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는 사랑스러운 금빛 새가 자신을 향해 날아왔음을 충분히 직감했다. 스스로의 고결함 속에서 혼자인 그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처럼 보이는 골드문트가 사실은 자신과 같은 유형의 인간임을 즉시 알아차렸다. 검은 머리에 마른 체격인 나르치스에 비해 골드문트는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밝고 찬란했다. 나르치스는 철학자에 분석가였지만, 골드문트는 몽상가에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대립성은 그들의 공통점을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었다. 둘은 모두 고결했다. 두 사람 모두 재능과 개성이라는 면에서 다른 이들보다 확연히 뛰어났다. 두 사람은 어떤 특별한 경고를 받고 세상에 태어난 운명이었다. ---「2장」중에서
나르치스에게 사랑이란 오직 한 가지, 최고로 존엄한 형태로만 허용되었다. 그렇지만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금욕 수도사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지 않았다. 나르치스는 인간의 운명을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 벗에게서, 그는 더더욱 선명하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는 골드문트의 본성을, 자신과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그 본성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잃어버린 다른 반쪽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의 과제는 자명했다. 골드문트에게 스스로의 비밀을 알게 해주는 일, 그 껍질을 벗겨내는 일, 본성을 돌려주는 일이었다.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그로 인해 벗을 잃게 되리라는 예감이었다. ---「3장」중에서
실제이며 살아 있는 건 오직 골드문트 내면에서 숨 쉬는 생명뿐이었다. 불안하게 고동치는 가슴, 그리움의 통증, 꿈의 희열과 두려움, 그것이 그가 속한 세계였다. 그는 온 마음으로 자신의 세계에 몰두했다. 책을 읽거나 공부하다가도, 다른 급우들과 있을 때도 그는 자기 자신 안으로 깊이 가라앉은 채 주변을 완전히 잊고 오직 내면의 흐름과 목소리에만 스스로를 내맡길 수 있었다. 그는 아득히 먼 곳으로 휩쓸려갔다. 어둠의 멜로디가 울리는 깊은 우물 속으로, 동화의 체험이 가득한 오색의 심연으로. 그 안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그 안에서 빛나는 수천의 눈동자는 모두 어머니의 것이었다. ---「5장」중에서
그에게는 어린아이다움, 개방성, 호기심에서 촉발된 순진무구한 욕정, 여자들이 그에게서 갈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다 내어주려는 각오가 있었다. 스스로는 알지 못했으나 그는 하나하나의 여자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여자들이 저마다 소망하고 꿈꾸던 모습으로 다가갔다. 어떤 여자에게는 부드럽게 기다려주면서, 다른 여자에게는 재빨리 낚아채듯이 덤볐고, 어떤 때는 처음으로 동정을 바치는 소년처럼 순진하게, 어떤 때는 현란한 전문가처럼. 언제라도 장난스러운 유희나 싸움, 한숨과 웃음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수치심도 과감함도 모두 상대할 수 있었다. 그는 여자가 욕망하지 않는 행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그에게서 유인해내려는 행위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영리한 감각을 지닌 여자들은 금방 이런 점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여자들은 그를 더욱 사랑했다. ---「8장」중에서
골드문트의 영혼에는 그에게 완전히 속하지 않은 어떤 얼굴이 살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그 얼굴을 포착하여 예술로서 구현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지만, 얼굴은 자꾸만 그에게서 멀리 달아나 모습을 감추곤 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예전 나르치스와 대화를 나눈 후 잃어버린 기억의 심연에서 다시 솟아올랐던 어머니의 얼굴, 하지만 오래전부터 그 얼굴은 변해 있었다. 방랑의 나날들, 사랑에 취한 밤들, 그리움의 시간들, 생명의 위협과 죽음의 공포를 겪어내는 동안 어머니의 얼굴은 서서히 변화했고 더욱 충만해졌다. 더욱 깊고 더욱 풍부하게 바뀌었다. 그것은 더 이상 골드문트의 어머니만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가진 구체적인 특징과 색채가 희미해지면서 점차 어느 특정 개인의 어머니가 아니라 에바의 모습으로, 인류 전체의 어머니 상으로 변화한 것이다. ---「11장」중에서
골드문트는 가만히 서서 자신의 작품을 응시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청춘과 우정을 기념하는 회상의 마음이었으나 종국에는 태풍처럼 격렬한 고뇌와 상념으로 치닫고 말았다. 여기 그의 작품이 있다. 이 아름다운 젊은이는 영원히 여기 남을 것이고, 섬세하게 피어나는 그의 젊음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작품을 만든 골드문트 자신은 작품과 작별해야 한다. 내일이면 이 작품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더 이상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의 손에 의해 자라나고 피어나기를 멈춘다. 더 이상 그의 피난처가 되지 않으며, 위로도, 삶의 의미도 주지 않는다. 그는 공허하게 홀로 남는다. 그러니 오늘 사도 요한 조각상과 작별을 고할 뿐 아니라 명장과 이 도시와 아예 예술과도 작별을 고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11장」중에서
골드문트는 자신의 상황을 분명히 느꼈다. 그것은 결단을 앞둔 불안감이었다. 오래전 나르치스와 수도원을 떠나던 때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중대한 길에 서 있는 것이다. 바로 어머니에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언젠가 그는 자신이 가진 어머니의 형상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손수 빚어낼 것이다. 그것이 그의 삶의 목표이며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몰랐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단지 어머니를 따르고 있다는 것, 어머니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어머니에 의해 이끌리고 어머니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좋았다. 그것이 삶이었다. 어쩌면 영영 어머니를 형상화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영원한 꿈으로, 예감으로, 유혹으로, 성스러운 신비의 황금빛 섬광으로 남을 것이다. 어쨌든 어머니를 따라가야 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운명을 맡겼고, 어머니는 그의 별이었다. ---「12장」중에서
“철학자는 논리를 통해 세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표현하지. 그는 인간의 이성과 이성의 도구인 논리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잘 알아. 현명한 예술가가 붓이나 조각칼로 천사와 성인의 눈부신 본질을 결
코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음을 잘 알듯이 말이야. 그렇지만 철학자와 예술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지. 그들은 달리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돼. 왜냐하면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으로 자신을 실현하기,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고 유일한 삶의 의미이니까.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그처럼 자주 말했던 거야. 철학자나 고행자를 흉내 내지 말고 너 자신이 되라고. 너 자신을 실현할 길을 찾으라고!”
---「18장」중에서