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양식의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그 산업은 점점 더 많은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개량하거나 인위적으로 교배해 사육시킨 연어 양식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무수히 많은 연어가 시장에 유입되자 가격이 추락했고, 양식 업자들은 필사적으로 양식장의 규모를 키우고 연어 생산량을 늘려 그 손실을 만회하려고 했다. 물살이 세고 물이 깨끗한, 양식장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점점 더 귀해졌다. 결국 물의 순환이 잘 되지 않고, 연어가 다니는 곳과 가까운 위치까지 양식장이 들어서게 됐다. 연어 양식장의 조밀도가 높아지면서 질소 폐기물이 쌓여 조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가 죽는 과정에서 수중 산소가 줄어들었다. 양식장이 너무 많아지면서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 들끓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양식 연어는 물론 회귀하는 야생 연어에게도 옮는다. 그리고 칠레에서 최초로 발생한 전염성 연어 빈혈증 같은 병들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한 주 만에 양식장의 모든 연어가 전멸해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질병과 오염은 모든 축산업이 안고 있는 전형적인 문제지만, 연어 양식의 경우 이 모든 것이 자연 환경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환경주의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사료방정식이 존재한다. 고작 0.5킬로그램의 양식 연어를 얻자고 1.5킬로그램이나 되는 자연산 물고기를 사료로 줄 이유가 뭐란 말인가? --- 「연어_왕의 귀환」중에서
바다농어 양식은 세상에 기여한 부분이 큰 만큼 악영향도 끼쳤다. 바다농어의 행로를 연구하면서 농어에 대해 진지하고 정밀하게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양식 기준으로 볼 때 바다농어는 우리 식탁에 올라야 할 최초의 농어로 적합하지 않다. 바다농어는 번식시키기도 힘들고, 애벌레 단계를 지날 때까지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최종 단계에서 수확하는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자연산 물고기를 사료로 먹여야 한다. ‘세계인’을 먹일 식량원을 찾기 위해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면 다른 물고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농어 양식 프로젝트가 시작된 환경을 살펴보면 사정이 다르다. 이스라엘,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에서 바다농어를 고른 이유는 인류의 굶주림을 덜어줄 해법을 찾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윤 추구가 더 컸다. 바다농어를 길들이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목표는 축제 때만 먹는 진미를 매일 먹는 일상적인 생선으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당시 녹색 혁명에서 비롯된 환상을 토대로 농어가 1년 내내 즐기는 축제의 일부가 될 거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처음 바다농어 양식에 성공했을 때는 그들이 지나치게 큰 성공을 거둬서 투자 대비 농어의 가격과 이윤이 대대적으로 폭락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 「농어」중에서
참다랑어가 가다랑어건 아니면 조하르가 만든 호르몬 구체가 혈류 안으로 흘러드는, 완벽하게 통제된 인공 환경에서 인공 번식을 하더라도 참다랑어가 온혈 동물이며, 빠르게 헤엄을 치고,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동물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최상의 시나리오가 실현된다고 해도 시장에 내놓을 때까지 키우려면 막대한 양의 먹이가 필요하다. 노르웨이에서 20세대에 걸친 선택적 연어 번식을 통해 대서양 연어의 사료전환율을 사료 1.5킬로그램 대 0.5킬로그램의 연어 살 미만으로 낮췄지만 참치는 여전히 0.5킬로그램의 참치 살을 만드는 데 10킬로그램의 사료가 들어간다. 다른 어떤 물고기보다 최악의 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선택적 번식 프로그램을 통해 전환율을 5 대 1까지 낮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끔찍한 수치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야만 한다. 참다랑어는 어떤 물고기로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물고기인가? 참치 무역을 옹호하는 일본은 참치회의 기나긴 문화 전통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일본인들이 참치를 먹은 역사는 아주 짧다.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기 전에는 담백한 생선과 고기를 선호하여 참다랑어는 너무 지방이 많아서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이 점령하고 지방이 풍부한 쇠고기가 식단에 도입되고 나서야 참다랑어의 뱃살인 ‘토로’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만약 일본인이 반세기도 안 된 시간에 고지방 식단에 적응했다면, 다시 식성을 바꿔서 지속 가능한 식단에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참치_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음식」중에서
마크 쿨란스키가 말한 것처럼 대구는 ‘대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대구를 잡는 어부여야지 대구를 키우는 농부가 돼선 안 된다. 그리고 대구를 잡는 어부가 되려면 대구의 조건에 맞춰줘야 한다. 대구의 개체수 변화에 대한 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대구와 협력해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건설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생물을 정복하려는 타고난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산업화된 수산 양식이라는 단순하고 폐쇄된 시스템을 정복하는 대신 대구의 뭔가를 정복해야 한다면, 우리의 정보가 뛰어나다는 결정적인 증거, 즉 자연계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다 보호 구역을 매년 이자를 벌어들이는 원금과 같은 곳이라고 설정해, 물고기를 잡지 않고 놔둬야 하는 어장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가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대구_서민의 귀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