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몇 년 전 써놓은 어느 초벌원고에서 태어났다. 원고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은〈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2012년 먼저 출간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에 대해, 숙제를 떠안고 있는 학생처럼, 늘 내 자신에게 빚진 마음이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성이 차지 않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더라.. 마침내 그 짐을 마저 덜어내기로 하였다. ---‘일러두기’ 중에서
80년대 의과대학 강의실은 극장 같았다. 한 클래스 200여명의 학생을 위한 좌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며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부채꼴 정점에는 연단과 거대한 칠판이 있다. 두근두근 기다리던 심장학 첫 강의시간, 새하얗고 긴 의사가운, 도포자락 휘날리며 이웅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웅구리’ 선생님(우리는 애칭처럼 선생님을 영어식 이름으로 부르길 좋아했다. 혀에 착착 감기니까), 그는 학생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숱한 에피소드 속 살아있는 전설이었고 ‘세브란스의 자존심’이라고 불렸다. 알 없는 뿔테안경 너머로 학생들의 수많은 눈동자 하나하나를 꿰뚫어보는 듯했던, 선생님의 예리하고도 따뜻했던 그날의 시선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분필을 집고는 칠판 한 가득 기다랗고 커다란 물결을 하나 그렸다. (내 눈에는 파도치는 물결처럼 보였다.) 그것은 EKG(심전도)를 그린 것이었다. “제군들은 심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 몸이 그 자체로 전기체라는 것을 알겠는가? 심전도 장치는 사람 몸에 전기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몸에서 나오는 전기를 읽어내는 도구야. 나는 그것을 인턴이 되고서야 깨달았었네.”
선생님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후유증으로 한쪽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선생님을 따라 회진을 돌 때면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기우뚱하는 선생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환자병실 문 앞에 서서 잠시 멈춘다. 심호흡을 하고 노크를 한다.
“환자 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노크를 해야 한다.”
우리를 돌아보며 나직이 말씀하셨다. (지금도 병실을 노크할 때마다 선생님 그 말씀이 생각난다.)
선생님 환자들은 심장병을 지닌 사람들이다. “오늘 아침은 컨디션이 어떠십니까? 밤새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환자에게 문안인사를 하고는 매번 청진을 하기 위해 환자침상에 걸터앉는다. 청진기의 둥그런 끝, 즉 환자의 피부에 닿는 부위를 손으로 감싸고 덥힌다. “청진하기 전에 청진기가 차갑지 않은지 확인하고 만일 차갑다면 환자가 놀랄 수 있으니 꼭 덥혀야 한다. 의사는 손이 차가우면 안 된다. 그 손으로 진찰을 하면 환자가 안정이 되겠니? 진찰 전에 손을 비벼서라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
당시 심장내과 실습의 핵심은 청진에 있었다. 청진기를 환자 가슴에 대고 소리의 미세하고도 미묘한 차이를 분별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것은 승모판 협착증, 이것은 삼첨판 협착증, 아, 이것은 대동맥판 역류.. 90년대까지도 흔했던 판막질환을 심장내과 의사들은 청진기 하나로 정확하게 진단해냈다.
선생님이 환자침상에 걸터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청진에 몰두하는 모습이란 바라보고만 있어도 전율이 인다. 그는 온몸의 신경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것이다. 가끔 청진기를 환자 가슴에 댄 채로 귀꽂이를 뽑아 학생들에게 들어보라고 건네준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우리들 얼마나 집중했던가. “쉭쉭 하는 소리 들리지? 그게 대동맥판막에서 피가 새는 소리야.” 회진이 끝난 후에도 얼마나 수없이, 환자가 귀찮아할 정도로 쫓아다니며 청진을 했던가. 질환별로 청진 소리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었다.
환자병실에 들어가기 전에 노크해라, 환자피부에 닿기 전에 청진기와 의사 손을 따뜻하게 데워라. 이런 것들.. 사소하지만 우리가 배웠던 의사의 본질이다. 의사가 환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일은 미묘하고 작디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고 몸소 가르쳐주었던 스승, 아! 웅구리 선생님. --- ‘요즘 의사들이 놓치고 있는 것’ 중에서
학창시절 소화기내과 실습을 돌 때였다. 강진경 선생님 회진을 따라 돌고 있었다. 선생님은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갑자기 홱 돌아섰다. 그리고는 우리 조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학병원의 세 가지 사명이 무엇이냐?”
으흥, 이 질문은 족보에 있다.
“진료, 교육, 연구입니다.”
지체 없이 대답하였다.
“그래. 잘 알고들 있군. 그럼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그것이 무엇이냐?”
어.. 이건 족보에 없는데.. 우리들은 궁지에 몰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당황해하였다.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선생님은 재차 대답을 독촉하였다. 선생님 뒤에 서있던 레지던트 선배가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학생들이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자신이 경을 칠 노릇이었으니까. “네, 연구입니다.” 입모양을 읽고 우리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래, 연구가 가장 중요한 거야. 연구를 해야 해. 그래야 의학이 발전한다. 알았나?” 다시 홱 돌아서서 바쁘게 회진을 마저 돌았다.
헤아려보니 24년 전 일이다. 지금은 2014년, 만일 선생님이 살아계셔서 이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한다면 우리들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오늘도 선배 입모양을 보고 앵무새 같은 대답을 읊조릴 것인가?
“대학병원의 세 가지 사명이 무엇이냐?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만일 오늘날 의대교수들에게 같은 질문을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돈과 명예와 권력입니다. 돈을 위한 연구, 명예를 위한 연구, 권력을 위한 연구입니다.”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만일 같은 질문이 현재 병원의 중책을 맡고 있고 사립대학병원협회 총회를 참석하고 돌아온 병원장들에게 날아간다면 뭐라고 대답들 하실까? “대학병원의 세 가지 사명은 경영, 경영, 경영입니다.” (경영이 모두를 눌렀다.) “경영을 위한 진료, 경영을 위한 교육, 경영을 위한 연구, 경영이 최우선 가치입니다. 경영만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입니다.”
--- ‘생즉사 사즉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