 성호를 긋고 안경을 끼고는 열린 페이지의 복음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중에서
“하나님 앞에서 말해라. 누구의 죄냐? 내가 네게 뭐라고 했느냐?” 그제서야 이반은 정신을 차리고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숨을 깊이 내쉬고 말했다. “제 죄입니다. 아버지!”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저를 용서하세요, 아버지. 아버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노인은 손을 움직여 왼손에 초를 옮겨 쥐고 오른손을 이마로 끌어올려 성호를 긋으려 했지만, 미처 팔을 뻗지 못한 채 멈췄다. “주께 영광, 주여! 주께 영광, 주여!” 그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아들을 바라보았다. “반까! 반까!” “왜요, 아버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하겠느냐?”
이반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아버지.” 그가 말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버지?” 노인은 눈을 감고 마치 힘을 모으려는 듯 입술을 실룩이더니, 다시 눈을 뜨고 이렇게 말했다. “살 수 있을 게다. 하나님을 모신다면, 살아갈 수 있을 게야.” 노인은 또 잠시 입을 다물더니 미소를 짓고 말했다. “보거라, 바냐. 누가 불을 질렀는지 말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죄는 덮어주어라. 하나님께서 둘 다 용서해주실 것이다.” 노인은 초를 양손으로 붙잡고, 두 손을 가슴에 포개더니 큰 숨을 내쉬고 몸을 쭉 뻗고 숨을 거두었다.
---「초반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끌 수가 없다」중에서
빠홈은 곧바로 작은 언덕을 향해 걸었지만 이미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땀이 비 오듯 흐르며 기진맥진했고, 맨발의 다리는 여기저기 베고, 타박상을 입었으며 오금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해가 지기 전까지 제 장소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태양은 기다려주지 않고,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땅을 너무 많이 취했나? 어떻게 실패할 수 있지?’ 그는 앞에 있는 작은 언덕을 보고 해를 번갈아보았다. 장소는 아직 먼데, 태양도 벌써 지평선에서 멀지 않았다. 빠홈은 계속 그렇게 걸었고, 힘들었지만 계속 발걸음을 재촉하고 또 재촉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었다. 그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반외투도, 장화도, 물병도, 모자도 벗어던지고, 몸을지탱할 삽만 쥐고 있었다.
‘아,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모든 걸 망쳐버렸어. 해가 질 때까지 못 갈 거 같아.’ 이런 생각이 공포가 되어 숨이 더 막혀왔다. 빠홈은 달렸고, 셔츠와 바지는 땀 때문에 몸에 달라붙었고, 목이 탔다. 가슴은 대장장이의 풀무처럼 부풀어 올랐고, 심장은 망치로 내리치듯 고동쳤으며, 다리도 자기 다리 같지 않게 자꾸만 꺾였다. 빠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중에서
“만일 자네가 어제 내 연약함을 동정해서 나를 위해 이 밭고랑을 파주지 않고 혼자 돌아갔다면, 저 젊은이가 자네를 공격했을 것이고, 자네는 나와 남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거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시간은 자네가 고랑을 팠던 시간이고,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위해 선한 일을 해준 거라네. 나중에 저 사람이 달려오고, 자네가 저 사람을 위해 동분서주했을 때가 진짜 시간이었지. 자네가 상처를 싸매주지 않았으면, 저 사람은 자네와 화해하지도 못하고 죽었을 테니까. 그러니 저 사람도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자네가 저 사람에게 해준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 그러니 기억하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시간에만 우리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네.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인데,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라네. 우리는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 살아가도록 보냄을 받았기 때문이라네.”
---「세 가지 질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